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영화 ‘칼라스 포에버’

세칸 2008. 1. 11. 00:19
화제의 영화 ‘칼라스 포에버’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 그리고 무대 밖의 사랑
20세기 최고 소프라노 스크린에 부활... 친구인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연출

 

 

올해는 음악영화가 풍년이었다. 인디음악을 소재로 한 ‘원스’, 크로스 오버 클래식을 선보인 ‘포미니츠’,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그린 ‘라비앙 로즈’,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의 감동 스토리를 담은 ‘어거스트 러쉬’ 등이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칼라스 포에버’(12월 27일 개봉)가 올 음악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게 됐다.

 

 

영화 속 래리(왼쪽)와 마리아 칼라스.  

 
 
‘칼라스 포에버’는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1923~1977년)의 은둔 시기를 다룬 일종의 가상극이다. 칼라스(화니 아르당)는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사랑과 아름다웠던 자신의 목소리를 세월 속에 묻어버린 채 여생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은둔하며 지내려 한다.

이때 친구이자 공연기획자인 래리(제레미 아이언스)는 그녀의 예술성과 천재성을 다시 한 번 세상에 보여주자며 놀라운 제안을 한다. 바로 현대과학의 기술로 그녀의 전성기 때 목소리를 되살린 오페라 영화를 제작하자는 것이다.

절대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공연실황에 젊은 시절 목소리를 입힌 편집본을 듣는 순간 음악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나 제안을 수락한다. 영화화될 작품은 오페라 ‘카르멘’. 그녀는 사랑의 아픔과 예술에 대한 정열을 매혹적인 집시여인 ‘카르멘’에게 쏟아붓는다. 또 칼라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새라(조안 플로라이트)는 그녀가 재기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음악영화인 ‘칼라스 포에버’에서는 칼라스가 전성기에 부른 주옥 같은 오페라 아리아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칼라스의 대표곡인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을 비롯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2007년 전세계는 ‘마리아 칼라스’의 추모 열풍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사망한 지 30년이 된 것을 추모하기 위해 그리스는 2007년을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 행사를 개최했고, 프랑스·이탈리아·미국·한국 등에서도 추모 열기가 잇따랐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12월 2일 뉴욕에서 출생했다. 그리스 아테네 약대를 졸업한 조지 칼로게로풀로와 여배우를 꿈꾸던 에반젤리아 칼로게로풀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뚱뚱했고 근시가 심해 두꺼운 안경을 착용했으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이런 그녀를 위로해 준 것은 바로 음악. 7세 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1937년 부모가 헤어져 그리스 친척집으로 가서는 외삼촌 에프티미오의 도움으로 아테네 국립고등음악원에 들어갔으며, 아테네 오페라단의 평생단원이 됐다. 22세 때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려 했지만,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95kg.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탈락했고 이탈리아로 무대를 옮겼다.

1947년 28세 연상의 사업가이자 자신의 열렬한 후원자인 메네기니를 만나 결혼했고, ‘라 지오콘다’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으며, ‘트리스탄과 이졸데’ ‘투란도트’ ‘아이다’ ‘노르마’ 등에 출연했다. 하지만 1957년 선박왕 오나시스의 파티에 초대받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진 칼라스는 음악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그녀는 무대를 포기하고 오나시스와 함께 화려한 상류생활을 즐기는 데 몰두했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리스 국적을 획득하면서까지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갈망했지만 오나시스는 그녀를 배신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했다. 칼라스는 1974년 10월 서울 이화여대 강당에서 ‘카르멘’ ‘라 죠콘다’ ‘메피스토펠레’ ‘쟈니 스키키’ ‘라 보엠’ ‘토스카’ 등으로 내한 공연을 했고, 11월 일본 삿포로에서는 마지막 대중공연을 했다. 이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칩거하다가 1977년 9월 1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 칼라스 실제 모습.  

 
 
프랑스 영화 ‘칼라스 포에버’를 연출한 이탈리아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의 절친한 친구였고, 그녀가 출연한 오페라 ‘아이다’ ‘토스카’ ‘이탈리아의 터키인’ 등을 연출했다. 라디오 성우와 배우 활동을 했던 제피렐리는 영화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제피렐리는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한 ‘로미오와 줄리엣’과 ‘햄릿’ ‘제인 에어’ 등을 연출했다. 2004년 이탈리아인 최초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다.

제피렐리 감독은 칼라스가 죽고 난 뒤부터 줄곧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모두 그녀의 사생활에 관한 뒷이야기만 다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여름, 제작자 지오바넬라 자노니를 만나 ‘예술가와 예술가를 만들어낸 과정을 극적으로 담아내자’고 합의한 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피렐리는 “예수 탄생 전후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는 것처럼 오페라에서의 기원전(B.C)은 바로 ‘칼라스 이전(Before Callas)’을 뜻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극중 음악감독으로 출연한 유진 콘은 1970년대 초반 3년 동안 마리아 칼라스의 피아노 연주자였다. 또 메이크업 총감독인 닐로 자코포니는 칼라스가 출연했던 영화 ‘메데아’에서 함께 작업한 스태프였다.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은 화니 아르당은 ‘8명의 여인들’ ‘사랑해, 파리’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누벨바그의 선두주자였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이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한 연극 ‘더 마스터 클래스’에서 칼라스를 연기한 바 있는 화니 아르당은 생전의 마리아 칼라스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아리아를 레슨받은 것은 물론 그녀의 걸음걸이, 손짓, 웃는 표정, 목에 서는 핏대 등 모든 미세한 움직임을 세심하게 연구했다. 래리 역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다이하드3’ ‘에라곤’ ‘베니스의 상인’ ‘아이언 마스크’ 등에 출연해 역시 많은 한국 팬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 칼라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깔끔하게 빗어넘겨 틀어올린 헤어스타일, 오뚝한 콧날과 큰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 화려한 드레스 등 1950년대 패션 스타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고 과감했다. 코코 샤넬과 친분이 있었던 제피렐리 감독은 칼라스의 패션 스타일을 부활시키는 데 샤넬 스타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의 제안에 샤넬 측은 모든 것을 조건없이 제공했다. 목걸이, 팔찌 등 액세서리리는 모두 스와로브스키 제품으로 실제로 칼라스가 착용했던 것과 유사한 것들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크랭크인한 영화 ‘칼라스 포에버’는 이후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스페인 오수나 등 유럽의 곳곳에서 촬영됐다. 파리는 마리아 칼라스가 말년을 보낸 장소로 스토리상 매우 중요한 곳이다. 유명 연예인과 상류층이 거주한다는 트로카데로와 방돔 광장, 샹젤리제 등 프랑스 명소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러닝타임 108분.
 
서일호 기자 ihs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