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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페어는 국제적 ‘미술 5일장’

세칸 2008. 1. 6. 20:09

미술과 돈 15

아트페어는 국제적 ‘미술 5일장’
화랑 100여 개가 동시에 전시회... 현대미술의 흐름 생생히 볼 수 있어

 

 

현대미술의 생생한 흐름과 미술시장의 세계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장이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국제 아트페어(Art Fair)다. 세계의 주요 갤러리들이 한곳에 모여 임시 부스를 차려놓고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행사, 즉 ‘미술 5일장’이라고 보면 된다. 화랑 100개 정도가 같이 차리는 대규모 전시라고 봐도 된다. 하지만 전시의 목적이 순전히 판매에 있다는 점에서 비엔날레나 미술관 전시와 완전히 다르다. 한마디로 아트페어에 가보면 요즘 잘 팔리는 미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지난 4월12~16일 열린 베이징 국제 아트페어.

 

아트페어는 세계의 미술 컬렉터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컬렉터가 미국, 중국, 유럽, 한국 모두 돌아다니기는 어렵지만, 아트페어 하나에 가기는 쉽다. 미술애호가 입장에서는 각국 주요 화랑의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쇼핑하고, 세계의 수많은 딜러와 작가를 한번에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아트페어다.

컬렉터들은 좋은 작품이 나오는 아트페어만 골라서 다닌다. 당연히 주최 측은 화랑의 신청을 받고 심사를 해 팔릴 만한 좋은 화랑을 골라낸다. 그러니 좋은 아트페어일수록 심사가 엄격하다. 아트페어의 주최 측은 보통 참가 화랑에서 2000만~5000만원 정도 부스비를 받는다. 작품을 판 돈은 화랑이 모두 챙긴다.

아트페어는 장사하기 위해 세계의 화랑이 모이는 것이니 뉴욕, 런던, LA, 마이애미 등 경제가 발달하고 미술 애호가가 밀집한 곳에서 주로 열린다. 뉴욕의 아모리쇼, 마이애미의 바젤 아트페어,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정 받는 아트페어다. 요즘은 러시아에서 미술 컬렉터가 부상하면서 모스크바에서도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베이징 국제 아트페어의 독일 크리스타 슈에베르 갤러리 부스.

 

베이징과 상하이도 각각 2004년, 2003년부터 아트페어를 시작했다. 중국 현대미술의 인기와 가격이 치솟고 중국에 부자 컬렉터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므로 당연한 현상이다. 특히 베이징은 요즘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도시가 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아트페어 역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레저 정보지인 ‘타임아웃’의 주최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저렴한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도 4월 27~30일에 베이징에서 열린다.

사실 이렇게 저렴한 미술품만 모은 아트페어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트스코프(Art Scope)’가 그 예다. 2002년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처음 시작해 2년 만에 LA, 런던, 파리로 넓혀갔고 이후 해마다 계속 개최 도시를 늘려가고 있다. 신인 미술 딜러들이 젊은 현대미술 작가의 ‘막 뜨는 작품’을 들고 나오기 때문에 적게는 100달러에서 비싼 작품도 수천달러 안팎이다. 특정한 장르에만 초점을 맞추는 아트페어도 인기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포토런던’은 사진, 필름, 비디오 작품만 다루는 전문 아트페어다. 영국 가수 엘튼 존이 작년에 이 아트페어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사진작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을 2700만원에 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욕의 아모리쇼.

 

아트페어는 컬렉터들이 여행하기 좋은 봄·가을에 맞춰 집중적으로 열린다. 4~5월은 특히 아트페어 전성기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제 아트페어는 4월 12~16일에 있었던 ‘중국 국제 화랑박람회’(베이징 아트페어)였다. 17개국에서 온 갤러리 97개가 저마다 대표작을 내걸고 판매 경쟁을 했다. 이 페어는 1·2회 때만 해도 아시아국가 갤러리들이 주로 참가했지만, 3회를 맞는 올해는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양국가에서도 빠짐없이 왔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 가나아트 갤러리, 갤러리 현대 등 주요 화랑 14곳이 참가했다. 중국 인기작가로 위에민쥔, 팡리쥔, 장샤오강, 양샤오빈, 펑전지에, 국내작가로 박서보, 전광영, 정연두, 고영훈, 배준성, 손동현, 최소영 등 수많은 작가들이 이 자리에서 선보이고 팔렸다. 국내 화랑은 대부분 “예상보다 잘 팔았다”며 만족해했다.

작가들 입장에서는 아트페어에 작품이 걸리면 세계의 많은 관람객, 컬렉터, 큐레이터에게 선보일 수 있어 좋다. 유럽, 미국, 중국의 미술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로 직접 찾아오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아트페어에 나가면 한자리에서 여러 나라 미술인에게 한꺼번에 작가를 선보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알려진 우리 작가가 종종 외국 주요 미술관에도 진출한다.

가나아트 갤러리의 이옥경 대표는 “아트페어에 나가면 외국 컬렉터와 큐레이터에게 우리 작가를 한번에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 국내 미술시장이 한정돼 있고 현대미술시장은 국제화되었기 때문에 아트페어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올해 베이징 아트페어에 참가했던 독일 슈에베르 갤러리의 대표 크리스타 슈에베르(62)씨는 “중국에는 미술 컬렉터가 많은데 아직까지는 대부분이 자국 작가들 작품만 사고 있다. 잠재력이 큰 중국 컬렉터에게 독일작가를 소개하면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뉴욕의 아모리쇼.

 

아트페어는 장사하는 곳이지만 100% 장사에만 혈안이 돼 있으면 컬렉터를 끌어들이기 어렵다. 특히 아트페어가 우후죽순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 품질도 높여야 하고, 다른 이벤트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심포지엄이나 강연을 하는 부대행사도 곁들여지곤 한다. 미술애호가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여기에 와서 그림 사세요”라고 손을 흔드는 것이다. 각 화랑이 초청하는 핵심 컬렉터에게는 일반인보다 하루 먼저 전시장을 공개해 먼저 살 수 있는 특권을 주기도 한다. 저녁엔 VIP를 위한 파티도 열어준다.

컬렉터가 아니라도, 해외여행을 할 때 그 도시에서 아트페어가 열리는 걸 본다면 한번 가보는 건 어떨까? 살아있는 현대미술과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사람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미술현장이기 때문이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