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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미술 세계시장서 상한가

세칸 2008. 1. 6. 17:15

미술과 돈 8

중국 현대미술 세계시장서 상한가
서양과 다른 느낌의 독특한 작품들·성장하는 경제력이 주가 올려

 

 

요즘 국내외 미술시장 관계자들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화제는 ‘중국 현대미술’이다. 중국 현대미술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중국 현대작가들의 경우 작품가격이 연 40%의 상승세를 그리기도 한다.

 

 위에 민쥔의 유화 `굉굉`. 작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예상 낙찰가의 10배가 넘는 64만달러(약 6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소더비 경매회사는 작년 10월 홍콩에서 열린 중국 현대미술 경매에서 낙찰총액 900만달러(약 90억원)를 거뒀는데, 목표액의 두 배를 달성한 것이라 소더비 측도 놀랐다. 크리스티 경매회사가 작년 11월 홍콩에서 아시아 각국 현대미술을 모아 경매했는데, 낙찰가 톱10 기록은 모두 중국 작가들이 세웠다.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부 부장 에릭 장은 “크리스티의 아시아 시장이 2000년에 비해 약 8~10배 정도 성장했다. 이는 중국의 근대미술 가격이 최근 10배 정도 뛰었고, 현대미술 작가들의 가격도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서 더 대담하게 나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것처럼 앞으로 뉴욕에 이어 아시아, 특히 중국이 현대미술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미술시장 정보 사이트인 아트론(www. artron.net)은 유화작가 100명, 중국 전통화가 400명에 대해 가격 등락을 보여주는 가격지수를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높은 지수를 기록하는 화가들은 미술 유통시장에서뿐 아니라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 등에서도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런 인기 중국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현대 중국 사회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2004년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위에 민쥔(44)은 그 대표적 작가다. 기이하게 얼굴이 큰 남자들이 어색할 정도로 심하게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고 있는 모습이 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다. 너무 웃어서 남자들의 눈은 다 찌그러졌고 윗니는 양 옆 끝까지 다 드러났다. 이 작가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현대 중국의 사회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식인의 허탈한 모습을 이렇게 인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왕광이의 유화 `왕광이` (2005). 선전포스터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위에 민쥔은 요즘 해외 경매시장에서 주가가 치솟는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다. 작년 11월 크리스티가 홍콩에서 한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서 그의 작품 ‘굉굉(轟轟)’이 예상 낙찰가의 10배가 넘는 가격인 64만달러(약 6억4000만원)에 낙찰돼 이 작가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어떻게 중국 현대미술의 주가가 이렇게 치솟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모두 중국은 지금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중국 작가들 중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군은 1940~1950년대에 태어난 1세대 작가들과 1950~1960년대에 태어난 2세대 작가들이다. 서울옥션의 중국 전문가인 권선희씨는 “1세대 작가들은 사회주의 교육을 강하게 받았으나, 문화혁명 때 정치적 박해로 정신적 상처를 받아 민중의 순박한 삶을 서정적으로 미화한다. 2세대 작가들은 소년기를 홍위병으로 보내 국가와 민족에 대해 깊은 관심은 있으나, 냉소적이고 허무한 경향을 띠는 작가들”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중국의 현대사가 빚어내는 독창적인 면 때문에 중국 젊은 작가들에게서는 다른 나라 작가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류밍의 유화 `베이비 No.8`(2001)

 

이를테면 왕광이(王廣義·49)라는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꼭 사회주의 선전 포스터 같다. 황색 옷을 입은 민중이 펜과 책과 총을 손에 들고 돌진한다. 바탕은 새빨간 색으로 칠해졌고 그 위에 ‘나이키’ ‘루이비통’ ‘롤렉스’ ‘코카콜라’ 같은 상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작가는 동서양의 문화가 충돌하는 중국의 상황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려 ‘정치적 팝 아티스트’라 불린다. 이런 그의 작품은 지난 1년 동안 약 1.6배 올랐다. 최근 서울옥션은 대표적인 중국 현대미술작가 10명을 선정해 보고서를 냈는데,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경매 낙찰가 최고치가 수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구상(具象)미술이 추상미술을 제치고 현대미술의 총아로 급부상한 것도 중국 미술이 뜨는 데 한몫 거들었다. 중국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구상미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하이 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이 된 큐레이터 이원일씨는 “중국은 서양 근대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서양에서 리얼리즘과 구상미술이 뒷전으로 사라졌을 때 되레 이 두 가지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중국 미술이 가진 이런 미학적인 특징에 덧붙여 중국의 무서운 경제성장이 불을 지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중국은 매년 경제성장이 약 10%에 달하고 외환이 넘쳐 설비투자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중국 내에 현재 경매회사가 79개나 되며 거래되는 작가의 수도 4만명이 넘는다. 2005년에 중국 7대 경매회사의 낙찰 총액은 7367억원으로, 2004년 대비 63% 성장률을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또 중국에서는 값비싼 초고가 화가들 작품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원대의 중저가 미술품, 수천원 하는 초저가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품이 거래되는 것도 미술시장 성장의 비결로 꼽는다. 중국 본토는 물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화교들이 본토의 현대작가들 작품을 사들이는 것도 한 요인이다. 소더비의 아시아·호주 지역 담당자 헨리 하워드 스네이드씨는 미술월간지 ‘아트뉴스(Artnews)’와 한 인터뷰에서 “중국미술이 성장하는 주된 이유는 중국인 컬렉터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양미술과는 분명히 다른 ‘독특한 미술’, 그리고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작가들을 키우는 것. 이 두 가지 전략이 합해져서 중국 현대미술의 주가는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