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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값은 얼마?

세칸 2008. 1. 6. 16:57

미술과 돈 6

작가의 이름값은 얼마?

 

 

권위 있는 미술 월간지인 ‘아트뉴스(Artnews)’는 2004년 4월에 ‘세계에서 제일 비싼 생존작가 10명’을 뽑아 발표해 미술계에 화제를 일으켰다. 여기에 따르면 성조기를 소재로 그리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재스퍼 존스(Jasper Johns)가 1위이고, 잭슨 폴록의 뒤를 잇는 스타일로 평가 받는 추상화가 사이 톰블리가 2위, 혼합 재료를 쓰는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그 뒤를 이었다.

재미있는 건 10명 중 8명이 미국작가라는 사실이다. 1명은 ‘영국의 국민화가’라 불리는 초상화가 루시앙 프로이드, 나머지 1명은 독일의 게하르트 리히터다. 비싼 작가가 대부분 미국 출신인 이유는 간단하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같은 국제 경매회사의 낙찰가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외국에서도 경매를 통하지 않고 화랑에서 팔리는 작품은 값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반면 경매에서는 구매자들이 다 모인 가운데에서 투명하게 팔려나가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를 가지고 분석할 수 있다. 요즘 어느 작가가 대중적으로 인기인지도 알 수 있다.

 

 2004년에 뉴욕 소더비에서 1억 416만달러(1040억원)에 팔린 피카소의 유화 `파이프를 든 소년`.

 

작년 말에는 미술시장을 분석하는 회사 아트택틱(ArtTactic)에서 영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재스퍼 존스에 이어 비싼 작가 2위로 바짝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미술이 투자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작가들의 이름값’을 분석하는 기관이 한두 곳이 아니다. 미술시장 정보 웹사이트에 가서 작가 이름을 치면 온갖 수치와 그래프가 줄줄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서양화가 100명, 중국화가 400명에 대한 작품 가격 상승률을 주가지수처럼 지수로 만든다. 그래서 우량작가의 순서대로 줄을 좍 세울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작가의 ‘이름값’이 수치로 나왔다.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발표한 ‘작가지수’다. 이에 따르면 유화작품의 경우 제작연도와 크기가 똑같다고 가정했을 때 작가의 이름이 작품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계산하면 박수근이 430으로 가장 높고, 김환기 장욱진 도상봉 오지호 고영훈 이우환 권옥연 김흥수 이대원 남관 최영림 김창열 김종학이 차례로 그 뒤를 잇는다.

중국의 작가지수가 한 작가의 가격 상승률을 나타낸 것에 비해 우리의 작가지수는 인기 작가 사이의 상대적 우위를 비교하는 것이다. 서울옥션이 이 분석에 ‘헤도닉 가격모델’이라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서울옥션 출범 다음 해인 1999년부터 작년까지 7년 동안 10번 이상 낙찰된 적이 있는 서양화가 15명의 작품 285점을 가지고, 가격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나머지를 똑같게 만든 뒤 한 가지 요소만 변화를 주어 가격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방법이다. 똑같은 연도에 똑같은 재료로 그린 똑같은 크기의 그림일 경우 누구 것이 누구 것보다 얼마나 비싼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피카소

 

그 동안 낙찰된 작품의 총액 크기대로 작가의 순위를 매기면 어떨까? 이 역시 ‘작가지수’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수근이 46억원으로 1위, 김환기가 24억원, 장욱진이 13억원으로 그 뒤를 잇는다.

 

 

그런데 화가의 이름에 이렇게 물건 가격처럼 숫자를 매겨 줄을 세우는 게 옳은 일일까? 여기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술계에서는 “미술관람객이 작품의 질보다 그림 값에 영향을 더 받을 것 같다” “비싼 화가가 좋은 화가인지, 고액의 작품에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작가의 이름이 작품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다 보니, 어느 작가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분석하는 자료는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정보 없이 돈을 수천만원, 수억원씩 쏟아 부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반 고흐의 자화상 드로잉

 

경매에서 기록가를 세운 작품 리스트를 훑어보면 작가의 이름이 역시 큰돈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경매된 인상주의와 근대미술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 ‘톱 10’에는 피카소가 4점, 반 고흐가 3점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매된 가장 비싼 작품 ‘톱10’에도 박수근 작품만 4점이나 된다. 박수근과 이중섭 작품의 위작이 많은 이유도 결국은 유명 화가의 ‘이름’에 넘어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시장은 전체적으로 불황이지만 이른바 ‘블루칩 작가’인 선두 열다섯 명의 경매낙찰액수만으로 따졌을 땐 연평균 수익률이 12%나 된다. 이 말은 곧 미술 투자를 하려면 블루칩 작가에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수근

 

하지만 여기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비싼 화가들의 진품이라 해도, 이름만 보고 투자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술 투자가 어렵다. 이와 관련해, 아트펀드(Art Fund·그림에 투자하는 펀드)의 선구자이자 최고 권위자인 영국 ‘파인아트펀드’ 대표 필립 호프먼씨가 최근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얘기는 많이 도움이 된다.

 

 

그는 “수익성 있는 화가는 전체의 5%도 안 된다. 미술에 투자할 땐 그 5%를 잘 가려내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그 화가의 이름에 사로잡히지는 말라고 주의를 준다. “전문성이 부족한 컬렉터들이 잘못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작가의 이름을 보고 그림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합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질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요즘 서양에서는 에드 루샤(Ed Ruscha·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팝아티스트)가 크게 인기이지만 사실 에드 루샤의 작품 중 투자해서 수익을 올릴 만한 것은 몇 개 안됩니다. 나머지 작품은 그냥 보고 즐기기엔 좋지만 투자할 경우 위험해요. 화가의 이름은 투자를 고려할 때 중요한 항목이긴 하지만 절대 이름만 보고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