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산청, 함양 양민학살사건

세칸 2007. 3. 5. 16:33

 

 

  식구들을 데리고 산청, 오봉리로 갔습니다.

요즘들어 산청, 함양, 구례등지로 가끔 다녀오곤 합니다. 지리산 주변 마을들 이지요.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부산을 떠나 살게 된다면 이런쪽이 좋지 않을까 해서 '헌팅'차 다닌답니다.

 

  여러분들은 [산청, 함양 양민학살사건]이란걸 아세요?

저도, 부끄럽게도 안지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아마, 대부분 '거창 양민학살사건' 정도는 아시겠지만

그외 수없이 자행된 양민학살 사건이 있었다는건 대부분 잘 모르시리라 짐작합니다.

그동안 부끄러운 우리의 현대사를 까발리기 꺼리는 정부와 집단들이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추모공원입구의 '대장군'상입니다. 뒤로 자료실과 세미나실이 보입니다.

제눈엔 '대장군'들이 왜 목놓아 통곡하는 형상으로 보이는지.......똑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정문인 '廻陽門'입니다. 아주 널직하니 잘 지어 놓았습니다.

"과거를 극복하고 상생의 양지로 나아가자"는 의미의 '화양문'이랍니다.- 안내 카달로그에서 인용함 

 

 

  '비탄과 고통의 벽'앞에선 가족들 입니다. 아이들은 필기도구들을 챙겨 들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인 애들의 설명하기 곤란하고 난해한 질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국군이 왜........?" "빨치산이 뭐예요?"

 

 

  '위령탑'앞에선 제 딸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입니다. 이 애들이 '역사'로 알기엔 너무 아프고 가슴 답답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분단국이고 우리의 '主敵'은 누구입니까? 이 애들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무겁고 크다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주차장에서 충혼탑까지의 거리가 상당합니다. 여기 모셔진 어떤이가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길 원했을까요?

그중에서 요행히 살아남은 분들도 통비분자로 몰려 반세기를 모질게 살았답니다. 

 

 

                                                                                      '건립취지문'입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1951년 2월 7일(음 1월 2일), 공비소탕작전을 핑게한 국군에 의해 705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어 불태워 졌답니다."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사실앞에 망연할 뿐입니다.

그동안 묻혀 있다가 1996년 1월 5일에서야 특별조치법으로 '명예회복'(?)이 되었다는군요......참......

 

 

  한줌의 조화가 저분들을 어떻게 위로 하겠습니까? 출생일시가 분명치않아 기록되지 않은 분도있으나 사망일시는 한결 같습니다.

1951年 2月 7日 卒...... 

 

 

  상제의 이름이 같은사람이 많습니다. 부, 모, 형제, 자매가 함께 돌아 가셨다는 이야깁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국군에 의해서.....어처구니 없습니다.

 

 

   '위패봉안각'입니다. 386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년 추모제를 모신답니다.

 

 

                                                                                    카달로그 뒷면의 약도

                                 생초 IC에서 승요차로 약15분, 대략5Km(?) 거리에 있습니다.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 홈페이지 http://shchumo.sancheong.ne.kr/

 

 

  누군들, 아무 의미없이 죽고 싶었겠습니까? 그것도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미처 꽃 한송이 준비못한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공원 관리인이 한분 계셨습니다. 기념품으로 연필과 볼펜도 주시고 [산청, 함양 양민학살사건의 재조명]이란 학술지와 산청군의 그림지도도 주셨습니다. 茶도 주신다기에 너무 미안하여 사양하고 방명록에 제 이름자를 적고는 일어섰습니다. 그분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일요일 오후임에도 제가 머물던 약 한시간동안 �O는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추모공원이 워낙 오지이기도 하자만 맛있는 먹거리를 �O아서는 몇시간도 마다않는 생각들을 조금은 이런쪽 으로도 돌려보심이 어떨지.....잠시 혼자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