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로 읽는 세상사
- 어두운 세월 살라버리고 새 해야, 솟아라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
새해 벽두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노이 이젠부르그 동쪽 호이젠슈탐의 중학교 체육관에서는 기이한 축제가 벌어진다. 루프트한자 항공사가 승객들이 잃어버린 뒤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모아 경매하는 축제다. 경찰이 미리 수색해 폭발물과 무기, 마약 검사를 거친 가방들은 다시 밀봉된 채 무게만 공개된다.
사람들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오직 무게만으로 가방을 산다. 사자마자 관중 앞에서 내용물을 쏟아내 보이며 함께 웃고 즐거워한다. 가방들은 그야말로 도깨비 상자다. 새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가방처럼 호기심과 가능성, 희망을 한가득 품고 있다.
‘…//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
- 천양희 ‘어떤 일생’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린다는 병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얘기가 나온다. 농부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매일매일 보며 들에서 일하다 어느날 속에서 무언가 뚝하고 끊어져 버린다. 농부는 괭이를 내던지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걸어간다. 걷다 멈추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농부가 견뎌내지 못한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일상이었을까. 숨막히게 반복되는 일상에 큰 획을 그어주는 새해가 없다면 이 죽음의 병은 시베리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월 초하루는 하루 아침에 해와 달과 날이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삼시(三始)라고 했다. 삼조(三朝), 삼원(三元)이라고도 했다. 같은 해가 솟아도 새해엔 천지만물 삼라만상이 새롭게 마련이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 ‘설날 아침에’
시인은 감정이나 감상(感傷)에 달뜨지 않은 잔잔한 음성으로 새 해를 맞는다. 이 시를 나지막이 소리내 읽자면 어느덧 가슴이 훈훈해진다. 긍정적이고 경건한 삶의 자세가 와닿는다. 아무리 험난하고 각박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희망과 자족(自足)을 새해가 되살린다. 행복이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드문 것일까. 이런 새해라면 또 한 살 나이 먹는 것도 허망하지가 않다.
또다시 탈진과 후회로 끝날지라도 아름다운 꿈 새로 꿀 수 있는 특권은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새해 새 아침, 고달픈 삶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고 청신한 가슴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원해본다. 어진 이웃들을 향한 귀를 밝히고 눈을 씻어 관용과 사랑으로 새 출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본다.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
- 김남조 ‘새해 아침의 기도’
40대 샐러리맨은 중학생 시절, 전차(電車)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아 통학하던 한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또렷한 행복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여고생은 귀지를 파주던 엄마의 무릎 감촉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한다. 팔순 할머니는 대숲에서 주먹밥을 먹던 순간을 떠올린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사후(死後) 세계에 들어서는 영혼들이 꼽는 행복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바로 행복 곁에서 산다. 그러면서도 늘 행복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행복은 어쩌다 있을까 말까 한 큰 행운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일어나는 작고 기쁜 일에서 쌓인다. 전한(前漢) 교훈집 설원(說苑)에도 ‘복은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싹튼다(福生於微)’고 했다. 행복은 다른 집 마당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눈앞에 오는 일을 족한 줄 알고 보면 바로 그 자리가 선경(仙境)이다.
로마인들은 1월 1일마다 선물을 주고받고 잔치를 벌였다. 앞뒤로 두 얼굴을 지닌 1월(January)의 신 야누스(Janus)처럼 지난해의 잘못을 돌아보고 새해를 새 의지로 내다본다는 뜻이었다. 톨스토이는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난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순간마다 가치 있는 삶을 생각하고 노력하라고 시인은 이른다. 그 순간이 시간으로 쌓이고 시간이 하루가, 하루가 한 달이, 한 달이 다 시 한 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구상 ‘오늘’
채근담(菜根談)에 날씨의 춥고 뜨거움(寒暑)보다 피하기 힘든 게 세간 인심의 차고 더움이고, 그 인세(人世)의 염량(炎凉)보다 벗어나기 어려운 게 내 마음의 빙탄(氷炭)이라고 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얼음덩이, 숯덩이를 함께 품고서 몸부림치는 세상이다. 모두들 신기루처럼 거창한 행복에 허기져 분노하고 증오한다.
‘새해 왔다고 지난날보다/ 껑충껑충 뛰어/ 단오날 열일곱짜리 풋가슴 널뛰기로/ 하루 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 //새해도 여느 여느 새해인지라/ 궂은 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 때로 그런 것들을/ 칼로 베이듯 잘라버리는/ 해와 같은 웃음소리 있을 터이니….’
- 고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
사람들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른 채 오직 무게만으로 가방을 산다. 사자마자 관중 앞에서 내용물을 쏟아내 보이며 함께 웃고 즐거워한다. 가방들은 그야말로 도깨비 상자다. 새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가방처럼 호기심과 가능성, 희망을 한가득 품고 있다.
‘…//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
- 천양희 ‘어떤 일생’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린다는 병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얘기가 나온다. 농부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매일매일 보며 들에서 일하다 어느날 속에서 무언가 뚝하고 끊어져 버린다. 농부는 괭이를 내던지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걸어간다. 걷다 멈추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농부가 견뎌내지 못한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는 일상이었을까. 숨막히게 반복되는 일상에 큰 획을 그어주는 새해가 없다면 이 죽음의 병은 시베리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정월 초하루는 하루 아침에 해와 달과 날이 새로 시작한다고 해서 삼시(三始)라고 했다. 삼조(三朝), 삼원(三元)이라고도 했다. 같은 해가 솟아도 새해엔 천지만물 삼라만상이 새롭게 마련이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김종길 ‘설날 아침에’
시인은 감정이나 감상(感傷)에 달뜨지 않은 잔잔한 음성으로 새 해를 맞는다. 이 시를 나지막이 소리내 읽자면 어느덧 가슴이 훈훈해진다. 긍정적이고 경건한 삶의 자세가 와닿는다. 아무리 험난하고 각박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희망과 자족(自足)을 새해가 되살린다. 행복이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드문 것일까. 이런 새해라면 또 한 살 나이 먹는 것도 허망하지가 않다.
또다시 탈진과 후회로 끝날지라도 아름다운 꿈 새로 꿀 수 있는 특권은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새해 새 아침, 고달픈 삶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고 청신한 가슴으로 살게 해달라고 기원해본다. 어진 이웃들을 향한 귀를 밝히고 눈을 씻어 관용과 사랑으로 새 출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해본다.
‘첫 눈뜸에/ 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 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 아득한 날에/ 예비하여 가꾸신/ 은총의 누리/ 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 젊디젊은 심장으로/ 시대의 주인으로/ 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 첫 눈뜸에/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 서로의 속사랑에/ 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 ….’
- 김남조 ‘새해 아침의 기도’
40대 샐러리맨은 중학생 시절, 전차(電車)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아 통학하던 한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또렷한 행복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여고생은 귀지를 파주던 엄마의 무릎 감촉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간직한다. 팔순 할머니는 대숲에서 주먹밥을 먹던 순간을 떠올린다. 어느 일본 영화에서 사후(死後) 세계에 들어서는 영혼들이 꼽는 행복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바로 행복 곁에서 산다. 그러면서도 늘 행복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행복은 어쩌다 있을까 말까 한 큰 행운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일어나는 작고 기쁜 일에서 쌓인다. 전한(前漢) 교훈집 설원(說苑)에도 ‘복은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싹튼다(福生於微)’고 했다. 행복은 다른 집 마당에서 찾지 말라고 했다. 눈앞에 오는 일을 족한 줄 알고 보면 바로 그 자리가 선경(仙境)이다.
로마인들은 1월 1일마다 선물을 주고받고 잔치를 벌였다. 앞뒤로 두 얼굴을 지닌 1월(January)의 신 야누스(Janus)처럼 지난해의 잘못을 돌아보고 새해를 새 의지로 내다본다는 뜻이었다. 톨스토이는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난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순간마다 가치 있는 삶을 생각하고 노력하라고 시인은 이른다. 그 순간이 시간으로 쌓이고 시간이 하루가, 하루가 한 달이, 한 달이 다 시 한 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구상 ‘오늘’
채근담(菜根談)에 날씨의 춥고 뜨거움(寒暑)보다 피하기 힘든 게 세간 인심의 차고 더움이고, 그 인세(人世)의 염량(炎凉)보다 벗어나기 어려운 게 내 마음의 빙탄(氷炭)이라고 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얼음덩이, 숯덩이를 함께 품고서 몸부림치는 세상이다. 모두들 신기루처럼 거창한 행복에 허기져 분노하고 증오한다.
‘새해 왔다고 지난날보다/ 껑충껑충 뛰어/ 단오날 열일곱짜리 풋가슴 널뛰기로/ 하루 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 //새해도 여느 여느 새해인지라/ 궂은 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 때로 그런 것들을/ 칼로 베이듯 잘라버리는/ 해와 같은 웃음소리 있을 터이니….’
- 고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
내가 새로워야 새해도 새로운 법이다. 올해도 시련과 수난이 닥칠 테지만 그 어려움들을 꺼리지 말자. 명성의 노예도, 모략의 빌미도, 일의 종도 되지 말고 지혜의 주인이 되자. 들판의 안개를 아침 햇살이 걷어내듯 남루한 회한과 미망을 털어내고 내 곁의 행복을 찾아 나서자.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니라’(유치환 ‘너에게’). 어둡고 찌든 한 해 불살라버리고 새 해가 솟았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박두진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박두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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