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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이중생활

세칸 2008. 4. 22. 05:35

내 친구의 이중생활

화개장터에서 이 친구의 행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제 고등학교 동기이며 건축쟁이입니다만 3년 전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꽤 잘 알려진 회사에서 나름대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만 속된말로 잘리기 전에 때려치운 것이지요.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 표현은 그리 정확하지 않습니다. 연어나 여우처럼, ....고향으로 갔었지요.

 

멀리는 지리산의 능선이며 앞의 강은 섬진장의 하류입니다. 남도대교를 건너면 경남 하동군의 화개면이고 일 년 열두 달 관광버스가 세워져 있지 않은 날이 없는 '화개장터'가 남도대교 건너편에 있습니다.

 

제 친구의 고향은 하동이지만 정작 살 집을 마련한 곳은 전남 광양시의 다압면입니다.

자칭타칭 인간 네비게이션이라는 이 친구 왈,

"우리나라에서 제일 경치 좋은 곳이 여 아이가."

"앞에는 지리산이고 뒤에는 백운산, 거어다 섬진강까지 앞에 있으이 이런 정원이 어데 있겠노?"

제 고향 싫다는 넘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산 좋고 물 맑은, 이만한 고장도 그리 흔하지 않다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친구의 이중생활을 제 눈으로 본 만큼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년 전, 잘 나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는 돌연 고향으로 가서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다며 부산을 떨기에 어찌하고 있나 훔쳐볼 요량으로 두어 번 다녀갔었지요. 제 눈에는 한마디로 가관이었답니다. 논인지 밭인지 모를 다랑논 옆에 하꼬방이 울고 갈 정도의 초막을 지어놓고 안에는 더블침대를 들여놓았고 여유공간은 전혀 없었답니다.

건축쟁이가 그것도 최신식의 호텔건물을 감독하던 친구가 초막이라니... 참 어처구니 없었지요. 또 꼬라지 하고는, ...머리는 꽁지머리에 턱수염은 더부룩하고... 그러나 눈빛은 참 맑고 천연덕스러웠지요. 제가 처음 방문 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꼬라지가 거기 뭐고?'

"ㅎㅎㅎ... 귀농하면 머리 기르고 샘지 기르고 개량한복 입는다 안 카더나?"

 

이 사진은 친구의 블로그에서 스크랩한 사진입니다.

이 초막에서 일 년 여를 살았답니다. 제가 한 말이 조금도 거짓이 아님을 아시리라 느껴지실 겁니다. 

 

몇 개월 뒤, 두 번째는 보기가 꽤 괜찮았지요.

다랑논을 굴착기로 비스듬히 정리를 하고 이층집을 지어놓고는 제법 사람 사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실을 심고 녹차 씨를 뿌리고 채전도 다양하고 규모 있게 심고 가꾸고... 이 때 까지는 이중생활의 흔적은 전혀 없었지요.   

 

표고 재배를 한다 하여 도우미를 자원했습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없다 하고 순전히 책대로만 한다 합니다.

사방 15Cm로 12m/m의 구멍을 뚫고 네 구멍의 중앙에 하나를 더 뚫습니다. 충전 드릴로 하는 작업이라 속도도 더디며 하루 작업에는 많은 양의 충전지가 필요합니다. 이 작업은 그리 힘들지 않으나 지난 초겨울에 베어놓은 참나무를 토막 내 적정위치로 운반하는 일은 거의 중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부엽토 층을 무거운 나무토막을 메고 나르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표고 종균을 성형하여 포장한 모습입니다. 구멍에 꼭 맞게 잘 제작돼 있었으나 바깥 부분의 스티로폼을 벗기는지 그냥 하는지는 '책에 없었다.' 합니다. 서로 얼굴만 멀거니 쳐다보다가는 벗기기로 하여 접종했답니다. 

 

"친구야! 표고 따면 배 터지게 꾸바 묵자!" 나중에 좀 얻어먹을 욕심으로 열심히 거들고 힘을 보탰습니다.

어찌 보면 이 친구의 이중생활이 안쓰럽기도, '부지런한 사람의 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실감 하기도 합니다.

   

표고 종균을 접종한 모습입니다. 접종을 마친 나무토막들을 뉘어서 쌓아 두었습니다만 며칠 뒤에 산에 올라갔다가 온 친구가 "종균을 누가 다 파 묵었더라"라며 난색입니다. 아마 새가 파먹은 모양입니다. 그놈들이야 힘든 이중생활을 알 턱이 없었겠지요!

 

본격적인 이중생활은 한참 뒤의 일이지만, 복직(?)인지 뭔지는 알 수 없고 부산도 아닌 서울로 직장을 다닌다는 말을 바람 편으로 듣고는, '이 친구가 시골 살이를 작파할 생각을 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최근에 제가 화개면으로 살러 오면서 그의 이중생활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고 '참 대단한 넘이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금요일의 근무를 마치고 버스로 집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버스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띠동갑인 아내가 젊기도 하지만 일주일이 멀다 하고 보고 싶은 나이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기에 주말마다 어김없이 천릿길을 왕복할까요.

 

이 친구가 직업만큼 잘하는 일은 떡 만드는 일입니다. 부산 보수동의 맛 좋기로 이름난 떡집에서 잔뼈가 굵었답니다. 친구의 큰 형님이 운영하다가 지금은 장조카가 운영하고 있으며 요즘에도 명절 대목에는 지원(?)을 하기도 한다 합니다. 

팥 앙금을 넣은 찹쌀떡이 손가락 사이에서 정확한 크기로 일정한 시간에 기계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국산 팥을 아무런 첨가물 없이 장작불로 고아 팥앙금의 소를 만들어 일정한 크기로 미리 때어 놓은 모습입니다. 앙금만을 먹어도 맛있는 초콜릿을 먹는 느낌입니다. 말랑말랑 부더럽고 그리 달지않고...

 

찹쌀떡이 완성되어 전분 위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바로 먹는 것보다 조금 시간이 지나 먹는 게 더 맛있다 합니다.

 

벚꽃 축제 때는 한 말 떡을 서너 시간 만에 다 팔았으며 화개장터의 명물이 됐다 합니다. 떡을 사기 위해 줄을 서기도, 사 가지고 가서 먹어보고는 먼 길을 되돌아 다시 사 가기도 했다 합니다.

요즈음은 기계로 만든 떡이 대부분이지만 손으로 만든 떡이 더 맛있다는 건 입이 먼저 아나 봅니다. 바쁠 때에는 지게 작대기도 한몫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제 안식구도 서투른 도우미가 됐습니다. 얻어먹은 떡값은 해야겠지요.

    

쑥은 이웃의 할머님들이 캐어오며 캐어온 쑥은 바로 장작불로 삶아서 물기를 빼어 놓습니다. 살 한 되에 쑥 1Kg의 비율이라 합니다.

콩고물도 국산 콩을 사용하며 아무런 첨가물도 들어 있지 않다 합니다.

 

완성되어 식기를 기다리는 쑥 인절미랍니다. 적당히 식으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화개장터로 내 갑니다.

잘라놓은 떡에 얼른 손이 가지 않음은 염치가 아니며, 순전히 이 친구의 즐거운 노동이 싱겁게 없어져 버릴 것 같아서랍니다.  

 

혹시, 화개장터에서 이 친구의 부인을 만나더라도 '세칸'이란 넘이 블로그에서 "당신 남편의 이중생활을 까발렸다"는 말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떨는지는 모르지만,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목놓아 울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제 친구의 열정적인 이중생활 때문이 아니라 초반의 초막생활이 생각나면 저라도 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화개장터에서 물건을 사던 음식을 먹던 제가 뭐라 말할 권한은 없습니다만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떡 파는 아지매가 쑥 인절미나 찹쌀떡과 같이 지역의 제철 산물들을 파는 것을 보신다면 인사말이라도 붙여 주세요. "욕 봅니다!"하고요.

가능하면, ...살림에 큰 지장이 없다면 한 가지 사 주시면 더 좋고요. 떡이야 직접 만든 것이지만 다른 산물 대부분은 이웃의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 생산한 것을 맡아서 대신 팔아주는 것이므로, 팔거나 사는 행위가 아니라 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포장되지 않은 상품이 아닌 산물을 구매하셨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신다면 제가 대신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제 블로그의 이 게시글을 보시고 떡 아지매에게서 산 물건에 대해서는...   

 

친구 농장의 진입로 부분입니다. 섬진강의 하류가 휘둘러 내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백사장의 모래는 또 얼마나 깨끗한지... 가끔 손을 잡고 백사장을 거니는 연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이 나이에는 각별하답니다.

 

어떤 넘의 이중생활을 까발리고도 이리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요!

흔히,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넘이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삶에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은 '살이'란 그 자체가 아름답고, 그 이유는 소박하며 진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가 참 듣기 어려운 말을 합디다. "사는데 쪽 팔리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사는 모습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진득하니 배어나는 땀내는 열기가 더하면 더 맡기 좋습니다. 그거야말로 어떤 향수보다 더 값지기 때문이지요.

 

부산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 딸이 부모님 일을 거들러 다녀가기도 하지만 "얼굴 보이는 거지 일이야 거들게 있나?"라고 합니다.

서울 올라가기 30분 전까지 일을 하고도 "두릅도 따야 하는데, .... 다 피었네" 하며 시간 모자람을 섭섭해 하기도 합니다.

친구야 슬슬 해라. 시간으로 일하면 골병이 든단다. 마음으로 .... 일을 즐겨라!

 

혹시 이 친구가 자신의 이중생활을 들통냈다고 제게 뭐라 그런다면 여러분이 말려주세요!

반푼 '세칸'은 친구의 이중생활을 까발리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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