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 없어지다.
화개장터는 있으나 장날은 없어졌다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5일마다 펼쳐지던 장날은 없어졌으나 장터는 그대로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장날이 없어졌으니 장터가 시장처럼 매일 열리게 되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다소 어리둥절하겠으나 '장'은 열리지만 더는 예전의 '장'은 아니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화 개 장 터]
조영남 작사, 작곡, 노래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광양에서 삐걱삐걱 나룻배 타고/ 산청에선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사투리 잡담에다 입씨름 흥정이/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노래비에 새겨진 이 노래는 널리 불리고 알려진 유명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장'이 갖춰야 할 이런저런 요소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더 정겹고 흥겨우며 마음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이미 예정된 3월 2일의 고로쇠 축제(약수제)는 날씨의 영향으로 고로쇠 수액이 나오지 않아 3월 8일로 연기되었다 합니다.
3월 1, 2일의 연휴를 맞아 장터는 등산객이나 관광객들로 제법 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쌀쌀한 날씨에도 장꾼은 다른 날 보다 많아 보였습니다.
화개장터의 상설건물들은 전통가구방식과 초가지붕으로 잘 가꾸어져 있고 소설 '역마'의 기념조형물과 가수 조영남의 노래비, 장터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의 2층 정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만 더러는 전통과 현대의 부조화가 느껴지기도 하고 좀 더 정리하고 다듬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초가지붕 위의 파나플렉스 간판이나 음료회사에서 제공하는 붉고 푸른 플라스틱 간이식탁, 색동의 비치파라솔 등은 전통형식으로 대체하던지 정리됐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난전의 봄나물이나 지역의 특산물인 녹차, 매실 제품, 밤 등을 제외하면 어느 장이나 관광지에도 있을법한 상품들이 대부분이고 풍경 또한 비슷하거나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장터에서 국밥 맛을 안 보면 섭섭하기도 허전하기도 하겠지요. 점심으로는 이른 시간임에도 국밥집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메뉴를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국밥은 기대 이하였고 아이들도 밥을 남기고 눈치만 보고 앉았습니다. 소설 속의 계연이가 말아내는 국밥을 상상하고 기대한 잘못만은 아닙니다. 30여 가지의 메뉴를 소화할 수 있는 조리사도 드물겠지만 어떻게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알 수 없습니다.
희한하게도 보리밥집 앞에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저 줄에 끼어볼 생각을 합니다.
국밥집에도 보리밥집에도 수족관이 갖춰져 있고 빙어와 은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빙어튀김을 수북이 쌓아놓고 맛보라는 인심을 쓰는 모습도 같습니다.
장 구경은 난전이 더 재미있습니다. 달래와 물미나리, 찐쌀을 조금씩 사고 아이들에게는 각설이 놀음이 한창인 엿장수에게서 깨엿 한 봉지를 사서 맛없는 점심의 보상을 했답니다.
장은 물건을 사는 곳만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기도 팔기도 바꾸기도 하며 세상과 이웃들과 소통하는 공간이고 기회입니다. 이웃마을의 길흉사를 전해 듣기도 하고 먼 친지나 길떠난 가족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속도의 시대에 장이 가지는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거나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화개장을 즐겨 찾던 장꾼들은 이웃의 구례 장이 더 크다며 옮겨갔다 합니다. 화개장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의 무대이며 그 기념조형물이 어울리지 않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3월 8일은 고로쇠 축제인 '약수제'가 화개장터에서 열린다 합니다.
또, 광양시와 청매실농원은 3월 7∼16일에 청매실농원이 위치한 광양 매화마을에서 문화축제를 열며 매화꽃밭에서는 꽃길음악회, 매실음식 시식회, 사진촬영대회, 백일장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사는 이야기 > 세칸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마을 매화구경 (0) | 2008.03.15 |
---|---|
'신흥사지'에서 (0) | 2008.03.14 |
나무야, 푸조나무야! (0) | 2008.03.04 |
'뿌리 깊은 나무'와 故한창기를 그리며 (0) | 2008.01.29 |
이런 장아찌, 맛 좀 봐주세요! (0) | 200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