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시선으로 건축의 본질을 본다
독일 사진가 칸디다 회퍼
냉정하고 객관적인 '유형학적 사진'의 대가 "전형과 개성 사이의 긴장에 매혹돼"
궁륭은 드높고 빛은 화사하며 조각은 정교하고 제대(祭臺)는 묵직하다. 포르투갈 마프라 수도원 대성당을 찍은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64)의 사진 앞에서 관객은 숨을 삼켰다. 이 사진은 크다. 가로 2m, 세로 2.5m이다. 그러나 '크기'가 관객을 압도하는 힘의 핵심은 아니다. 관객을 숨죽이게 만드는 것은 회퍼의 '시선'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시선이 아니에요. 찬찬히 보시오. 이 사진엔 이 장소의 전모가 담겨 있어요. 동시에 가장자리의 세세한 부분까지 단 한 군데도 흐릿한 곳 없이 명쾌하게 초점이 맞지요. 우리가 이곳에 직접 가서 작가가 카메라를 설치한 지점에 서도 우리 눈에 비친 광경은 이 사진과 다를 겁니다. 인간의 눈으론 이렇게 볼 수 없어요." (사진작가 강홍구씨)
서울 소격동 국제 갤러리 신관에서 회퍼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회퍼는 20세기 후반 세계와 한국을 휩쓴 '유형학적 사진'(類型學·typological photography)의 세계적 대가다. 유형학적 사진은 특정한 유형의 피사체를 감정이 실리지 않은 냉철하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잇달아 찍는 사진이다. 여러 도시를 돌며 증권 거래소를 찍는 작가도 있고, 공장을 찍는 작가도 있고, 사람을 찍는 작가도 있다. 회퍼는 한평생 유럽의 궁전, 대성당, 도서관, 오페라 극장을 찍었다. 이번 전시에는 가로·세로 2~3m의 대작 19점이 걸렸다. 태국을 여행 중인 그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나 전형(type)과 개성(character) 사이의 긴장에 매혹됐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고요? 예를 들어 세상의 모든 극장은 엇비슷해요. 배우는 연기하고 관객은 지켜보도록 설계되어 있죠. 그러나 극장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다른 극장과 구별되는 개성이 있어요. 장엄한 극장이 있는가 하면 유머가 넘치는 극장이 있는 식이죠. 저는 건축물의 전형과 개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사진을 찍고자 했어요."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유독 궁전, 대성당, 도서관, 오페라 극장만 찍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회퍼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옛날의 편린을 현대인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보존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칸디다 회퍼의 '마프라 수도원 대성당'. 200×250㎝. 2006년작
바이마르 궁전의 내실을 찍은 작품이 좋은 예다. 한때 이 방에 살았던 왕후의 초상화와 생활용품이 이제는 '유물'이 되어 친절한 안내문을 달고 있다. "옛날에 향수를 품고 있는 건 아니에요. 세상은 변하고, 변화는 중요하지요"란다.
회퍼는 스웨덴제 하셀블라드(Hasselblad) 카메라와 독일제 린호프(Linhof) 카메라를 쓴다. 관람객이 없는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를 골라 텅 빈 공간을 찍는다. 그녀는 "좀 역설적인 이야기인데, 건물과 인간의 관계는 인적이 없을 때 오히려 생생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미술 평론가 강수미(39)씨는 회퍼의 사진 앞에서 "신(神)의 시선이 이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회퍼는 "인적 없는 공간을 중립적으로 찍기 때문에 제 작품이 그런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어요" 라며 흥미로워했다. 26일까지.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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