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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만난 서구 미술의 '현재'

세칸 2008. 5. 12. 15:42

베이징에서 만난 서구 미술의 '현재'

디 얼라이언스 展
美·유럽 등 생존작가 26명 "서양 현대미술관 온 기분"

 

중국 작가와 화상(畵商), 평론가와 컬렉터, 기자와 미술 팬 들이 밀려들었다. 지난 6일 오후 6시, 여러 나라 화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중국 베이징 까오창디(草場地) 예술 동구에 있는 두아트(doArt) 베이징 전시장에서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연맹) 전》이 개막했다. 두아트 베이징은 한국 화랑인 갤러리 현대가 작년 9월 베이징에 낸 지점이다. 전시장을 메운 관객 200여명 사이에서 "이제까지 베이징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전시", "서양 현대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라는 흥분된 속삭임이 오갔다.
 

두아트 베이징 제공 

 

《디 얼라이언스 전》은 미국·유럽·아시아 생존 작가 26명의 작품 80여 점을 한데 묶은 기획전이다. 원로와 신예, 구상과 추상, 회화와 설치와 미디어 아트를 망라했다. 가령 전시장 1층에는 오스트리아 조각가 브루노 지론콜리(Gironcoli)의 설치 작품 〈노란 마돈나〉(1976)가 서 있다. 노란색 알루미늄 성모상 옆에 화장실 청소용 빗자루를 세운, 알쏭달쏭한 듯 괴이한 작품이다. 맞은 편에는 독일 화가 글로리아 프리드만(Friedmann)이 〈가라오케〉(2000)를 걸었다. 흰 바탕에 붉은색 무늬가 선명한 가로·세로 1.5m짜리 알루미늄 판에 큼직하고 퉁퉁한 앵무새 박제를 가져다 붙였다. 한 마디로 산뜻한지 섬뜩한지 내내 헷갈리는 작품이다. 2층에선 일본 작가 히라키 사와(Sawa)가 미디어 아트 〈상자〉(2007)를 틀었다. 파도가 출렁이고 시계가 째깍거리고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시적(詩的) 영상이 6대의 TV 화면에서 12분에 걸쳐 섬세하게 명멸했다.

전시를 기획한
프랑스 큐레이터 프랑크 고트로(Gautherot)씨와 한국인 큐레이터 김승덕씨는 중국 관객들에게 "현대미술의 '과거' 즉 대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닌, 지금 돌아가고 있는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국 화랑〈두아트 베이징〉이《디 얼라이언스 전》을 열었다. 외국인 작가와 큐레이터, 컬렉터들과 뒤섞인 중국 관객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전시장을 거닐고 있다. 두아트 베이징 제공 

 

중국인 관람객 완홍(万紅·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씨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새롭긴 새롭다"며 "또 이런 전시가 있으면 자꾸 와봐야겠다"고 했다. 이탈리아인 베아트리체 레안차(Leanza)씨는 "유럽 미술계의 최신 동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이렇게 참신한 전시를 베이징에서 볼 줄은 몰랐다"고 즐거워했다. 베이징 미술계의 원로인 판디엔(范迪安) 중국미술관장은 "기묘하고 자유로운 전시였고, '한국 화랑에서 하는 전시'라는 느낌보다 '국제적인 화랑이 국제적인 작품을 건 전시'라는 느낌이 강했다"고 했다.

《디 얼라이언스 전》은 베이징 전시 후, 오는 6월 12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도 열린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시킨 방식은 여러 모로 한국 화랑의 '관례'와 차이점이 있다. 이제까지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랑은 대개 중국 지점에 한국과 중국 작가 작품을 번갈아 걸고 파는 데 주력해왔다.

그에 비해 《디 얼라이언스 전》은 한국 화랑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에 의뢰해 미국과 유럽 중심의 다국적 작가들을 한데 묶은 다음, 중국 지점과 한국 본점에 차례로 순회시키는 형태다. 도형태 두아트 베이징 대표는 "좀 더 긴 호흡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화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조선일보 김수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