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죽은 나무 살리기

세칸 2008. 7. 31. 04:44

죽은 나무 살리기

 

이미 죽은 나무를 살리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다루는 이들은 죽은 나무를 다른 모습의 생명으로 되살리는 이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대목이 그렇고, 가구를 만드는 소목, 서각을 하는 각쟁이(?)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무를 다루는 일이 자르고 깎아내는 일이다 보니 '살림이 안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저도 30여 년을 목수들과 함께하면서, 대부분 일은 열심히 하면서도 '잘 사는' 이들이 별로 없음은 알고 있습니다.

잘 산다면 목수 일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마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 사회적 구조 문제는 여기서 다룰 주제가 아니라 생략하겠습니다.

 

두어 달 전에 새김작업을 완료하고 이제 칠을 완성한 예전의 제 낚시 도마입니다.

죽은 나무가 도마의 역활에서 한층 신분이 상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겠지요.

글씨의 표면은 아무런 칠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나뭇결이 은은하게 빛이 납니다.

 

이 나무도 원래의 용도는 도마입니다.

대형어인 부시리나 방어들을 상대하도록 길이가 1m 30cm이었습니다만, 절반을 잘랐습니다.

작고하신 불세출의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이 쓰신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의 시구를 바탕화면에서 음각과 양각으로 구분하여 새김을 하고 칠을 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 도마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저도 궁금합니다.

 

어떤 이의 나무 창고에서 두 장의 나무를 담뱃값(?)으로 얻어 왔습니다.

둘 다 결이 고운 느티나무입니다만 휘고 갈라짐이 심해 마땅한 대접을 못 받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주인을 못 만나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쓰임을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면 제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나뭇결이 아름다웠지만, 배가 부른 이 느티나무는 돌을 들고 운둥 중입니다.

배부른 쪽에 물을 뿌리고 해바라기를 하면 천천히 반듯해지기도 합니다만, 제가 마음이 급하거든요.

가벼운 돌을 올렸더니 꿈쩍도 않으므로 제 힘으로 겨우 들 수 있는 무거운 돌을 올렸습니다.

눈대중으로는 반듯해졌습니다만, 며칠 주기적으로 물을 뿌리고 해바라기를 시키면서 관찰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저도 여기에 무얼 새길지 궁리하기도 하며, 이런 과정을 즐기는지도 모르지요.

 

또 다른 느티나무 판재입니다.

길이가 1m 70cm입니다만 썩은 부분과 갈라짐이 심해 거미줄과 먼지로 덮여 있었지요.

나무 주인이 아깝지만, 못 쓰겠다며 도로 치우기에 제가 얼른 챙겼지요.

나무를 보는 순간, 이 나무가 다시 태어난 모습을 떠올렸거든요.

 

아래쪽의 넓은 부분입니다.

연필로 그은 부분은 장차 잘려 나갈 부분이고, 이 부분을 이용하여 갈라진 틈을 전산 볼트를 이용하여 오므려 놓았습니다.

약 1cm를 오므렸으며, 나비 장부를 이용하여 안정시킬 계획입니다.

 

윗부분은 약 3cm를 오므렸으며, 마찬가지로 표시된 부분에 나비 장부로 안정시킬 계획입니다.

숫장부는 만들어 두었습니다만, 장부구멍은 뚫지 않았습니다.

서고가 결정되고 완벽한 제작 계획이 결정된 다음에 장부구멍을 뚫고 장부를 결합시켜야 실수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서고가 변경될 수도 있으며 장부구멍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숫장부는 재질이 강하고 당김에 대응할 수 있는 나뭇결 방향을 선정해야 하며, 표시된 부분을 정확히 절단하여 깨끗이 가공해야 완성된 모습도 빈틈없이 깔끔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 잘 말렸다가 꼭 맞는 장부구멍을 만드는 것도 완성된 모습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숫장부는 판재의 나뭇결과 반대이므로 나무색도 선명하게 대비됨이 오히려 좋습니다.

노란 느티나무에 붉은 가죽나무 장부, 완성된 모습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숫장부를 완성하여 판재 위에 올려 보았습니다. 색깔이 참 아름답고 잘 어울립니다.

이놈을 그대로 쓸지, 좀 투박해 보이므로 반으로 나누어 쓸지는 나중에 결정하겠습니다.

 

이 느티나무 판재에는 매화를 새길 생각입니다.

아래 사진의 제가 가진 매정 민경찬 선생의 설매화를 축약하여 흉내라도 내고 싶습니다만, 아직은 자신이 없습니다.

대가들의 작품에서는 주눅듬을 느끼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나무라도, 나무는 살아서나 죽어서도 우리에게 유용하게 쓰입니다.

우리가 나무에서 배울 것이 이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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