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돈 12 화가는 아픈 만큼 비싸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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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그럼 화가는? 화가와 작품값을 얘기할 때 이 흔한 말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화가도 아픈 만큼 비싸진다”고.
화가의 굴곡진 삶, 사연 많은 인생이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만들고, 그러면서 관객이 그 화가에 대해 가지는 신비감과 관심도 역시 높아지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작가의 경제적 가치도 올라간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위험하고 괘씸한 일이다. 하지만 유명화가의 인생과, 사후 그 화가에게 매겨진 평가 및 경제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고 그림 값도 가장 비싼 화가 박수근(1914~1965). 그는 생전에 가난하고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고생을 많이 한 화가였다.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려 받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갔고, 두 아들을 병으로 잃기도 했다. 그는 남은 자식들에게 “화가의 길은 가난하고 어려운 길이니 절대 화가가 되지 말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피카소(1881~1973).
하지만 박수근이 겪었던 그 고통스러웠던 삶은 그대로 그의 화폭 속에 들어앉았다. 숨김도 과장도 부끄러움도 원망도 없는 서민의 애환. 그런 감정이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에 훗날 많은 사람이 빠져들었다. 우리는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어려웠던 삶을 생각하고, 그와 더불어 누구나 다 어려웠던 6·25전쟁 이후 근대화 시기를 생각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박수근이 비싼 화가가 된 데에는 이런 여러 요소가 더불어 작용했다.
이중섭(1916~1956) 역시 가난하고 불운한 화가였다. 일본 유학 중 만난 일본여인과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았지만, 한국에 와서 사는 동안 전쟁이 터져 네 가족이 피란을 다니며 쪼들리게 살았다. 나중엔 가족은 일본에, 그는 한국에 떨어져 생이별을 한 채 살았다. 그리고 그는 외롭게 죽어갔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과 사랑은 가족을 주제로 한 수많은 그림으로 남았다. 우리는 이중섭의 그림을 볼 때 불운했던 한 천재화가의 삶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이 화가가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했는지를 생각하며 그의 그림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박수근과 이중섭은 둘 다 현재 그 가치를 이루 셈할 수 없는 화가들이다. 이런 화가를 가리켜 우리는 흔히 ‘살아서는 궁핍했지만 죽어서 신화가 된 화가’라고 한다.
박수근 `앉아있는 여인` (리움 소장)
서양미술사에서도 이런 화가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많다. 평생 여섯 명의 여자와 살며 방탕하기까지 했던 피카소(1881~1973)의 경우에도 고통스러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스페인 소년인 피카소가 낯선 파리에 막 정착해 마땅히 거처할 곳 없이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때는 1900년대 초다. 이때를 우리는 이른바 ‘청색시대(blue period)’라 부른다. 특히 1901년, 가까운 친구 카사헤마스가 자살을 하자 피카소는 극도로 우울해진다. ‘청색시대’에 그린 피카소의 작품은 우울한 청색 톤이 드리워지고 감성적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카소가 평생 걸쳐 그린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품은 이 시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세계 경매사상 가장 비싸게 팔렸던 작품도 피카소가 ‘청색시대’인 1905년 그린 유화 ‘파이프를 든 소년’이다. 2004년 5월 소더비의 뉴욕 경매에서 1억400만달러(1400억원)에 낙찰됐다.
‘우울’하면 떠오르는 화가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정상적인 사랑도 하지 못했고 나중엔 정신병에 발작증세까지 보여 병원을 오갔던 사람. 자신의 귀를 칼로 잘랐던 광인(狂人),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최후, 그런 광적인 면이 그대로 들어간 정열적인 색감과 붓터치…. 우리가 일반적으로 반 고흐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반 고흐라는 화가가 신비한 화가, 탐구해보고 싶은 화가인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품 값은 역시 천문학적이다. 그 유명한 ‘가쉐 박사의 초상화’는 1990년에 8250만달러(825억원)에 경매됐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애널리스트인 주디스 벤하무 위에는 그의 저서 ‘미술의 가치(The Worth of Art)’에서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한 작가의 작품은 그 작가의 삶과 연관된 신화를 통해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어떤 작가의 ‘죽음’ 또는 그 작가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미술작품의 평가에 낭만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과감하게 해석한다.
그런데 이런 굴곡진 삶을 살지 않았던 화가라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거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가슴 아프게 잃는 비극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화가라면? 나름대로 ‘형편에 맞는 신화’를 만들어내면 된다. 주디스가 이런 황당한 화가의 예로 든 사람이 바로 앤디 워홀(1928~1987)이다.
이중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연필과 수채로 그려 보낸 그림 `길 떠나는 가족`.
누구보다도 상업적인 감각이 뛰어났던 앤디 워홀은 화가의 삶에는 극적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반 고흐나 피카소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대신 자신이 살던 시대의 ‘신화적인 인물’을 자기 작품의 대표적인 소재로 사용해 스스로 현대 미국미술의 스타가 될 줄을 알았다. 그가 미국 현대문명의 우상인 마릴린 먼로, 케네디 대통령, 재클린 케네디 등을 작품의 단골소재로 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심지어 화가가 비운의 죽음을 당하면 신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워홀은 공공연하게 인정했다. 1968년에 앤디 워홀은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남았을 텐데….”
이런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를 훑어보면, 유명화가 역시 대중문화 스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인기 있는 화가란 관객의 사랑을 많이 받는 화가이니 말이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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