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와 故한창기를 그리며
1월 28일 조선일보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이름이라 반갑기도 했었지만 그가 생전에 내 놓았던 잡지들이 '어디 있지?' 하는 궁금증도 들었지요. 제가 20대 초반의 궁핍과 굶주림을 채우려고 읽었던 책들 중의 하나이고 지금도 이 책들을 잡지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책장의 맨 밑이긴 하지만 한 권도 없어지지 않고 잘 보관돼 있었습니다.
30년을 넘었거나 30년이 다 되어가는 책들 인지라 요즘의 책과는 달리 지질이 별로인 책에서는 특유의 헌책 냄새가 콤콤합니다. 어쩌면 30여 년 전의 제 손때에서 나는 냄새인지도 모르고 냉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게 읽었던 그때 기억의 냄새인지도 모릅니다.
당시 잡지계를 풍미한 16가지 금기를 깬 '뿌리 깊은 나무'를 1976년 3월 창간하여 토박이 문화에 대한 애착과 과감한 문화 비평의 영양소 담뿍 담긴 다양한 찬거리로 차린 맛깔스런 문화 밥상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러나 "계급의식 조장, 사회불안 조성"을 구실로 삼은 신군부에 의해 1980년 8월호, 통권 53호를 끝으로 폐간됐습니다.
"가장 한국적이며 세계적이었던…"
故한창기를 그리며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기자·편집자·필자 출신 59명 글·사진 모아 추모집 펴내
한복 차림의 한창기씨가 1992년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앞에서 웃고 있다. /창비제공
창간호의 '편집자에게'의 축사에는 "또 한 번 더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을 축하하며, 오래 사는, 가지가 많은 나무가 되라고 박수를 보낸다"라는 건축가 김수근 선생님의 축사와 "뿌리깊은 나무가 [나무]가 되려면 통나무가 되어야 한다. 홍수 속에서 곧 뒤집힐 나무가 아니라, 쉬 잠겨 버리는 통나무가 아니라, 물살의 흐름마저 다스릴 수 있는 우람찬 통나무가 되어야겠다. 이런 통나무로 자랄 수 있을까?" 하고 말한 이(이종은 / 경북대 상대)도 있습니다.
편집자의 말에서는 '이 잡지의 출간을 준비하는 기간이 무려 다섯 해가 걸렸다'라는 말과, '샅샅이 따지고 살피기에는 이 다섯 해도 오히려 모자랐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축사를 쓴 이들의 바람과 염려에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사진 왼쪽은 1976년 3월의 창간호와 1980년 8월의 폐간호입니다. 사진의 오른쪽은 유일한 합본 호인 1980년 6,7월 호입니다.
창간호는 550원, 나중의 폐간 즈음은 1,800원으로 책값이 급등하는 것은 제2차 오일 쇼크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창간호 첫 머리의 [예술비평] 미술부문에는 유준상 선생의 "김환기는 무엇이 되어 돌아왔나?"가 게재되었습니다.
1974년 61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이승을 하직한 수화 김환기 화백의 회고전(95, 12, 3. ~ 두 주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을 본 비평입니다.
예술비평은 미술, 음악, 문학, 연극, 영화, 국악 등으로 다양하며 잡지의 첫 머리에 실려있습니다.
창간호 본문의 첫 게재 글은 김우창 교수의 "비범한 삶과 나날의 삶 - 삼일운동과 근대문학"이 실려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필자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기라성 같다 할 수 있으며 더러 작고하신 분들도 있고 그때의 소장 학자나 작가들은 요즘에는 대가의 반열에 든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봅니다.
폐간호의 마지막 게재 글은 '걸어서 하늘까지'로 잘 알려진 문순태님의 단편소설 '하늘 새'가 게재되어 있으나 어디에도 폐간의 낌새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편집자의 말에서 "'논설'과 '마파람 소리'는 이달에도 걸렀습니다. 또 '두드러기'도 한 달 걸러게 되었습니다. 걸러는 기사가 많음을 미안하게 여깁니다."라 하고 있습니다.
창간사에서 한창기 발행, 편집인은 "환경은 문화의 집입니다. 사람과 환경은 긴 세월에 걸쳐서 서로 사귀고 겨루어서 균형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개발과 현대화는 이 환경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더 잘 살려는' 사람에게서 변화를 겪은 환경은 공해와 같은 보복으로 사람을 '더 못살게' 하기도 합니다. 또 대중문화의 거센 물결이 이 땅을 휩쓸어 우리의 환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자연의 균형을 잘 지키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뿌리깊은 나무'는 이 나라의 자연과 생태와 대중문화를 가까이 살피려고 합니다."라는 요지의 말을 두 페이지에 걸쳐 하고 있으며 지금 읽어 보아도 아직도 유효하지 싶은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고인을 '탁월한 세일즈맨 이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70년대 후반에 문화를 상품으로 한 세일즈를 할 수 있고 했다면 나름대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창간사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창조는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 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겠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이름대로 오래디 오랜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도 바로 이런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사는 이야기 > 세칸의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개장, 없어지다. (0) | 2008.03.07 |
---|---|
나무야, 푸조나무야! (0) | 2008.03.04 |
이런 장아찌, 맛 좀 봐주세요! (0) | 2008.01.09 |
두구동 연지의 12월 (0) | 2007.12.02 |
실매리 그 후......여명기 산책 (0) | 2007.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