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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 나를 이끄는 뜨거움

세칸 2008. 1. 26. 14:12

"새로움… 나를 이끄는 뜨거움"

'젊은 미술작가 열풍' 주도하는 아트딜러 잭 틸튼 인터뷰 

 

지난 한 해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미술관, 상업화랑, 경매 할 것 없이 20~30대 젊은 작가들 열풍이었다. '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컬렉터들 덕분에 이런 바람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Weekly Biz는 새해를 맞아, 뉴욕에서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미대 대학원생들 작품을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해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는 아트딜러 잭 틸튼(Jack Tilton)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딜러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밥슨 대학(Bobson College)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뉴욕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일하고 1983년에 자기 이름을 딴 '틸튼 갤러리'를 냈다. 그 때부터 그는 '잘 안 알려진 새 작가'를 발굴하는 전문 딜러로 활약했다. 중국 현대미술이 별 관심을 끌지 못하던 10년 전부터 이미 중국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전시했고, 2006년 초에는 뉴욕에 있는 미대 대학원 MFA(Master of Fine Arts) 전공 학생 19명의 작품 30점으로 '학창시절(School Days)'이라는 전시를 열어 대성공을 거뒀다. 그는 올해 초 한국에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세계 어디든 새로운 미술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마음이 끌린다"고 했다.

―한국 미술시장이 폭발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아시아 미술시장이 전체적으로 매우 좋습니다.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게 가장 큰 이유지요. 1970년대만 해도 세계의 주요 미술 컬렉터란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유명 컬렉터가 수백 명입니다."

 

뉴욕의 아트딜러 잭 틸튼씨를 그가 운영하는 틸튼 갤러리에서 만났다. 벽에 걸린 그림은 여성이 살해된 현장을 소재로 그리는 학생 작가 애슐리 호프의 작품이다. 틸튼씨는 아직 잘 안 알려지고 새로운 경향을 보이는 젊은 새작가를 찾아내 전시하는 전문 딜러로 유명하다. /뉴욕=사진가 실베스터 자와츠키

 

―특히 젊은 작가들 인기가 대단하지요?

"'새로움' 때문입니다. 대체로 젊은 작가들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새로움'이 작품성을 좋게 만듭니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가격'입니다. 비싼 반 고흐나 잭슨 폴록을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젊은 작가들 작품은 이런 대가들에 비하면 소장하기 쉽다는 것도 매력이지요."

젊은 작가를 찾는 이유중 가격도 무시못해…
새해초엔 한국 찾아 '새로움' 느껴볼겁니다


그는 특히 뉴욕 컬럼비아대, 예일대,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의 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로 상업적 성공을 크게 거뒀다. 앞으로는 시카고, 보스턴, LA에 있는 미대 학생들도 찾아내 전시하겠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습니다.

"그런 우려는 옳아요. 젊은 작가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너무 일찍 주목을 받는 게 작가에게 안 좋게(unhealthy) 작용할 수도 있어요. 성숙할 시간을 주지 않고, 많은 부담을 줄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대해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화가들도 먹고살아야 하는 건 분명하거든요. 지금 젊은 작가 붐은 1990년대 말 닷컴회사 붐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당시 새로 생겨난 인터넷 회사들이 붐을 일으키면서 우려도 많았죠. 지금 보면, 야후처럼 살아 남은 회사도 있고, 사라진 회사도 있습니다. 같은 일이 젊은 작가들에게도 일어날 거예요.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젊은 작가 붐은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중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고 작년에는 인도 작가 작품 전시도 했는데, 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꼭 아시아 작가만 찾는 것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미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싶어요."

―왜 젊고 새로운 작가들을 찾으세요?

"앞서 말했듯 그들이 가진 '새로움'이 좋고, 또 기성 작가들은 이미 다른 갤러리와 계약이 돼 있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딜러로서 그들을 다루기가 어려워요. 물론 요즘은 젊은 작가들도 도도한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2만 달러 하던 작품 값이 짧은 시간 안에 50만 달러, 70만 달러로 비싸지니까 그렇게 도도해지는 거예요. 그들은 마치 록스타, 무비스타 같아요."
 

 잭 틸튼이 다루는 중국 작가 중 하나인 펑 쩡지에의 작품. /틸튼갤러리 제공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세요?

"그야 물론 작품성(quality)인데, 작품성이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그림이 작품성이 있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요. 피카소와 호안 미로는 매우 다르지만, 둘 다 작품성이 좋지요. 특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을 보이는 젊은 작가에 대해 왜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참 어려워요. 새로운 작가를 알아 보는 최고의 눈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입니다. 아티스트들은 본능적으로 동시대의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보는 감각이 있어요."

"그럼, 일반인이 좋은 작가와 작품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시간(time)"이라고 한 단어로 잘라서 답했다.
 
좋은 작품·작가를 고르는 안목이요?
미술관·갤러리 수없이 찾아 체험해야 해요
  

"미술관에 가고, 갤러리에 가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미술을 감상하면서 작품을 몸소 체험해야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세월이 쌓이면 작품을 봤을 때 느낌이 오는 게 있습니다. 꼭 오르가슴이라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육감적인 느낌이 옵니다. 제가 아는 한 큐레이터는 미술작품에서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데, 그럼 미술계를 떠나야 해요. 미술작품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보면 안돼요. 시를 많이 읽으면 좋은 시와 그저 그런 시가 구분이 되고, 좋은 문구가 머릿속에 자연히 남지요. 미술을 보는 눈도 시간과 함께 쌓이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미술시장 거품이 꺼진다는 위기 신호가 몇 번 왔습니다.

"미술품 가격이 너무 오르니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세계 경제의 침체(global recession) 현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새해에도 미술경기는 좋을 것이라 생각해요. 컬렉터들이 갑자기 돈을 잃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즘 미술시장은 경매가 이끄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경매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움직일 뿐, 예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특히 젊은 작가들을 키우는 것은 경매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경매에서도 작가 홍보를 하지만, 오로지 좀 더 비싸게 팔기 위해서입니다. 젊은 작가들이 경매에 직접 작품을 내서 비싸게 팔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 작가들의 미래에 결코 좋지 않아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작품이 미술관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미술관이 경매를 통해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요. 경매에서 성공하는 것이 작가에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규현 문화부 기자 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