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에 '인연(因緣)' 남기고 떠난 영원한 수필가
[수필문학의 巨木, 별세한 피천득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데 가시기를......
모성(母性) 향한 끝없는 갈망… 감성적 문체로 그려
프로스트詩 좋아한 국내 영문학계의 1세대
수필가 피천득(97)은 늘 한 손으로 원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가 말년을 보냈던 서울 방배동 자택 서재에 가 본 문인들은 모두 기억한다. 그가 손으로 원을 그리면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가리켰던 그 사진 혹은 그림들 속의 주인공들이 누구였던가. 우선 먼저, 시인 예이츠 등등 영국 낭만주의 시인, 여배우 잉그러드 버그만, 그리고 그의 가족들…. 그리고 사진 속에 없지만, 그가 평생 그리워했던 어머니라는 존재의 느낌….그리고 사진 속에 없지만, 그가 평생 그리워했던 어머니라는 존재의 느낌....금아(琴兒)라는 피천득의 호는 열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금아(琴兒)라는 호는 춘원 선생이 지어주셨는데, 내 나이 열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얘기를 들으시고는 저 보고 영원히 어머니의 아이처럼 맑게 살라는 뜻을 살라는 거 같았어요”라고 고인은 생전에 말한 적이 있다. 수필가 피천득의 문학세계는 모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을 바탕으로, 모성으로 상징되는 영원한 아름다움 앞에서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 비애를 평이하면서 감성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그의 수필은 사실은 산문으로 구성된 시에 가까웠다.
그는 “시는 산호이고 수필은 진주라고 생각해왔어요. 깊은 바닷속에 있는 산호와 진주를 캐 내지는 못한 채 젖은 모래 위에서 조가비와 조약돌을 줍듯 글을 써온 내 인생에 나는 다 만족하고 있어요”라고 그는 늘 생전에 말해왔다. 워낙 연로했기에 문단에서는 해마다 그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그는 늘 새해 인사를 가는 후배 문인들 앞에서 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건강을 과시했다. 그래서 그의 갑작스런 타계는 예상을 초월하는 평상의 모습이라는 것이 문단의 첫 반응이다.
피천득은 한국 영문학계의 1세대 학자이기도 했지만, 정감어린 한국어로 구성된 산문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로 시작하는 그의 수필은 한국어의 우아함과 날렵함을 가장 잘 결합한 글로 남아있다.
그 글은 흔히 수필의 대표적 산문으로 기억되지만, 그 글이 감동의 파장을 남기는 까닭은,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던 사람이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모성의 극치이기 때문에 마치 시처럼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피천득의 수필은 개인사의 고백이지만, 감동의 여백으로 인해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 글의 공간 속에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던 넉넉한 미학의 품을 지녔던 것이다.
피천득은 시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좋아했다. 문학이란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생처럼 가지 않은 길을 추체험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했던 그는 문학이 제공하는 또 다른 체험의 영역을 사랑했다.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았던 그는 말년에도 버스를 타고 홀로 지인들을 만나고 서점에 책을 사러 가고, 동숭동 카페에 앉아 차를 마셨다. 노년에 접어든 그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고맙다”라고.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후배와 제자들을 맞으면서 늘 따듯한 웃음을 안겨주셨던 말년의 수필가 피천득.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선생의 語錄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한가 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선생의 글 '수필' 에서)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요. 허허허.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통은 여자가 오래 사니 아직 살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번역작을 모은 '내가 사랑하는 시' 개정판을 내며)
"무어라 해도 나는 믿노니/ 내 슬픔이 가장 클 때 깊이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람을 읽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고" (애송시로 꼽은 앨프레 드 테니슨의 '인 메모리엄' 중에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어느 점집에 갔더니, '여자를 멀리 하면 60까지는 살겠다' 고 했는데 아마 너무 멀리해서 90넘게 사는 모양이다" (정정한 비결을 물었을 때)
"청승 맞거나 궁상 떠는 것을 싫어해요. 남자고 여자고 밝고 명랑한 게 좋지 않나요?" (활자화된 수필 곳곳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고 하자)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각별하다고 하자)
"살아있다면 지금 84세인데......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인 이민지가 많으니 아마도 '인연' 이 일어로 나왔다는 소식 정도는 듣겠지요" (첫사랑 소녀 아사코와의 만남을 회상한 수필 '인연' 일본어판이 나왔을 때)
年 譜
-1910년 4월 21일 서울 청진동 출생
-연도미상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함
-1930~32년 신동아에 '서정별곡' '파이프'등 발표하며 등단
-1940년 중국 후장대학(廉江大學) 영문과 졸업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
-1946~1974년 서울대 사대 영문과 교수
-1954년~ 미국 하바드대학에서 연구
-1963년~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 주임교수
-1969년~ 미국 하바드대학등에서 강의
-1974년 문예 월간지 수필문학에 '인연' 발표
-1975년~ 서울대 명예교수
-1979년 새싹문화상 수상
-199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수상
-1995년~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 자문위원, 제9회 인촌상(문학부문)수상
-1999년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수상
-2007년 5월 25일 23시 40분 서울 아산변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97세)
-평소의 키가 155Cm, 체중이 40Kg이었다고 전합니다.
[좌우명 ; '간소한 생활, 남에게 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출판 著書
-'91년 [금아문선] 도서출판 일조각
-'91년 [피천덕 시집] 범우문고57
-'97년 [대화] 샘터사
-'97년 [꽃씨와 도둑] 샘터사
-'97년 [내가 사랑하는 시] 샘터사
-'97년 [생명] 샘터사
-'01년 A Skylark (Peoms and Essays) 샘터사
-'02년 [어린 벗에게] 여백미디어
-'02년 [인연] 샘터사
-'03년 [인생은 작은 연인들로 아름답다] 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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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mopen/10322888 [오늘이 마지막이듯]의 표주박님의 기사를 링크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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