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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에서...... 만남과 헤어짐

세칸 2007. 11. 18. 22:36

가을의 끝에서...... 만남과 헤어짐

 

매년, 음력 시월 둘째 주 일요일은 우리 가족이 '신사'라 부르는 시제를 모시는 날입니다.

해마다 규모와 참석인원이 적어짐은 어쩌면 시속이 그러해서 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살기가 팍팍해서 인지도 모릅니다. 이 신사에 대한 추억도 만만찮게 많습니다만 코 묻은 손수건을 들고 신사 떡 얻으러 다니던 기억이나 추억은 중년을 넘긴 분들은 더러 있을 거라 봅니다.

 

참석인원도 적고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할 이유도 없으므로 나눠 먹을 정도의 음식만 준비합니다만 이런 정성도 언제까지 이어질지.....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습니다.

 

그 옛날에는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축대 밑에서 코 묻은 손수건을 들고 줄을 서 있었지요. 한 사람에게 한 몫의 떡만 주어 지지만 업은 아이가 있으면 두 몫을 주기도 했답니다.

 

 

 

 

 

머슴아 아이에게도 잔을 올리게 합니다. 제발 이런 풍습을 이어가 달라는 무언의 당부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도 이어질까? 하는 강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른들은 말씀하십니다. "내년에도 이렇게 산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하지만 이 말은 작년에도 하신 말이고 아마 내년에도 하시리라 봅니다. 산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이 있습니다. 나물과 따끈한 탕국만을 넣은 비빔밥이지만 어떤 성찬보다 더 맛이 있습니다. 아마 어떤 허물이라도 덮어줄 수 있는 집단인 가족과의 식사라 그런지도 모르지요.

 

 

 

 

 

집안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으나 음력 10월 초순부터 15일을 전후하여 시제(時祭)가 있습니다. 조상신은 5대까지만 사당이나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이상의 조상님들은 가을에 한꺼번에 산소에서 지내니 이를 묘 사(墓 祀), 혹은 시제(時祭)라 합니다.

식사를 마친 어른들은 선산이나 묘답의 관리나 처리 문제와 산소관리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참석인원이나 불참자에 대한 걱정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들으라는 듯 "우리가 죽으면 아마 끝이지 싶다......"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산소 주변은 가을이 한창입니다. 보리밥, 메망구, 구절초......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흔하디 흔한 것이지만 어느 것 하나 추억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메망구'는 산마늘이나 산부추로 알고 있고 특히 기억되는 추억이 많기도 합니다. 한 소쿠리 캐온 메망구는 잘 다듬고 한 묶음씩 다발을 지어 고추장 속에 묻어서 장아찌를 만들고는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양은 도시락 속의 칸막이 찬 통에는 의례 이 메망구가 차지하는 일이 태반이었지요. 그때는 그리 싫었지만 지금은 그 짭조름하고 아릿한 맛이 그립기도 합니다만...... 맛볼 수가 없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그런 추억을 전하기도 벅찹니다. "아빠 어릴 때는 바나나도 없었단다"  "......바나나가 왜 없었어요?" "...... ! ......! 일마! 없었으니까 없었지! 재배도 안 했지만 수입도 안 했으니까!" 아마 이 아이들은 어른이 돼도 '아빠가 어릴 때는 왜 바나나가 없었는지' '그게 얼마나 귀한 거였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시작되고 깊어지는가 했더니 이미 그 끝에 와 있습니다. 가을의 끝은 겨울의 시작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참 섭섭하고 왈칵 �O아온 겨울이 싫기도 합니다. 가을은 그래서 더 쓸쓸한지도 을씨년스런 지도 모르지요. 

 

부산, 금정구와 철마면 사이의 '물넘이 보'에는 아직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가끔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을 속을 가는 차 안에서 가을을 붙잡아 보려 했습니다. 제게 붙잡힌 가을은 앞유리창에 부딪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습니다. 멍든 가을아! 잘 가거라! 이 비포장도로는 부산의 금정구에서 철마면으로 넘어가는 경계부에 있습니다. 제발.....쓰레기는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놓치기 싫은 것은 가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을을 담은 시간이 없다면 추억도 있을 수 없겠지요.

아이들은 "추운 것 쯤이야" 하며 자전거 타기를 하겠다 합니다. 오랜만의 금정체육공원은 군데군데 제법 변화도 있었습니다.

맑은 하늘은 끝도 없이 높은데 커다란 전광판에서는 승률과 배당률이 표시되고 한순간의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분재전시장을 �O았습니다. 세월을 이긴 이 초목들은 도통한 듯이 의젓하게 단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는 이가 왜소해 짐은 아마 엄청난 세월을 인고로 이긴 것에 대한 존경이나 박수일 수 있습니다.

  

 

 

 

자유롭지 않은 자연스러움! 분재의 또 다른 이름을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구속과 속박 없는 자유는 없는 것인지...... 피 나는 아픔 없이 자유는 얻을 수 없는 것인지.....! 분재를 보고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넘들은 참 괴롭겠다' 또는 '참 안됐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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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자유롭게, 높이 높이 자유롭게 날아라! 하늘 끝까지! 세상 끝까지! 꿈보다 더 먼 곳까지! 그렇게 날아 보아라! 너희는 분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구속되고 속박되어 서도 안 된다. 틀 속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한자리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몇 달 만에 아버지 산소도 �O았습니다. 체 부정도 느껴보지 못한 1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눈물도 안 났던 내게 아버지는 근엄이고 강직이었으며 무서움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머리가 허예진 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시아버지의 얼굴을 어머님도 못 보셨다 하니, 없는 집 홀어미 밑의 장남인 아버지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버린 동생의 가족과 청년기를 방황한 막내의 가족까지 돌봐야 했던 고충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아버지 산소 옆에는 흰 동백이 한창이었고 때 이른 붉은 동백도 수줍은 듯 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성질 좀 죽이라고..... 고집 좀 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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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가을과는 작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을은 또 만날 수 있습니다.

올해 만난 사람을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억 속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추억을 만든 시간이 소중한 이유가 그런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아이들이 제게 묻습니다. "아빠! 아빠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 지금, 지금 이때가 가장 행복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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