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화가들, 디자인으로 대중에 다가서다

세칸 2008. 6. 9. 14:37

화가들, 디자인으로 대중에 다가서다

구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 디자인 제품 출시 큰 인기

 

순수예술 작가들의 미술 '작품'이 디자인 '상품'으로 형태를 바꿔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세계 최고 반열의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무명의 화가가 디자인 상품으로 알려져 재조명받는 경우도 있다. 앤디 워홀 등 몇몇 팝 아트 작가에게 한정되어 있던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영역 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주역은 물론, 팝 아트(pop art·대중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예술) 성격이 강한 일본 작가들. 최근 '야요이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낳으며 국내 화랑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가 그 대표주자. 구사마 야요이는 강렬한 '땡땡이 무늬' 작품으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작가. 심한 강박증세를 앓아 지난 1977년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올 들어 그녀 작품을 전시했거나 전시 계획 중인 국내 갤러리는 '아트링크', '아트스페이스 H zone', '갤러리H', '호두갤러리', '리안갤러리' 등 줄잡아 10곳이나 된다. 이례적이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최근 국제 시장에서 구사마 야요이 작품 가격이 높아져 수요가 많아진 것도 이유지만, 그녀 작품이 디자인 요소가 강해서 정적인 갤러리의 이미지를 희석시켜 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구사마 야요이는 자체 디자인팀을 통해 몇 년 전부터 키홀더, 티셔츠 같은 팬시용품부터 소파, 의자까지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기획·판매하고 있다. 일부 갤러리는 전시회 때 디자인 제품을 소량 판매할 계획이다.

만화 같은 그림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 출신 스타작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는 순수회화 작가지만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오해받을 정도로 디자인 친화적인 작가다. 그 역시 디자인팀을 두고 프로모션과 제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저서 '작은 별 통신'에서 "작품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연령층이 낮아 그림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화집이나 티셔츠 제작은 소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며 대중과 가까이 가는 방안으로 '디자인'을 취했음을 밝혔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중국의 블루칩 작가는 아예 한국을 디자인 기지로 삼고 있다. 지난해 작품 판매액 '톱 텐'에 들어간(아트프라이스닷컴 통계 기준) 장사오강, 위에민준, 쩡판즈를 비롯해 유명 중국 작가 15인은 국내 갤러리 '아트사이드'의 자회사인 '아트오팔'에 이미지 판권을 넘기고 아트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다이어리, 카드지갑부터 침대, 의자까지 제작해 서양권으로도 판매할 계획이다. 아트오팔 김인호 실장은 "중국작가들이 국내 대학생들과 함께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화가 육심원이 작업한 다이어리, 일본작가 구사마 야요이가 디자인한 의자, 중국작가 쩡판즈의 작품으로 디자인한 소파, 일본작가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을 응용해 만든 캐릭터, 중국미술가 위에민준의 그림을 이용해 만든 식탁과 의자. 


광고에까지 작품이 등장할 정도로 유명해진 한국화가 육심원도 '디자인 제품'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육심원의 귀엽고 새침한 여자 그림이 찍힌 다이어리와 티셔츠 등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화가' 육심원이 재조명받은 것. 그녀는 조만간 디자인 제품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첫 해외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이 같은 미술작가들의 디자인 진출 현상에 대해 큐레이터 윤상진씨는 "작가들이 '작품'을 '상품'으로 대량복제해 이름을 알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덜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백남준 아트센터 이채영 큐레이터는 "순수 미술계에서 디자인을 상업적이라고 봤던 시각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