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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관한 한 누구나 전문가

세칸 2008. 5. 8. 12:02

"의자에 관한 한 누구나 전문가"

독일 비트라 디자인박물관장
알렉산더 폰 페게작 인터뷰

 

"어디 한번 볼까요?"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C스퀘어에 있는 디자인 카페 '아모카'. 파란 눈 거구의 중년 신사가 카페에 놓여있는 의자를 번쩍 들어올려 뒤집었다. 그가 든 의자는 유명 가구 디자이너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의자 'DAR'. 에펠탑 모양의 다리를 꼼꼼히 살펴본 신사는 다행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짝퉁 아니네요."

의자를 다루는 폼이 예사롭지 않은 이 사람,
독일 비트라(Vitra) 디자인박물관의 알렉산더 폰 페게작(Alexander Von Vegesack·63) 관장이다. 스위스와의 접경지대인 독일의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있는 비트라 박물관은 '의자의 명가(名家)'로 불리는 '비트라'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디자인 전공자 사이에선 꼭 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페게작 관장은 비트라 창업자의 아들인 롤프 펠바움(Fehlbaum)과 함께 1989년 박물관을 공동 설립한 사람이다.

 

직업병처럼 의자를 거꾸로 들어 진품 여부를 살펴보는 페게작 관장. 그는“다행히 짝퉁이 아니다”며 웃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비트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총 1800여점. 이 중 90% 이상이 의자다. 이 곳엔 한국에서 모조품으로 팔리고 있는 유명 가구의 진품 대부분이 전시돼 있다. 하트 모양의 '하트 콘 체어',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팬톤 체어', 엑스캔버스 광고에 나온 달걀 모양 '에그 체어', 서울우유 광고에 나왔던 임스의 '라운지 체어' 등 디자인 문외한이라도 한번쯤 본 듯한 의자들이 집합돼 있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다.

왜 굳이 의자에 집중하는 걸까. "미술 작품은 아무나 쉽게 다가갈 수 없지만, 의자는 빈부·학식·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이에요.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의자에 관해서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전문가라는 의미죠." 디자인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가장 일상적인 소재로 풀어내려는 의도다.

이 때문에 비트라 박물관의 운영은 보다 실용적이고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쉬운 디자인 전시를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박물관에 붙박이로 넣어두면 창고에 두는 거랑 마찬가지에요. 좋은 작품은 나눌수록 가치가 배가 됩니다."

박물관이 소장한 광범위한 디자인 자료, 디자이너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디자인 교육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1996년부터 퐁피두 센터와 함께 프랑스 보부쉐(Boisbuchet)에서 열고 있는 '디자인 워크숍(
www.artconsulting.com 참조)'엔 매년 전세계에서 온 400~500명의 학생과 디자인계 인사들이 참여한다. 건축가 반 시게루,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 의자 디자이너 론 아라드 등 책에서만 보던 작가와 함께 고성(古城), 마구간을 개조한 숙소에서 합숙하며 디자인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페게작 관장의 이번 방한도 워크숍의 홍보 차 이뤄졌다.

페게작 관장은 "결국 디자인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며 "한국과 디자인 수준이 비슷한
대만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입력 : 2008.04.03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