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사는 즐거움 4
녹차씨앗을 보신 적 있으세요?
'여기에 사는 즐거움'은 일본에서는 제법 유명한 생태 철학자인 야마오 산세이선생의 자서전 제목이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규슈의 야쿠섬에서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산에서 나물을, 바다에서 땔감을 구하며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속도와 능률, 과학과 기술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이 인간이나 자연계에 얼마나 유익하고 긍정적일까요?
전부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건축일은 때려치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답을 드리려니 참 어렵고 여러 생각이 많습니다.
30여 년을 건축과 그 주변일 만을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하며 살아오다, 어느 날 그 모두를 버리기란 여간 어렵고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축일은 버렸습니다. 아주 버린 게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위한 마지막 일은 빼고요.
살면서 자신의 뜻과 소신만으로 살기란 어렵고, 어쩌면 있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갑'과 '을'이란 계약에, 나무 몇 재, 못 몇 Kg으로 표시되는 내역에 더는 생각과 의지를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짓는 집을 짓고 싶고,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철없는 생각일진 모르지만, 더 늙기 전에...
야생녹차의 씨앗입니다.
크기는 공깃돌만 합니다만, 늦은 가을에 갈색으로 변합니다.
제가 사는 화개골은 어디나 '엎어지면 코 다을 데'에 녹차 나무가 있습니다.
녹차 뿐 아니라 제가 사는 집주변의 20m 내에는 아래의 사진처럼 예쁜 꽃들이 지천입니다.
심고 가꾼 꽃들도 있지만, 저절로 피고 지는 꽃들이 더 많지 싶습니다.
제가 사는 사택과 학교의 화단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무궁화와 백일홍, 능소화도 있지만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여름이 다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여기저기 피어나는 상사화는 환상입니다.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었다가 지고 나서야 잎이 생긴 답니다.
꽃과 잎은 서로 볼 수 없어서 그립겠지요? 相思花가 된 연유랍니다.
아래의 꽃들은 봄에 제가 심은 꽃들입니다.
씨앗은 봄에 뿌렸습니다만 꽃은 인제야 만개했습니다.
버려진 빈터에 꽃씨를 뿌리고 싶어서 자주 가는 전원카페에 씨앗나눔을 청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4리에 사시는 조O경님이 아름다운 메모와 함께 꽃씨를 보냈습니다.
"세칸님! 씨앗을 드릴 수 있어서 넘 행복해요. 날마다 씨앗과 산다고 구박만~~~...ㅎㅎ 이쁘게 잘 키우세요. 아참!! 전 식물 이름표를 만들어서 사용해요. 여름에 아이스크림 막대 모아서 '니스'(맞나요??) 칠해서 사용해요."
친절한 메모에도 이름표를 달지 않아 꽃 이름을 모릅니다. 양해하시길...!
나팔꽃, 접시꽃, 주황색 코스모스, 설화 백다다기(오이씨앗), 과꽃, 핑크색 천일홍, 금낭화, 자주색 우단 동자, 덩굴 풍선 초, 노란 원추리, 매발톱, 무궁화, 이름을 모르는 꽃씨와 목화씨앗도 있었답니다. 꽃도 이름도 참 아름답습니다.
조O경님께 거듭 감사함을 보냅니다.
누구의 간섭이나 참견 없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서각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합니다.
시간의 지루함이나 생활의 궁핍함을 잊을 수 있어서 더 좋고 즐기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조용히 망치질하는 중에 나비가 망치 끝에 앉기도, 제 어깨에 내려앉기도 합니다.
가만히 멈추고 나비에게 말을 겁니다. "어디서 왔느냐?"
뜻밖에 나비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장자의 꿈속에서 날아왔어요."
세칸이 여기, 화개골에 사는 즐거움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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