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K옥션 김순응 대표

세칸 2008. 2. 1. 00:18
[강천석의 아주 특별한 외출]
K옥션 김순응 대표

한국 미술시장 몸집 커졌지만 아직도 인맥·학벌이 좌지우지
미술품 가격은 그 나라 경제수준의 척도… 한국 미술 아직도 저평가
신정아 사건은 학벌 만능주의의 폐해죠. 외국 나가면 ‘Do you know 정아?’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취미가 직업이 됐으니 행복하죠. 불편한 건 좋아하는 작가를 입밖에 못내요. 그림값이 곧바로 뛰거든요.

 

작가들이 잘사는 시대가 됐으면… 순수미술이 탄탄해야 패션·디자인도 발전할 수 있어요.


K옥션’ 김순응(54) 대표는 23년간 금융계에서 일했고, 2001년 서울옥션 대표가 되면서부터 한국의 미술 경매시장을 개척했다. 3년 임기를 마친 그는 하나은행, 갤러리현대, 학고재 등이 힘을 합쳐 만든 미술품 경매회사인 ‘K옥션’의 대표가 됐다. 김 대표는 “한 나라의 미술품 가격은 부의 척도이고 경제수준”이라면서 “한국 미술 경매시장 규모는 600억원 정도인데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은 시장이 되려면 5000억원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17일 본사 강 주필 서재로 김 대표가 들어왔다. 잘 차려 입은 양복 안으로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강천석]  실제로 보니 몸이 굉장히 다부지신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김순응]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타고 겨울에는 스노 보드를 탈 정도로 운동을 좋아합니다.”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10리쯤 떨어져 있는 학교도 걸어다녔죠. 아버지는 목수일과 막일을 하셨어요. 그래도 교육열이 높아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를 서울로 보내셨죠.
경기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적응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어요. 당시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 얻은 인내심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서울에서도 생활형편이 어려웠을 텐데요.
“동숭동 달동네 판자촌 맨 꼭대기에 있는 친척집에 얹혀 살았어요. 400m 아래서 물지게로 물 날라 밥 해먹고 겨울에는 연탄도 날랐죠. 당시 아버지께서 서울에 오셔서 사주신 자장면 맛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와서는 한국투자금융과 하나은행에서 23년간 근무를 했네요. 미술계로 온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개인적으로 그림을 모았죠. 싱가포르·홍콩 지점장 시절 옥션에도 많이 다녔고요. 그러다가 2001년 하나은행 자금본부장 시절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 대표로부터 서울옥션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이번이 인생을 미술 쪽으로 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사표를 냈죠. 은행에서 이사 승진 이야기가 오갈 때였는데 말이죠.”

서울옥션에서 나와 K옥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4년 서울옥션을 나와 쉬고 있었어요. 당시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으로부터 새로운 경매회사를 세우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독점보다는 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하셨죠. 그때 하나은행, 갤러리 현대, 학고재 등이 힘을 합해 세운 것이 K옥션이에요.”

서울옥션에서 K옥션으로 옮기는 과정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금융계에 있을 때보다 미술계에 와서 오히려 성격이 많이 거칠어졌습니다. 어느 세계나 텃세라는 것이 있지 않나요? 아직도 저를 비판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 많이 있죠.”

개인적으로 처음 그림을 산 건 언제인가요.
“1980년대 초 친구집에 갔다가 너무 예쁜 그림을 봤어요. 김충선 작가의 ‘해풍’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고 샀죠. 이후 월급쟁이로는 무리를 해서 작품을 사들였어요. 그러다 보니 수작(秀作)을 발견하는 안목도 생기고 환금성이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감각도 얻었죠.”

그림만 잘 보는 것이 아니라 글도 잘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미술 시장에 들어와서 저를 알리고 싶었는데 가장 좋은 경로는 언론이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1년 정도 일간지 칼럼을 썼고 다양한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저를 세일즈했죠. 김훈씨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그분의 글쓰기를 본받고 싶습니다.”

취미가 직업이 되니까 어떤 점이 불편한가요.
“기본적으로는 행복합니다.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하는데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서 하는 겁니다. 하지만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제가 좋아하는 작가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은 매우 불편합니다. 제 말이 그림값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한번은 와인에 취해 특정 작가를 거론했다가 작품 값이 10배 이상 올라 곤란을 겪은 적도 있어요.”

미술관련 서적을 1000여권 읽었다고 하셨는데, 초보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미술시장에 관한 책은 신시아 살츠만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권합니다. 또 예술가의 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 고흐가 지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좋고요.”
 

  K옥션 김순응 대표(오른쪽)와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 photo 유창우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올해 한국 미술계는 다사다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습이 꼭 미술계의 모습으로 압축된 것처럼 보이는 해였습니다.
“그야말로 호사다마였죠. 미술 시장은 성장했는데 신정아 사건, 이중섭 위작 파문,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등으로 충격이 컸습니다.”

신정아 사건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 시작은 역시 학벌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거죠. 서울대를 중퇴하고 예일대에서 박사를 땄다고 하니까 영어도 잘 못하고 미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전문가가 된 겁니다. 미국과 유럽 언론에서도 대서특필을 해서 해외에만 나가면 제게 ‘Do you know 정아?’라고 물어본다니까요. 박수근 선생은 초등학교만 나왔는데도 최고 작가로 인정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고흐, 피카소, 모차르트, 베토벤의 학벌이 중요한가요. 미술과 음악은 진정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한국 미술계는 아직도 인맥과 학벌이 너무 강력합니다. 그들이 상(賞)과 작품 가격을 좌우하고 있어요.”

이중섭 위작 파문과 관련해서는 가짜와 진짜 식별법을 묻고 싶은데요.
“일반인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명화도 20~30% 정도는 가짜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국 가짜는 만드는 사람한테도 문제가 있지만 유통시키고 사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상적이지 못한 루트로 싸게 그림을 구입하려다 보면 가짜를 만날 확률이 높아지죠.”

미술계에서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어떻게 보나요.
“삼성에서 정당하지 않은 자금으로 미술품을 샀다면 잘못된 거죠. 하지만 삼성이 미술계에 공헌한 부분도 큽니다. 삼성이 없었다면 가치있는 작품들이 외국으로 많이 빠져나갔을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제 기업에서 미술품을 기증받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서양 제도를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미술관 재정만 가지고는 미술관을 꾸려나갈 수가 없어요. 미국의 경우 80% 정도는 대기업의 기증품이죠.”

그래도 대중은 미술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도 가진 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일 겁니다. 그리고 예전에 미술품이 뇌물이나 불법 상속에 이용된 적도 있었다고 하고요. 또 가격이 비싸서 일반인이 구입하기 어려운 작품이 대부분이죠.”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술계가 호황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미술품이 투자자산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저변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죠. 리스크가 적고 이익률도 좋기에 주식·증권 시장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려서 미국, 일본,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의 미술 시장이 뜨고 있어요. 여기에는 경매회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유통시장이 투명해지면서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아졌죠. 한국의 경우도 이전에는 화랑이 시장을지배해서 조금 비싼 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시장과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한국 미술시장은 단기간에 과열돼 거품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그림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적게는 2~3배, 많게는 15배 정도까지 올랐으니까요. 이에 따라 조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중국, 인도 작품이 오르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걱정할 수준은 아닙니다. 또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데 국제적으로는 아직 저평가되어 있어요.”

한국에서 경매를 한 번 열면 사람은 얼마나 모이고 낙찰은 어느 정도 되나요.
“2001년에는 10~20명이 와서 5억~10억원 정도 성사가 됐는데 지금은 600~700명이 모여 100억~200억원 정도 팔립니다.”

일반인이 경매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K옥션의 경우 1년 회비 10만원을 내면 회원이 됩니다. 3개월에 한 번 정도 옥션을 여는데 그때 경매에 참여해서 그림을 구입하면 되죠. 수수료는 8~10%입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18~20%이니까 한국의 수수료가 비싼 편은 아니죠.”

 

 

그림쇼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술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올바른 투자방법은 어떤 겁니까.
“그림쇼핑이 재테크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돈으로 사기 힘들죠. 주식과 부동산이 그러하듯이 공부를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죠.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니까요.다음으로는 실제 투자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합니다. 사고팔면서 희비를 경험해봐야죠.”

 

미술시장에서 좋은 작품이란 무엇입니까.
“현대 미술의 경우 점점 더 추상화되고 난해해집니다. 일반 감상자, 작가, 평론가 사이에 항상 갈등이 생기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시대를 앞서가는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입니다. 과거 모네, 고흐, 피카소 등은 모두 시대를 앞선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 같은 독창성을 발견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매우 힘들죠.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처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의 작품들도 일반 감상자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으니까요.” 

감상자, 평론가 모두가 작품을 감상할 때 자신의 두레박 모양과 크기만큼 우물물을긷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 대표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나요.
“미술 작품은 제 삶의 안식처입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본 ‘플란다스의 개’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거기에 루벤스의 그림이 나옵니다. 화가를 꿈꾸던 주인공 네로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그 그림을 보면서 죽죠. 저는 네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괴로울 때도 미술 작품을 보면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화가들이 가난하게 죽었죠. 고흐, 밀레 등처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작가가 많죠. 반면 피카소, 달리 등은 운 좋게 생시에 인기를 누렸지만요.
“이제 모든 부분에서 사이클이 짧아졌어요. 현대 화가는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중에 다시 인정을 받기는 힘들어요. 개인적으로 좋은 화가, 천재 화가는 당대에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나이에 성공해서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의 화가도 그래야 할 거예요.” 

한꺼번에 선진국을 따라가기는 힘들겠지만 현재 한국 미술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는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먼저 사진을 들 수 있습니다. 또 종이에 그린 수채화와 조각이 있죠. 현재는 캔버스에 그린 유화가 대세인데 앞으로 사진, 수채화, 조각 등의 가치가 올라갈 것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어떤 것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역시 작가들이 잘 사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수요자 선택의 폭도 넓엊ㄱ 화가가 되려는 아이들도 많아지죠. 지금은 연예인 ㆍ스포츠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많지만 스타 화가가 늘어나면 화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급증할 겁니다. 또 순수 미술이 발달해야 그것이 바탕이 돼서 디자인이나 패션이 발달 할 수 있어요. 패션 ㆍ디자인 선진ㄱㄱ인 프랑스, 이탈리아의 경우 수많은 선배화가들이 물려준 실력과 안목 때문에 그 자리에 서게 된 거죠."

 

김순응 K옥션 대표

 

약력
1953년
충북 진천 출생
1978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한국투자금융 입사
1982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1996년 하나은행 싱가포르지점장
1999년 하나은행 홍콩지점장
2000년 하나은행 자금본부장
2001년 서울옥션 사장
2005년 K옥션 대표
저서  ‘한 남자의 그림사랑’ ‘돈이 되는 미술’

 

정리=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  손유정 인턴기자·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