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돈 13
자본을 조롱한 작가들… 작품은 비싸네
상업성을 껴안는 화가가 있고, 상업성을 거부하는 화가가 있다. 하지만 둘 다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상업성을 적극적으로 껴안은 화가라면 앤디 워홀을 제일 먼저 꼽겠다. 미국 1960년대 팝아트의 대표주자다. 체코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피츠버그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뒤 뉴욕으로 이사를 해 광고용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았다. 그는 광고 그림에 아주 능해 돈도 잘 벌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미술 작가로 성장한 워홀의 미술은 그래서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잘 팔리는 상업적 요소가 작품의 소재로 버젓이 등장한다. 수퍼마켓에서 가장 흔하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캠벨수프 깡통이나 대중문화의 영웅인 마릴린 먼로가 나오고 또 나온다. 또 광고 포스터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술자들이 그의 실크스크린 판화를 찍어 낸다. 작가의 손에 직접 물감을 묻힐 필요가 없다.
2002년 LA 현대미술관 `모카(MOCA)`에서 앤디 워홀 회고전을 준비하는 모습.
앤디 워홀의 이런 상업정신을 물려 받은 21세기의 아티스트라면 일본인 다카시 무라카미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다. 일본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담은 가벼운 이미지를 가지고 빵 찍어 내듯 작품을 찍어 낸다. 똑같은 모양으로 비싼 작품도 만들고, 기념품 값 정도밖에 하지 않는 값싼 소품도 만든다. 다카시 무라카미는 2003년에는 아예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손을 잡기도 했다. 이 회사의 로고 ‘LV’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핸드백 디자인을 직접 했다. 이쯤 되면 상업과 순수 사이의 경계를 없앤 작가다.
미술작품 역시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하는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을 이런 작가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들은 ‘부자 작가’가 됐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자본주의 문화와 상업성에 저항해온 작가도 많다. 이들은 일부러 ‘사고 팔 수 없는 작품’ ‘소장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를 조롱한다. 한마디로 돈 받고 팔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게 아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을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사진.
미국 네바다주에서 30년 넘게 사막의 땅을 파는 작가가 있다. 이름은 마이클 하이저. 그는 1972년부터 이곳에서 땅을 파 ‘도시(City)’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허허벌판 사막에 길이 2㎞짜리의 인공계곡을 파내는 게 그의 작품. 그는 이것을 ‘조각’이라고 부른다(물론 삽으로 파는 게 아니라 불도저로 판다). 이런 작가들은 물감과 캔버스가 아닌, 지구 땅덩어리로 미술을 한다고 해 이른바 ‘대지(大地) 미술작가’라 불린다.
당연히 하이저의 ‘조각’은 파는 게 불가능하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사막의 인공계곡을 사다가 집에 둘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미국 연방정부가 2010년에 이곳에 핵폐기물 수송열차 노선을 통과시키기로 결정 내리면서 하이저의 작업은 난국을 맞았다. 그 수송열차의 노선이 하이저의 ‘조각’을 끊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쌍한 하이저. 그는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고 있을까? 뉴욕의 멋진 갤러리에 작품을 내놓고 비싸게 팔리기를 바라는 상업적인 작가들과 거리감을 두고 싶은 것일까?
하이저의 작품이나 작가정신에 대한 평가는 여기에서 논할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런 하이저 같은 작가들조차 컬렉터나 딜러들과 결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팔지도 않을 작품을 만드느라 30년 동안 사막에서 땅 파고 있는 작가. 그에게는 당연히 엄청난 돈을 대주는 후원자들이 필요하다. 사막일지언정 마음껏 파댈 수 있는 땅을 사줘야 하고, 작품에 전념하는 동안 들어가는 생활비와 작품제작 비용도 후원해야 한다. 그래서 로버트 스컬, 하이너 프리드리히, 리처드 벨라미 등 많은 후원자와 딜러들이 하이저에게 돈을 대주고 있다. 결국 하이저의 작품에 비싼 값을 치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20세기 초 뉴욕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마르셀 뒤샹도 괴팍한 작가다. 그는 일찍이 1917년에 남자 소변기 하나를 덜렁 갖다 놓고 여기에 ‘R. Mutt’라는 가상인물의 이름을 서명한 뒤 ‘샘’이라는 작품제목을 붙였다.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싸구려 물건을 가지고 예술인 양 장난을 친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이 별거냐, 아무 물건이나 작가가 갖다 놓으면 미술이지’라는 생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뒤샹은 이렇게 값싸게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미술로 둔갑시킨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누가 설마 비싼 돈을 치르고 그런 작품을 사랴? 천만에. 이런 마르셀 뒤샹의 알쏭달쏭한 오브제 작품들은 지금 초고가에 거래된다.
일본 팝 아티스트 다카시 무라카미가 2003년 도쿄에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로고를 이용한 작품으로 루이비통 매장을 꾸민 것.
그럼 도대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상업적인 작가든, 비상업적인 작가든 작가이기만 하면 모두 비싸다고? 앤디 워홀이든, 마이클 하이저든, 마르셀 뒤샹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우리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만들고,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미술을 했다는 사실이다. 한 미술작가에 대해 훗날 사람들이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그 작가가 역사의 흐름에 점을 찍는 의미 있는 작업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뚫어보면서 용감한 시도를 한 작가는 좋은 작가이고, 그럼 자연히 그의 작품에 붙는 값은 높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역시 돈계산이 밝지 못했던 작가다. 돈을 밝혔다면 다들 물감과 캔버스로 그림을 그리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비디오로 미술을 하거나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괴상한 퍼포먼스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작가로 기록에 남았고, 작품값도 물론 비싸다. 백남준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핸하르트는 지난 3월 한국에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현대미술은 돈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젊은 작가들이 어떻게 해야 팔릴지에 신경을 쓰는 모습은 걱정이 됩니다. 내가 그래서 백남준을 좋아했지요. 그는 팔릴 작품이든 안 팔릴 작품이든 상관 않고 ‘의미 있는 작업’을 찾아 했으니까요. 세상을 보는 새 눈을 열어주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이란 걸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
'사는 이야기 > [훔쳐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트페어는 국제적 ‘미술 5일장’ (0) | 2008.01.06 |
---|---|
기업의 미술품 투자는 고품격 마케팅 (0) | 2008.01.06 |
화가는 아픈 만큼 비싸진다 (0) | 2008.01.06 |
“경매에 손님 다 뺏길라” 화랑가 긴장 (0) | 2008.01.06 |
사진ㆍ판화도 희소성 있으면 수십억원 (0) | 2008.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