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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손님 다 뺏길라” 화랑가 긴장

세칸 2008. 1. 6. 19:34

미술과 돈 11

“경매에 손님 다 뺏길라” 화랑가 긴장
시장 투명화에 경매가 기여했지만 화랑도 `1차 시장`으로서 역할 커

 

 

국내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이 요즘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경매낙찰률도 계속 오르고, 경매를 한번 할 때마다 최고 낙찰가 기록도 속속 깨진다. 그러자 이젠 화랑 주인들이 화가 났다. 화랑 주인들은 “미술시장이 경매에 치우치고 있다” “손님을 경매에 빼앗겼다” “경매는 비싼 화가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대부분 화랑은 돈 안되는 작가만 다뤄서 게임이 안된다”며 긴장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화랑협회 총회가 열려 신임 회장을 뽑았는데, 회장 선거에서 주된 이슈 중 하나는 ‘경매회사들의 질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다. 신임 회장이 된 이현숙 국제화랑 대표는 “미술시장이 경매 위주로 편중되는 것을 막겠다”고 정견을 밝히기도 했다.

대체 경매회사는 뭐고 화랑은 뭔가? 이 둘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왜 그 동안 잠잠했던 국내 미술계에 경매회사가 떠오르고 최근 부쩍 인기를 끄는 것일까? 그리고 크리스티와 소더비라는 수퍼 경매회사가 있는 외국에서도 화랑(갤러리)은 화랑대로 건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화랑이 경매회사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일까?

답부터 요약해 말하면 이렇다. 경매회사와 화랑은 미술시장에서 ‘중개상인’이라는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투명화를 위해서는 화랑도 있어야 하고, 경매회사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매회사는 둘 다 대형화랑이 만든 것이라 ‘경매회사’와 ‘화랑’의 구분이 애매하게 됐다. 그래서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네의 유화 `경마` 가 2004년 5월 뉴욕 소더비에서 팔리던 순간.

 

경매회사와 화랑은 둘 다 ‘중개자’다. 화가와 관람객이 직접 그림을 사고 팔지 않는 한, 경매회사나 화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화랑은 화가와 계약을 맺고 화가의 화실에서 바로 작품을 들고 와 관람객에게 직접 팔기에 ‘1차 시장’이라고 불린다. 반면 경매회사는 ‘2차 시장’이라고 불린다. 작품이 화가에게서 직접 오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을 한번 샀던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다시 내놓거나, 화랑이 자기들이 소장한 작품을 내놓는 등 작품이 화가의 화실을 떠나 여기저기 돌다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경매시장은 ‘중고 시장’인 셈이다.

화랑에서는 어떤 그림이 정확히 얼마에 팔렸는지, 그 거래에서 화상(畵商)이 커미션을 얼마나 챙겼는지 정확히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매회사에서 그림이 거래될 때는 팔려나가는 순간 판매가격이 천하에 공개된다. 기록을 깨는 높은 가격이거나 특이한 물건이 팔린 것이라면, 다음날 바로 신문에 보도되고 기록에 남는다. 그리고 경매회사는 10%든 20%든 회사마다 낙찰가에 따라 받기로 미리 약정한 만큼 커미션을 챙긴다. 그래서 경매회사는 미술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데 기여를 한다.

화랑을 통해 그림을 살 땐 화랑 주인이나 작가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정보를 가질 수도 있고, 더 싸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경매는 다르다.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판매를 하기 때문에 누구나 똑같은 조건으로 사고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술시장 규모가 커지고 선진화되면 경매회사가 성장하게끔 돼 있다. 경매는 대중이 참여하기 더 쉽고, 비교적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경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값을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화랑에서는 화상과 화가가 값을 결정한다. 소비자는 매겨진 가격을 보고 돈을 낸다. 하지만 경매장에서는 소비자가 값을 정한다. 많은 사람이 좋아해서 경쟁이 붙는 작품은 비싸게 낙찰되고, 별로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작품은 싸게 낙찰되거나 유찰된다. 그래서 경매는 미술시장의 ‘민주화’라 불린다. 별 가치도 없는데 화가가 스스로 높게 평가해 쓸데없이 비쌌던 그림이라면, 경매에서는 적당히 낮은 가격에 팔리게 된다. 그래서 경매는 미술 가격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작년 6월 런던 크리스티에서 인상주의와 근대 미술 경매를 앞두고 프리뷰 전시를 하던 모습.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이다. 경매회사에서는 100% 소비자에 의해, 투명하고 분명한 원칙에 의해서만 값이 결정될까? 글쎄….

경매에서도 소비자의 선호도 외에 다른 온갖 변수들이 값을 결정하는 데 작용을 한다는 얘기다. ‘미술의 가치(The Worth of Art)’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미술시장 애널리스트 주디스 벤하무 위에는 “경매는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경매사의 재량에 따라 낙찰가가 달라진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에 이어 제3경매사인 ‘필립스’를 세운 사이먼 드 퓨리씨는 “만일 똑같은 작품이 서로 다른 네 명의 경매사에 의해 네 번 팔렸다면, 제각각 낙찰가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마치 카지노에서 도박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매에서도 그 날 분위기에 따라 값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다. 게다가 경매에서는 내가 계속 값을 올려 저 그림을 살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단 몇 초 안에 결정해야 한다. 자연히 장내 분위기에 따라 내 손은 응찰표를 들었다 놨다 하게 마련이다.

그밖에 경매회사에서 그 작품의 낙찰 예상가를 어떻게 정하느냐,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홍보하느냐 등에 따라서도 낙찰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 경매에 나오면 높은 가격에 팔리기 쉽다. 일반적으로 화랑에서 파는 작품보다는 경매에 나온 작품이 언론과 대중의 눈길을 끌기에도 좋고, 특이한 작품은 여기저기에서 경쟁자가 많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반면 그저 그런 작품은 화랑에서보다 경매에서 더 싸게 팔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매회사는 경매회사대로 화랑은 화랑대로 소비자에게는 필요한 법이다.

 

 지난 2월 뉴욕 크리스티의 프리뷰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반 고흐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화랑과 경매회사가 뚜렷이 구분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옥션은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 회장이 대주주이고 K옥션은 갤러리 현대가 대주주다. 화랑이 경매회사를 차리다 보니, 1차 시장인 화랑과 2차 시장인 경매회사의 구분이 모호하게 돼 버렸다. 국내 중소화랑이 반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판은 돌아가고 있다. 침체돼 있던 국내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은 모두가 기다리던 반가운 일이고, 어려웠던 예술가들에게도 청신호다. 그러니 이젠 화랑과 경매회사가 각각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역할구분을 뚜렷이 해서 미술시장 호황에 불을 붙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