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칸의 사는 이야기

여기에 사는 즐거움 2

세칸 2008. 6. 29. 02:16

여기에 사는 즐거움 2

칼맛을 즐기기 위해 날을 세우며

 

반푼 세칸이 식구들과 화개로 이사온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2월 25일 이사를 왔으므로 날짜를 잊을 일은 없지 싶기도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비 온 뒤의 땅이 더 단단하고 굳어진다.'는 말도 있으므로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장맛비가 제법 내린다 싶으면 세이장의 물소리로 알아차립니다. 

지리산 대성골, 골 골의 빗물이 모여 금세 세이장으로 밀려 내려오기에 물줄기도 거칠고 소리도 제법 들을만하게 요란합니다.

 

여름이면 이 골 안으로 더위를 피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니 걱정이 많습니다.

더위를 피하고 더하여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까지 없애고 가시는 것이야 감사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고성방가에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시는 분들이 많다 하여 벌써 여러분이 때 이른 걱정들을 하고 계십니다.

화개골 안의 주민들은 청정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 그 흔한 개나 닭도 기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를 탓하거나 꾸짖지 못함을 잘 알기에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합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우리의 생명과 건강권을 지키려는 것과, 나들이 길이나 휴가지 등에서 오물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습관과 인식이 환경을 보전하고 지키며 우리의 미래까지도 지킨다면 촛불시위의 의미에 절대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푼이 자식자랑을 한다 하여 칠푼으로 승격되지는 않겠기에 마음 편히 아래의 사진을 올립니다.

4학년인 동석이와 3학년인 지은이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각각 조그만 칭찬을 들었습니다.

학생수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적성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고 아비로서 흐뭇하기도 합니다.  

상을 타고 칭찬을 듣는 것보다 그 뒤의 글쓰기나 책읽기에 더 열심인 것이 상의 미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아비의 책을 훔쳐 읽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여 우습기도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초등학교 3학년, 누굴 닮았는지..., 아이들이 커가고 자라는 모습은 경이롭기도 신기하기도 합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君子有三樂(군자 유삼락)]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 -

 

주변이 정리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더러운 성격 때문에 집앞의 버려진 허드레 땅에 화단을 가꾸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고마운 분이 보내주신 꽃씨를 심고 축대 밑에는 오이와 방울 토마토도 심어 가끔 소일거리로 삼습니다.

오이가 열려서 커가고 토마토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지...,   

 

화개는 녹차와 매실의 고장입니다.

농약 치지 않은 청정한 매실이 어디에나 지천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녹차와 마찬가지로 산지의 가격은 작년보다 많이 내려갔다며 걱정이 많습니다. 올해 들어 오르지 않은 물가가 없다 합니다만 농산물 가격은 일부를 제외하고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실은 술이나 액기스, 장아찌로도 이용되지만 잼을 만들어도 아주 맛있고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는 이들이 세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지 더러 다녀가기도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칼을 갈고 있다."라는 대답을 하면 의아해 하기도 하겠지만 무서운 칼이 아니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20여 년 전에 잠깐 만져보던 서각칼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잡고 얼마나 행복한지 스스로도 놀라고 있습니다.  

魚樂을 새겼습니다.

물고기가 주는 즐거움이 여럿 있습니다만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는 즐거움이 으뜸이라 생각합니다. 

 

하동이 고향인 나림 이병주 선생의 소설 '산하'에 나오는 글귀를 서예가 호정 김진권 선생이 쓰셨습니다.

동석이란 놈이 어느 글짓기 대회에서 받아온 보자기에 쓰인 글씨를 복사하여 새겨보았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글귀와 글씨를 허락 없이 사용함을 양해 바랍니다.

적당한 나무가 없어서 낚시용 도마 중에서 적당한 크기의 맞춤한 나무를 골랐습니다.

대물 사냥꾼이 되기를 포기했으니 이제는 별 쓸모가 없기도 했지만, 나무도 도마보다는 격이 올라갔지 싶기도 합니다. 

 

서각을 하기에 적당한 재질이 아니라 거듭 손을 보고 있고, 색을 입히지 않았으므로 미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완성이 되면 떠나버리지 싶어 부러 꿈지럭거리는지도 모릅니다.

 

칼을 갈아 날을 세우고 나무에 칼맛이 나는 글귀를 새기는 일이 부질없을 수도 있습니다.

집 옆 피크닉 테이블 위에 햇빛과 비를 피할 두어 평 남짓한 차일을 치고 앉아 망치로 칼등을 치는 소리를 듣고는 "누가 보면 참 팔자 좋다 하겠습니다."라며 싫은 내색을 하기도 하지만 커피와 간식을 내 와서는 옆에 앉아 한참을 보고 가기도 합니다.

 

글귀를 새기는 일이 어쩌면 제 가슴에 새기는 다짐일 수도 있겠고 스스로 채칙하는 다그침 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슨 의미가 있든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함이 더 없이 소중합니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별나고 대단한 게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도 지옥이 될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하동 화개의 신흥마을에서 반푼 세칸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