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칠불사(七佛寺)와 아자방(亞字房)

세칸 2008. 3. 29. 03:42

칠불사(七佛寺)와 아자방(亞字房)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의 칠불사는 아자방만큼이나 수선 도량으로도 유명합니다. 지리산 깊숙한 심산유곡에 자리한 터라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부휴 선수(浮休 善修, 1543~1615), 대은 낭오(大隱 朗旿, 1780~1841),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 같은 선지식들이 이곳에서 수선(修禪)하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갔습니다. 대은 스님은 순조 연간에 이 절에 머물며 율맥을 정립했으며, 초의 스님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다도를 정리한 '다신전'의 초록을 작성했다 합니다.

 

 

1세기경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삼촌인 범승(梵僧) 장유 보옥선사를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 한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 하여 칠불사라 칭한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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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따로 우측에 성불한 일곱 왕자를 형상화한 칠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절집은 80년대 중, 후반의 대대적인 중수로 비교적 관리상태가 양호하며 대웅전의 단층은 아주 화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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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향의 '십리 벚꽃길'을 따라 들어오면 계곡 우측은 '화개동천'의 야생녹차 밭이 펼쳐집니다. 벚꽃길과 녹차 밭을 보면서 달리는 20여 km는 잠깐이며 칠불사와 대성리 계곡의 '의신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대략 10여 km를 더 지리산으로 오르셔야 칠불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포장도로와 이정표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칠불사 일주문 앞에는 넓은 주차장도 잘 마련돼 있습니다. 한적한 평일에는 일주문을 거쳐 절집 앞까지 차로 갈 수도 있으나 도보로도 그리 지루하지 않으며 먼 거리도 아닙니다.

절집은 평지형이 아니므로 대웅전까지는 약 80여 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하며 웅장하거나 거창하지 않으며 조용하고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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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방은 방안 네 귀퉁이에 약 70cm 높이로 좌선 대를 마련한 구조가 '亞' 자와 같습니다. 구조가 특이한 데다가 한 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또, 어떤 이는 석 달 열흘 온기가 가시지 않는다 하여 1979년 '세계건축 대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입니다.

신라 효공왕(897~911) 때 김해의 담공선사가 선방인 벽안당 건물을 길이 약 8m의 이중 온돌방으로 축조하였는데 그 모양이 '亞' 자와 같아 '亞字房'이라 칭한다 합니다. 1948년에 여순반란사건 때 소실되어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지금과 같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무익공계 건물로 1982년 우통관 선사에 의해 신축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합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자방에서의 면벽 참선은 스스로 하루 한 끼의 공양만으로 하는 전통이 있으며 당나라에까지 알려졌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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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는 지리산의 좌,우와 상,하의 중심부에 있어 지리산의 정기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위치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믿고 싶었는지 한 달 동안 10여 차례의 아침운동을 핑계하여 드나들고 있습니다. 절집이 얼마나 조용하고 편안한지 아침 6~8시 사이에 먼발치에서 스님을 뵌 적이 한 두 차례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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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납자들이 머물렀을 이 절에는 5기의 부도가 남아 있습니다. 4기는 부휴 스님과 인허당(印虛堂), 백암당(柏庵堂), 무가당(無價堂)의 부도이고, 1기는 주인을 알 수 없습니다. 인허당과 백암당, 무가당이 어느 시기 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백암당’은 지리산에서 취미 수초(翠微 守初, 1590~1668) 스님의 법을 이은 백암 성총(柏庵 性聰, 1631~1700) 스님일지도 모른다 합니다. 취미 스님의 스승이 부휴 스님의 전법제자인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 스님인데다가, 당호의 한자마저 똑같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는 일주문 밖 ‘초의선사다신탑비(艸衣禪師茶神塔碑)’ 앞에 홀로 동그마니 앉아 있으며 크기는 1m 남짓. 옥개석과 지대석을 잃었던 것을 최근 보충하고 주변을 정비해 그다지 허허롭지는 않습니다. 그 옛날 이곳 칠불사에서 참나를 찾아 정진했을 부도의 주인은 이제 이곳에 앉아 난야를 오가는 납자들에게 용맹정진을 당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칠불사의 현판과 주련은 모두(일주문 현판만 제외) 작고하신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의 글씨로 채워져 있습니다.

제가 운동을 핑계하며 칠불사 산보를 다니는 이유가 존경하는 선생의 글씨감상은 아닌지, ... 저도 잘 모릅니다.

아자방의 현판과 주련은 80년대 초반이며 그 외는 80년대 중 후반부의 글씨로 선생의 필치가 가장 잘 나타나는 활동기의 글씨로 흉내 낼 수 없는 활달함과 편안함이 호방하기까지 합니다. 

 

 

악행과 악습이 남은 사람이 감히 불자라 하기도 스스로 두려워 생각조차 않습니다만 칠불사 어느 담벼락에 붙은 다음 구절은 저를 위한 부처님 말씀처럼 들려 소름이 돋았고 읽고 또 읽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움을 참는 것이 진실한 참음이고,

누구나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은 일상의 참음이다.

자기보다 약한 이의 허물을 용서하고,

부귀영화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하라.

참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이 수행의 덕이니,

원망을 원망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내는 사람을 대하여도 마음을 고요히 하여,

남들이 모두 악행 한다고 가담하지 마라.

강한 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 서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참음이다.

욕설과 헐뜯음을 못 참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욕설과 비방을 잘 참음은 지혜로움이니,

욕설과 칭찬으로 지혜로운 이를 어찌하지 못함은

큰 바위에 폭우가 쏟아져도 부서지지 않음과 같아

비방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만나도

지혜로운 어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이 사실이니 성낼 것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화를 내지 않는다.

<잡보장경>

 

이번 주말의 벚꽃은 조금 이른 감이 있습니다. 어제오늘은 꽃을 샘하는지 제법 쌀쌀하기도 하고 주말 저녁부터는 비도 온다 합니다.

4/4 ~ 4/6일은 화개장터 일원에서 벚꽃축제를 연다 합니다. 축제기간의 벚꽃은 아마 절정이지 싶습니다.

화개에 오실 일이 계시면 꼭 칠불사를 방문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칠불사는 크고 화려하진 않습니다. 마음이 허하신 분들은 지리산의 정기를 가득 담아가시길 거듭 권합니다.

 

뜸한 포스팅과 늦은 답글을 용서 바랍니다.

운동을 핑계하며 칠불사 산보를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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