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예술을 예도로 승화한 전각 예술가 정병례
오마이 뉴스 2006/1/24 (일부 발췌)
전각(篆刻)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 기원은 고대 중국으로 올라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장이 상용화된 고려 때로 보고 있다. 한국 전각의 1인자인 '허목'을 비롯해서 조선 시대 인물과 서예의 대가인 '윤두서', '김정희'도 전각 전승의 창조적 계승자가 아닌가 싶다. 전각의 가장 통속적 형태는 '도장 문화'일 것이다.
▲ 1층 전시실에 납석에 음각으로 새긴 정병례 전각 작품들을 총망라하여 전시하고 있다 |
ⓒ2006 김형순 |
정갈한 마음 그 자체
전각으로 새긴 이번 '길상전(吉祥展)'을 보면서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정갈함 그 자체이다. 사람 마음을 비우거나 낮추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놓친 정서적 풍성함과 정신적 넉넉함을 되돌려 주며, 인생의 한 단계를 높이는 경지라고 할까! 사람들은 별반 크지 않은 그림에서 큰 울림과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연하 카드에 흔히 보는 '근하신년'이라는 문구에 대해 별생각이 없지만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삼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권위가 내 마음에 와 닿는다. 나를 '삼가' 낮추고 남을 '삼가' 높이는 자세 다시 말해 진정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대하라는 뜻이리라.
이런 우리 전통의 생활 예법과 전각 기법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농축된 상징과 기호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예술(藝術)이라기보다는 예도(藝道)에 더 가깝게 보인다. 작가는 이런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돌에 각을 뜨고 원을 그리고 길을 내는 일은 실질적인 작업만으로도 힘겨운 것 거기에다가 상상력을 깃들이고, 철학을 담고, 인생의 의미를 풀어낸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도의 세계이리라. 전각 작업은 이렇게 도를 깨치는 작업이다"
▲ '길상운집(길상)' 입체 탁본 방식으로 만든 작품으로 우주 만물에 넘치는 길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기하학적 선과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새는 솟대를 연상시킨다 |
ⓒ2006 김형순 |
우선 1층 전시장에 들어서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입체적 탁본으로 만든 '길상운집(吉祥雲集)'이다. 이 그림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아주 현대적이다. 이렇게 단순한 선과 구도 속에 고품격 멋과 향기를 풍기며 우주 만물을 다 담을 수 있다니 놀랍다. 그의 이런 독창적 코드는 앞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리라 예상된다.
▲ '초가삼간(길상집)' 초가삼간을 이렇게 해석하는 화가는 드물 것이다 |
ⓒ2006 김형순 |
▲ '삼족오(三足烏)' 봉황새의 원조라고 할까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태양신의 메신저로 보고 있다. 힘찬 민족의 정기를 삼족오를 통해서 내면화하고 있다 |
ⓒ2006 김형순 |
고구려 벽화를 보면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는 까마귀를 태양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전쟁 시 깃발에도 삼족오를 새겨놓았다. 이 태양새 까마귀는 후에 봉황, 주작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검은 색은 죽음을 상징하게 되고 천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우리 조상들의 까마귀에 대한 상상,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영험한 메신저로 보는 시각과 관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파격적 일탈이다. 민중적 사회변혁 운동에서 보는 것 같은 발상의 대전환이요, 상상의 혁명이다.
▲ '오봉산 일월도(日月圖)' 27×60cm 2004. 해와 달이 영원한 것처럼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좌우측 소나무처럼 항상 푸르고 번성함을 기원하고 있다 |
ⓒ2006 김형순 |
이 그림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765년) 승려 충담사가 10구체 향가로 지었다는 <안민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왕이 <찬기파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충담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쓴 것이다.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나라가 편안해지는지 대선사에게 자문을 구하자 이런 시로 화답한 것이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시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
아아,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백성이 백성다울 때
그 나라가 세세토록 태평을 누리리라
정말 세상에 이렇게 근본을 파헤친 안보의 노래가 있을까 싶다. 바로 이 '일월도' 속에는 그런 전승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해처럼 달처럼 영원히 번성하며 평화와 질서가 너울대는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후에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등장하여 이보다 더 진화되고 민주화된 사회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세계는 기존 질서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한 몫은 한 것은 틀림없다.
▲ '적복(積福)' 30×37cm 2004. 적복이라는 말은 적덕이나 적선과 동급의 말로 우리에게 복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하게 한다 |
ⓒ2006 김형순 |
조형적으로 빼어난 이 작품으로 아주 깔끔하고 치밀한 느낌을 준다. 아니 정연하고 깐깐하여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게 한다. 복자를 거꾸로 보나 바로 보나 두 개의 복자가 겹쳐져 복이 더해짐을 나타낸다. 또한 우리가 받으려는 복의 근본과 뿌리를 성찰하고 재고해 볼 기회를 준다.
▲ '십장생' 이 그림 속에는 음양의 조화와 구성의 대조가 주는 놀랍고 신기한 질서와 균형감이 있다 |
ⓒ2006 김형순 |
'까치와 호랑이', 양극화 해소의 상징
▲ '까치와 호랑이' 35×43cm 2004. '새해를 맞이하여 기쁜 소식만 오라'는 뜻이 담긴 이 그림은 왠지 모르게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한다 |
ⓒ2006 김형순 |
▲ '삼족 봉황' 23×34cm 2005. 상상 속에 산다는 봉황새,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이상세계를 세발 달린 새로 상징화하고 있다 |
ⓒ2006 김형순 |
일종의 상상의 새인 '삼족 봉황'은 '삼족오'의 변종이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삼족을 '임금과 신하와 백성'으로 보고, 이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세상을 화합과 공존으로 나가게 하려는 염원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이런 봉황은 우리 시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동력과 상징과 기호 체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작가프로필]
<개인전> 2005 '지하철에서 만난 풍경소리'(해이리 아트팩토리). 2004 개인전(광주 프랑스 문화원)
2004 '동방의 빛'(국립중앙도서관). 2004 화랑미술제(예술의 전당)
<그룹전> 2005 '책-리브로 오브제'(환기미술관). 2005 '서울서예비엔날레'(공화랑).
2005 '한국서예포럼100인전'(물파아트센터). 2005 '문자입체조형전'(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2005 '서울세계북아트전'(코엑스태평양홀). 2005 서예부문 초대작가전(예술의 전당)
2005 코리아 아트페스티벌(세종문화회관)
<수상 및 저서> 1992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전각). 1992 '대한민국서예대전' 우수상(서예협회).
1993 '동아미술제' 특선. 1993 '전연대상전' 대상.
'풍경소리' 샘터사(2001). '삶, 아름다운 얼굴' 선출판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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