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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역서 3700여마리 '참치 대박'…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나

세칸 2008. 5. 12. 16:43

제주 해역서 3700여마리 '참치 대박'…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나

 

"일본산 참치에 비해 뱃살은 비교대상 안되지만 속살은 맛있어"

지난 9일 제주도 서귀포 남쪽 30~40마일 해역. 고등어잡이 배가 던진 그물 안으로 느닷없이 대형 참다랑어(참치) 1530마리가 들어왔다. 길이 110~150㎝, 무게 35㎏이 넘는 덩치 큰 참치들이 한반도 근해에서 대량으로 잡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어부들은 마리당 15만~50만원을 받고 이 참치들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넘겼다. 수익이 4억원이 넘었다.

뜻밖의 '횡재'는 나흘 후 또 한 번 일어났다. 같은 해역에서 13일 밤 참치 2200마리가 무더기로 잡힌 것이다. 두 번째 잡힌 참치들은 먼저 것보다 몸 길이도 10~20㎝ 더 컸다. 가장 큰 것은 170㎝에 달했다. 참치들은 다음 날 새벽 부산 공동어시장에 위탁 판매됐다.

연이어 두 번이나 '참치 대박'이 터진 해역은 원래 고등어 어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최경석 부산공동어시장 회장은 "내가 13세 때부터 이곳에서 일해왔는데, 이렇게 많은 참치를 보기는 처음"이라며 흥분했다. 고등어 어장에서 왜 대형 참치가 잡혔을까. 잡힌 참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경매된 참치의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뱃살은 별로지만 속살은 맛있었다
지난 10일 저녁 신라호텔의 일식집 '아리아께(有明)'. 9일 제주도에서 잡힌 참치가 하루 만에 '횟감'이 돼 손님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날 신라호텔에서 판매한 '한국산 참치'의 가격은 한 접시(10점)에 13만원이었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참치가 같은 양에 25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격이었다.

 

바다를 헤엄치던 참치가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사진 왼쪽 위에서부터 화살표 방향으로 1. 참치잡이 배가 그물 한 가득 건져 올린 참치가 2. 어시장으로 옮겨져 경매된 뒤 3. 조리장의 손을 거친다.

 

이태영 조리장은 "일본 참치는 원가도 워낙 비싸고 관세 등이 더해져 가격이 높아진다"고 했다. "이번 제주에서 잡힌 참치의 원가는 1㎏에 2만5000원이었지만, 일본 참치는 현지 경매가격이 보통 1㎏에 1만2000엔(약 12만원) 수준인 데다 관세 등이 더해져 30만원 정도로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맛은 어땠을까. 이 조리장은 "참치 대박이 났다는 말을 듣고 손님들이 '이거 혹시 일본산이 아니라 한국산 아니냐'고 물어왔다"며 "냉동하지 않은 일명 '프레시(fresh) 참치'를 즐겨 드시는 단골 중 한국산이 질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우려한 분들이 많아 우리로선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산 참치의 보관 상태와 관련해 "참치는 잡자마자 피를 뽑아야 하고, 내장을 제거해 곧바로 얼음을 채워야 한다"며 "국내에서 대량으로 잡힌 게 처음인 데 비하면 이번 참치의 보관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다"고 말했다.

롯데호텔의 일식집 '모모야마(桃山)'에서도 9일과 13일 제주도에서 잡힌 참치가 횟감으로 고객들에게 제공됐다. 정경호 롯데호텔 일식당 조리장은 "보통 일본에서 직수입한 참치들은 크기가 300~400㎏, 최대 600㎏이나 되는데 이번에 우리가 구매한 참치는 40㎏짜리라 일본 참치보다 현저하게 작고 질도 떨어졌다"며 "손님들이 뱃살은 비교 대상이 안 되지만, 속살(아카미)은 오히려 더 맛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참치 대박
14일 새벽 부산 서구 공동어시장 경매장. 고무장화를 신은 참치 중매인들이 저벅저벅 모여들었다. 바닥에는 사람 키만한 참치 2200여 마리가 줄지어 누워있었다. 전날 밤 제주도 해역에서 잡힌 것들이다. "아이고, 이렇게 큰 씨알은 처음 봅니다. 둘이 들어도 못 들어예." "참치 대박입니다, 대박!"

경매 시작 종이 울리자, 경매사의 힘찬 구호 소리에 맞춰 중매인들이 암호 같은 말과 수신호를 쏟아냈다.

이날 최고 경매가는 131만원. 100만원이 넘은 것만 194마리나 됐다. 평균 경매가는 30만~40만원. 10일의 최고 경매가 50만원(2마리), 평균 경매가 25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먹음직스러운 회로 완성됐다. 

 
생산자 단체인 대형선망수협 김동현 유통사업과장은 "보통 선단(한 선단은 6척) 하나가 1년에 70억~10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이번에 이틀 만에 총 14억원의 수입을 올려서 부산 수산업체에 모처럼 활력이 넘친다"고 했다.

일반 시민들의 문의 전화도 폭주했다. 관련 업체들은 "참치 대박 소식을 들은 미식가들이 '어디 가면 제주 참치를 맛볼 수 있느냐'는 전화를 걸어와 업무에 차질이 생겼을 정도"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참치가 왜 제주도에?
고등어 어장에서 왜 대형 참치가 잡혔을까. 이번처럼 대형 참치가 대량으로 잡힌 것은 처음 있는 일. 국립수산과학원 자원연구과 박종화 과장은 "지구온난화로 겨울철 남해안의 수온이 30~40년 전보다 약 2℃ 상승, 대형 참치 떼가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참다랑어는 다랑어 종류 중 최고급 어종에 속한다. 전형적인 아열대성 어종으로, 동(東) 중국해 남부 해역에서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인 쓰시마 난류를 따라 북상, 우리 남해안에 잠시 머무르다 일본 동부 연안을 따라 북상해 북태평양 해역으로 이동한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해역에서 거의 잡히지 않았고, 1995년 이전에는 연간 어획량이 1000t 미만에 그친 데다 대부분 70㎝ 미만의 새끼들이라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두 번 연속 터진 대박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참치 시대'가 열릴까. 박 과장은 "참치는 수온 변동에 민감하고 이동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국내 근해에서 계속 잡힐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치를 안전하게 모셔라
부산공동어시장에 따르면 10일 팔린 참치 1530마리 가운데 1460마리는 일본으로 수출됐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참치들은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얼음을 채우는 작업을 거친 뒤 후쿠오카행 화물선에 실렸다.
일본에 가장 많은 참치를 수출하는 한은수산 장인한 사장은 "11일 아침 후쿠오카 하카다항에 도착하자마자 1200마리가 모두 팔려나갔다"며 "주로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 있는 일식집으로 직행했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1㎏당 800~2000엔을 받는 등 국내 시세보다 170% 높은 가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70여 마리는
서울 등 호텔 일식당, 대형 마트, 백화점, 고급 횟집 등으로 팔렸다. 10일 부산에서 경매가 끝난 후 10여 마리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올라가 다시 경매됐다. 가장 비싼 50만원에 경매된 68㎏짜리 등 4마리는 신라호텔 일식당으로 팔렸고, 40㎏짜리 한 마리는 롯데호텔 일식당으로 팔렸다.

14일 팔린 참치 2200여 마리 중 일본으로 수출된 물량은 550마리. 동원수산의 자회사인 참치 전문 수산업체가 750마리를 구입했다. 이 회사 김대성 차장은 "일부는 국내에 이미 판매했고, 일부는 영하 55℃ 이하로 냉동시켜 창고에 보관 중"이라며 "앞으로 부위별로 가공해 일본에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유통. 업자들은 덩치가 큰 참치를 안전하게 배달하느라 애를 먹었다. 사람 크기만한 참치를 냉동 차량에 옮겨 실을 때는 어른 3~4명이 동원됐다. 참치를 완전히 담을 만한 보냉재(스티로폼)가 없어 기존 스티로폼을 2~3개 연결하기도 했고, 참치 꼬리를 아예 잘라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 참치는 영하 55~60℃ 이하로 급속 냉동시키거나 신속히 가공해 초저온 냉장 시설에 보관해야 맛이 유지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소형 참치만 잡혔던 데다 마리 수도 많아야 수십 마리였기 때문에 참치잡이 선단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부산 공동어시장에 참치 전용 냉동 창고도 필요 없었던 것이다.

10일 부산에서 참치를 포장해 서울로 올려보냈다는 오상봉(63)씨는 "참치가 워낙 커서 포장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오씨는 "30㎏이 넘는 대형 고기는 얼음과 함께 채워 넣을 용기가 시중에 없어서 급하게 나무를 짜서 넣었다"며 "서울로 가는 동안 참치가 물러져서 항의전화를 받았다. 비싸게 주고 사서 싸게 팔았으니 우리로선 손해가 난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발 참치를 받은 중매인 강신진(52)씨는 "지금까지 받아본 참치 중 물건이 가장 안 좋았다"며 "원래 고등어를 잡는 배가 엉겁결에 참치를 잡았으니 포장 기술이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일본 수출업체들도 포장·운송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스티로폼 2~3개를 연결해 담다보니 차곡차곡 쌓으면 20t을 실을 수 있는 냉장컨테이너에 7t 정도밖에 싣지 못했다고 한다. 업체 관계자들은 "큰 참치를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미리 만들어두고 싶어도 언제 또 국내에서 대형 참치가 잡힐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고 했다.

참치 포장의 비밀
참치를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포장·운송의 비밀은 뭘까. 최대의 참치 소비국인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매년 세계에서 잡히는 400만t 가운데 100만t이 일본에서 소비된다.

한은수산 장인한 사장은 "일본 최대 규모의 쓰키지 어시장에선 매일 참치가 대규모 유통되기 때문에 1㎏짜리부터 100㎏까지 담을 수 있는 스티로폼 용기가 단계별로 다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스시 이코노미'의 저자 사샤 아이센버그는 책에서 "20세기 중반까지도 항구를 출발한 지 며칠 후에 도착한 날수산물을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일요일 저녁 대서양에서 잡힌 참치가 수요일 점심 메뉴로 도쿄에 등장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시작은 일본항공의 화물 담당 직원인 오카자키 아키라가 시도한 '날참치의 비행'. 그는 일본에 생선초밥(스시) 붐이 급격히 일면서 붉은 살 생선 참치의 공급이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대서양에서 잡힌 참치를 신선하게 일본에 공급하기 위해선 특수 처리법이 필요했다. 수산물의 품질을 유지하려면 저온으로 신속하게 일본까지 운반하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조각 얼음으로 포장하면 중량이 너무 늘어났고, 젤리 아이스는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다양한 실험 끝에 그는 일본항공의 화물칸에 적합한 냉장 컨테이너를 설계·제작했고, 1972년 8월 14일 '참치의 비행기 수송'에 성공했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