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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박수근의 차이

세칸 2008. 4. 21. 00:25

이중섭과 박수근의 차이

 

스타일 너무 달라 우열 가릴 수 없지만
자주 거래되는 박수근 유화가 더 비싸

 

이규현 미술평론가·'미술경매이야기' 저자

 

서울옥션에서 25일 열린 경매에서 이중섭(1916~1956)의 유화 '새와 애들'(49.2×33.5㎝·1953년)이 15억원에 낙찰돼 국내에서 경매된 이중섭 작품 중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보다 약간 작은 '어린이와 새와 물고기(25.2×35.7㎝)'는 10억원에 팔려 이중섭의 두 번째 비싼 작품이 됐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왜 박수근(1914~1965) 작품은 경매 최고가가 45억2000만원, 그다음은 25억원이나 되는데, 이중섭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둘 다 똑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민화가인데 말이지요.

 

25일 서울 옥션에서 10억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어린이와 새와 물고기' / 서울옥션 제공 

 
먼저 두 화가의 스타일부터 봅시다. 이중섭은 선(線)으로 그림을 그렸고, 박수근은 유화의 두꺼운 질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윤곽을 단숨에 그어 내린 듯한 이중섭의 붓질에는 신기(神氣)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재 화가'로 불립니다. 이에 비해 박수근의 그림에는 신들린 듯한 붓질은 없는 대신 사람의 내면을 우려낸 것 같은 깊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스타일은 워낙 다르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이 더 우수하다"라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박수근 작품이 더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는 것은 미술시장의 특성에서 찾는 것이 옳습니다.

작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했을 때, 비싼 작가들의 특징은 첫째 유화를 충분히 남겼고, 둘째 그 유화가 자주 거래된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박수근의 경우 단순 드로잉을 제외하고) 각각 350~400점 정도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 중 박수근은 유화가 250여 점인 데 비해, 이중섭의 경우 남아있는 유화는 30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섭은 수채화나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를 더 즐겼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선'을 좋아한 화가이기 때문이지요.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저서 '이중섭'(시공아트)에서 "이중섭은 선묘 중심의 화가라 유채 특유의 물질감이 만드는 마티에르(질감)를 일부러 기피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유화에 더 많은 돈을 냅니다. 세계 경매업계 1위인 크리스티(Christie's)가 작년에 팔았던 작품의 낙찰 가격 총액은 유화가 75%를 차지했고 수채화와 드로잉은 합해서 고작 11%였습니다.

또, 유화를 남겼다 해도 시장에서 자주 거래가 되어야 가격대가 안정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점에서도 박수근이 훨씬 유리합니다. 이중섭의 유화 중 최고로 꼽히는 소 그림은 6~7점 정도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익대 박물관이 1점, 삼성미술관이 2~3점, 개인 소장자 2~3명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시장에 나올 확률이 거의 없지요. 그리고 국내의 개인 소장자들도 이중섭 작품 정도를 가지고 있다면 미술 수집을 어지간히 하는 사람들이고 여유자금이 충분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이중섭 작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박수근 유화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소장자들에게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박수근이 50년대와 60년대에 미군부대에서 그림을 팔았기 때문에 그때 그의 작품을 샀던 사람들이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은 한국의 미술딜러(화상)들이 찾아가 설득하면 "그 그림이 그렇게 비싸단 말이야?"라며 기뻐서 당장 작품을 내놓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소장자들을 찾아 미국 대륙을 헤집고 다니는 전문 브로커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경매에서조차 박수근 유화는 자주 나옵니다. 이번 달에만 해도 지난 18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박수근의 유화 두 점이 각각 65만 달러(약 6억5000만원)와 60만 달러(약 6억원)에 팔렸습니다.
 
이중섭과 박수근은 모든 면이 정반대였습니다. 이중섭은 6·25 전쟁 중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쓸쓸하게 살다 병을 얻어 40세에 죽었지만, 원래는 평안남도 부농(富農)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습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평생 가난했습니다. 이중섭보다 가난하게 태어난 박수근이 죽어서는 이중섭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