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신흥사지'에서

세칸 2008. 3. 14. 10:07

'신흥사지'에서

 

신흥사지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51-1, 지금의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이 있는 곳에 있었던 절집 터를 말합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방향으로 십리 벚꽃 길의 벚꽃터널을 빠져나와 칠불사와 지리산 대성골(의신마을) 가는 길로 나뉘는 삼거리 길에서 대성골로 가는 길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남서향의 볕 바른 산비탈입니다.

 

지리산 끝자락이 어느 곳 하나 명당 아닌 곳이 없겠지만 무심한 눈으로 보아도 명당임이 분명한 이곳의 지세는 ‘금계포란(金鷄抱卵)’ 의 지형이며 앞으로는 맑기가 명경같은 계곡물(세이장洗耳場)이 사철 섬진강으로 흘러갑니다. 

       

 

절집의 역사나 규모는 알 수 없으나 학교와 주변의 사택 터가 예전의 절집들이 있었던 곳임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학교 옆의 최근에 지어진 사택 뒤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절 망하게 한 부도'란 오명을 쓴 사연 많은 예쁜 부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절 망하게 한 부도’ 오명

지리산 자락인 화개면 일대에는 수많은 절이 있었다. 그중 부도가 남아있는 절터는 대성리에 있는 의신사지와 범왕리에 있는 신흥사지다.

 

신흥사지는 지리산 국립공원 칠불사 지구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쌍계사 앞을 지난 1023번 지방도가 칠불암과 의신 방면 두 갈래 길로 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작은 시골인 왕성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이 신흥사지다. 부도는 초등학교 뒤편 대숲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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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신흥사지 부도. 마을 정기를 누른다고 마을 사람들이 넘어뜨려 놓았다.


이 마을에는 부도와 관련해 ‘씁쓸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랜 옛날 한 도인이 이 신흥사에 들러 하룻밤 묵어가길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난 도인은 절을 흥하게 하는 비법이라며 ‘망하게 될 이치’를 일러준다. 절 양 끝에 부도를 세우면 절이 흥한다는 것이다.신흥사 대중은 도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절터 양쪽에 부도를 세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다. 신흥사가 자리한 곳의 지세가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인데, 양 날개 되는 지점에 부도를 세워두니 망하게 됐다는 것이다.

 

스님네들과 사찰을 폄훼하거나 비하하는 이런 종류의 전설은 전국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억압받은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도인으로 상징되는 이는 유학자(또는 관리)이고, 그들이 스님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자 그 보복으로 절을 폐사시킨 것이 전설로 고착화된 것은 아닐까.

 

어찌됐든 ‘절을 망하게 한 부도’ 2기 중 한 기는 십수 년 전 홍수로 떠내려갔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 눈에 띄어 길가에 옮겨졌지만 누군가에 의해 도난 당했다. 초등학교 뒤 대숲에 있는 다른 한 기는 넘어져 있다. 세워두면 마을의 정기가 억눌린다며 마을 사람들이 눕혀 놓은 까닭이다. 주변이 깨끗하게 정비돼 있는 것으로 보아 돌보는 손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때 쌍계사에서 이 부도를 옮겨 가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역사’라며 막아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부도는 ‘참 예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단아하다. 마치 학과 같은 자태를 지녔다고나 할까. 몸에는 연잎과 같은 무늬를 이중으로 얇게 음각했다. 풀밭에 누워 부끄러운 듯 사리공을 훤히 드러낸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옆에는 부도를 떠받치고 있었을 지대석이 주인 잃은 방석마냥 덩그마니 놓여 있다.

윗글의 출처는, 하동 = 이창윤 기자 / greenmt@manbulshinmun.com 입니다.

이 글이 쓰일 당시에는 사진처럼 부도가 쓰러져 있었으나 지금은 반듯이 세워져 있습니다. 
  

 

쓰러져 있었던 부도가 제자리에 반듯이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절을 망하게 했다는 '오명'은 씻겨졌기를 바랍니다. 연대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표면의 마모가 있습니다만 외형의 생김은 얼마나 단정하고 깨끗한지...., 마치 주인의 성품이나 일생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부도 주변은 대나무와 수만 평의 야생차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향긋한 차 맛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절집 터에 학교가 들어오고 속인이 산다 한들 흠이 될 까닭은 없습니다만 이른 아침으로 들리는 세이장의 물 흐르는 소리나 수백 년 된 푸조나무에서의 까치 우는 소리가 마치 늙은 스님의 법문 소리처럼 깨끗하여 흠칫 놀라기도 합니다.

 

봄이 어찌 계절에만 있겠습니까?

살아오면서 경쟁과 스스로 닦달하는 쳇바퀴를 돌다가 저도 자신의 봄을 가져봅니다.

나의 봄을 옮겨 심어볼 요량으로, 한 뙈기의 텃밭 마련을 위해 대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대밭을 일구어 봄을 심는 행위는 어쩌면 법문을 외는 심정인지도, 세이장에서 귀를 씻는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마음밭에 봄이 없다면 가을에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