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U턴 인생

세칸 2008. 2. 15. 09:20

U턴 인생

 

나는 지독한 방향치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디를 가든 열 번 이상 가지 않은 곳은 절대로 혼자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태생적으로 공간개념을 타고나지 못해서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활자로 된 것은 모두 다 읽어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나는 운전하면서도 눈에 띄는 간판을 다 읽어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한눈팔다 걸핏하면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럴 때면 난 무조건 그 자리에서 U 턴을 해서 다시 길을 찾아 나선다.

 

간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대로를 벗어나 작은 동네나 뒷골목에는 참 재미 있고 재치 있는 상호들이 많다. 우리 동네만 해도 '돈으로 돈(豚) 먹기', '김밥과 함께라면', '순대렐라', '우(牛)찾사' 같은 음식점들이 있는가 하면 '깎고 또 ', '버르장머리' 같은 미장원도 있다. 얼마 전에는 '있다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국민가수 태진아 동생이 하는 고깃집'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나왔었고, 우리 조교는 '한때 이효리의 남자친구가 하는 집'이라는 떡볶이 집 간판도 봤다고 한다. 조교가 문득 물었다. "우리말 처음 배운 외국사람이 보고 제일 놀라는 간판이 무언지 아세요?"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이요" 한다. 맞다. 나도 간판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용인 근처에서 본 '남동 생고기'라는 음식점 간판이다.

 

동서남북도 가늠 못하면서 이렇게 간판이나 읽고 다니니 허구한 날 길을 잃고 헤매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며칠 전 최 선생님과 함께 파주 근처에 간 적이 있다. 최 선생님은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자녀들이 살고 있는 뉴욕에서 5~6년 사시다가 다시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셨다. 통일로를 따라 운전을 하시면서 최 선생님은 눈에 띄는 간판마다 일일이 토를 다셨다. "'죽여주는 동치미국수집?' 아, 맛있겠다. '꿈에 본 고향'? 좋은 간판이네. 어딜 가도 고향 같은 데가 없어. 정말 꿈에 보이더라고.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죽는다던데."

 

마침 한쪽 모퉁이에 '남매 철공소'라는 간판이 눈에 띄자 다시 말씀하셨다. "'남매 철공소'라… 어딘지 슬퍼 보이는데… '남매 식당'은 몰라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고는 '남매 식당'에 대한 사연을 말씀하셨다. 과부였던 최 선생님 어머니는 시장 한구석에 가마솥을 걸고 국수를 팔아서 생계를 꾸리셨다. 변변한 간판도 없었지만 시장 사람들은 늘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 남매 때문에 '남매 식당'이라고 불렀다.

 

"그나마 팔다 남은 국수도 귀해서 마음껏 먹을 수 없었지. 헌데 이 세상에 온갖 좋고 비싸다는 음식을 다 먹어 보아도, 그때 그 국수 맛은 잊을 수가 없어. 난 정말이지 죽기 전에 어머니가 파시던 국수 한 그릇 다시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오." 이북이 고향인 최 선생님은 다시 못 갈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씀하셨다. "살아보니 인생은 U턴이야.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좇아 미친 듯 여기저기 떠돌아 살다가도 결국 돌아오고 싶은 곳은 내가 떠난 그 고향이거든."

 

'인생은 고향으로의 U턴'이라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고향은 따뜻하고 정답고, 그리고 이제껏의 실수를 다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매일 한눈팔다가 길 잃어버리고 U턴으로 다시 길 찾기에 나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말이다. 천방지축 방향감각 없이 돌아가는 내 인생도 어쩌면 늘 새로운 길을 배워 가면서 U턴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한 말이 생각난다. "떠나라! 그리고 고향의 아가씨들이 가장 예쁘며 고향 산천의 풍치가 가장 아름다우며 그대의 집 안방이 가장 따뜻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 그때 돌아오라!"

 

장영희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