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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로지 그리기 위해 산다"

세칸 2008. 4. 21. 00:28

"나는 오로지 그리기 위해 산다"

11년 만에 국내 개인전 여는 이상남


뉴욕에서 성공한 대표 한국작가 "실험적 미학·심오한 철학 담겨"

 

삼엄한 박력이 서려 있었다. 붉고 푸르고 검은 바탕 위에 수학 기호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명료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휘감겼다 풀어지고, 끊어졌다 이어졌다.

뉴욕에서 활동해온 화가 이상남(55)씨는 나무판에 옻과 아크릴 물감을 수십 번 칠한 뒤 표면의 미세한 굴곡을 사포로 손수 곱게 갈아내 이 정밀한 추상화를 한폭 한폭 완성했다. 매끄러운 표면에서 미묘한 입체감이 생동했다. 바탕에 붓으로 문양을 그리는 대신, 겉에 바른 물감을 갈아내서 속에 바른 물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평면에 문양을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이씨가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풍경의 알고리듬 전》을 열고 신작 70여 점을 건다. 1997년 이후 11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뉴욕에서 날아온 《아트 인 아메리카》지(誌) 평론가 드니즈 카발로(Carvalho)씨는 "미학적으로는 실험적이고, 철학적으로는 심오하다"고 숨을 삼켰다.

 

 

깡마른 체구에 눈빛이 형형한 이상남씨는 서울 청담동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살아 남기 위해 스스로를 절벽 끝에 몰아세우며 살아 왔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이씨는 1981년 도미했다. 첫 5~6년간 먹고살기 위해 간간이 목수, 정원사 일을 했다. 이후로는 "단 한 끼도 그림 파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해 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현재 김수자(58)씨, 강익중(48)씨 등과 함께 전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화가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작가로 꼽힌다.

"30~40대를 돌아보면 작업실에서 그림 그린 것 이외에 다른 추억이 없어요. 열흘씩 작업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내게
미국 친구가 '신(神)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데 너는 왜 안 쉬냐'라고 합디다. 이제 주말은 쉽니다. 건강해야 하니까. 술도, 담배도 안 합니다. 그래야 죽기 전에 내가 그리고 싶은 걸 다 그릴 수 있으니까."

그는 브루클린에 있는 작업실에서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림을 그린다. 일요일 오전 아내(43)와 집 근처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그의 추상화는 섬세하고 정밀하고 세련되고 냉정하다. "한 인간으로서는 불행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더라도 달리 사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했다"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미니멀리즘 추상화가 이상남씨가 압구정동 PKM 갤러리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져서 만나보았습니다.

조인원 기자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8.04.14 23:25 / 수정 : 2008.04.16 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