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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매리 그 후......여명기 산책

세칸 2007. 11. 23. 23:48

실매리 그 후......여명기 산책

 

실매리에서는 새벽잠이 없어집니다. 제가 실매리에 있는 동안 저는 매일 아침을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건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저녁 먹은 이후의 시간은 피곤하기도 했지만 달리할 일이 없었으므로 자리에 누워 있다가는 언제 잦는지 깨어나면 아침인 그런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 어르신들은 연세가 높아 아침잠이 없으시기도 하지만 저와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셔서 여명기에 논밭을 둘러보시기도 합니다. 더러는 식전에 한나절의 일을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땐 부러 시원한 새벽일을 하시기도 합니다.

저도 아침 전의 두어 시간을 신문도 없이 빈둥대기도 우습기도 하여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길을 둘러보다 차츰 잘 다니지 않는 어슥한 골목이나 밭둑 길, 빈집의 뒤안 들도 돌아보고는 재미에 홀딱 빠졌답니다.

더러는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도 했고 더러는 잊어버린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살짝 흥분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 '반송'은 산초를 따기 위해 비닐봉지를 들고 빈집들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걷다 눈에 띈 넘입니다. 논밭의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주변에서 땀을 들이거나 새참을 드신 흔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성질 되로만 자란 수 십 년은 된 듯한 기품이 당당한 모습에 놀랍기도 한참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님이 보셨어도 홀딱 반할 만하겠다 싶은 넘이라 은근한 욕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대밭에 들면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이 기분은 샤워를 막 끝낸 기분과 비슷하다 할 수도 있습니다. 실매리에는 대밭이 몇 군데 있습니다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며 관리도 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을 분들이 더러 대가 필요한 경우에는 편한 대밭에서 아무렇게나 베어 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의 추억에 이끌려 대밭으로 자주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대밭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바람에 스치는 댓잎 소리는 마음마저 깨끗이 씻어주는 물소리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대나무의 곧음 뿐 아니라 청량함과 깔끔함, 댓잎 밟는 사각거리는 소리도 신선합니다.

 

 

해당화를 보면 백령도가 생각납니다. 20여 년 전, 백령도 해안가 해당화 군락지에는 해당화가 지천이었고 두무진 아래의 바다가에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황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맑은 물에 혼자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던 때가 생각나는 것은 꼭 해당화와 연결지어집니다.

이 해당화는 실매리 현장 아래의 우사 옆 돌담 사이에 어렵게 터를 잡고 돌담을 뚫고 나와서 꽃을 피웠습니다. 바닷가에 피어야 할 꽃이 첩첩 산골의 오지 마을로 살러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산당화라는 품종이 있는 걸까요? 이 꽃이 혹시 산당화 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꽃잎은 양귀비꽃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우며 어찌 보면 색시하기까지 합니다. '율구'라는 빨간 열매를 맺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이 선홍색 꽃이 해당화인지, ...... 그 누구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음은 습관처럼 마주치며 눈에는 익으나 잊혔기 때문인가 봅니다. 

 

1960년대에 '4H 운동'이라 하여 그 뒤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성격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4H 운동은 지(Head), 덕(Heart), 체(Health), 노(Hands)의 영문 첫 글자인 'H'를 따서 명명했다 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을 포함한 지역사회 개선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 사회봉사적 성격이 강한 운동이었습니다만 새마을 운동으로 빛을 잃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4H 운동은 새벽 일찍 일어나 형들 누나들과 보건체조하고 마을 길을 쓸고 마을 공동우물 주변을 청소하는 일과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은 길가의 풀베기나 마을 길을 손보기도 했으며 마을 길 주변이나 공동우물 주위에 무궁화 나무심기, 꽃씨뿌리기 등의 일들도 했는데 꽃씨는 주로 나팔꽃, 맨드라미, 코스모스 같은 비교적 잘 자랄 수 있는 종류였습니다.

 

 

 

그때의 아이들은 나팔꽃 씨방부분을 쥐고 꽃잎을 따버리고는 단물을 빨아먹기도 했었지요. 나팔꽃뿐 아니라 온갖 꽃들을 다 먹었지만 그

중에서도 감꽃은 참 맛이 있었답니다. 떨떠름하면서 달착지근한 단맛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새벽에 일어나면 밤새 눈이 온 것 같이 마당에 하얗게 떨어진 감꽃은 환영 같았으며 많기도 했기 때문에 "깽기' 풀에 끼워서 목에 걸고 다니면서 먹기도 했답니다.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모릅니다. 국화과의 꽃인지는 알겠으나 산국, 감국, 산구절초, ......어디에 속하는

지는 알지 못합니다. 마을 길의 낭떠러지 부분에 그야말로 지천으로 피어있었는데 저절로 핀 것 같지 않아 어르신들께 여쭤 봤습니다.

"저기 국화는 누가 일부러 심으신 거지요? "하니, "일부러 심은 기 아이라, ......전에는 대나무가 있어서 집을 가리니까 비 뿌리고 꽃씨를 뿌린 게 저래 꽃밭이 돼 삐린기라" 하십니다. "그 뒤로 대나무가 다시 안 나와요?" 하고 다시 여쭈니 "몇 해는 다시 나왔지, 그라다가 꽃이 자꾸 번지니 인제는 안 나오데! " 하셨습니다. 대나무의 생명력도 꽃들에는 당할 수 없었나 봅니다.

 

 

 

  

 

비포장의 마을 길이었을때 자구책으로 대나무를 심었으나 그 후 포장이 되면서 길이 무너질 염려는 없었고 길 건넛집에 그늘을 만드는 대나무를 베어버린 후에 꽃씨를 뿌렸는가 봅니다. 지금은 대나무의 흔적은 없고 누가 심은 게 아닌 철 늦은 호박과 꽃들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빈집의 울타리  탱자나무는 잡초덩굴에 가려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탱자를 달고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밀감인가? 유잔가?" 하기도 하겠지만 보기만 해도 입에서 침이 고이게 하는 신맛과 쓴맛이 강한 넘입니다.

하나를 따 볼까 하고 손을 내밀다 그만두었습니다. 그 옛날의 맛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넣어두고 싶었습니다. 괜히 입에 대었다가는 "이런

걸 왜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기에...... 

 

 

실매리에서의 여명기 산책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은근한 재미를 조심스럽게 즐기는 그런 기분이었지요! 이런 풍경이 제각각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추억이 크기와 무게가 다를 수 있겠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실매리의 잡다한 풍경을 보면서 추억을 반추할 수 있는 것은 고향이 실매리와 같은 농촌이고 시골이며 따라서 "태생이 촌넘"이라 그럴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속도와 능률 속에서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을 새삼 �O은 기분은, .......이 나이에 바람이 난 것같은, .....연애를 하는 기분이랄까요? 하여튼 약간은 흥분되는 그런 기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