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경제 사이
김광일 조선일보 문화부장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독문학자이자 시인인 김광규의 ‘생각의 사이’라는 시다. 제 각각 맡은 영역에서 제 할 일만 다하면 만사형통일 것 같지만 사실은 각각의 영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는 혜안이다. 특히 가장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시와 경제의 영역까지 에둘러 연결 짓고 있는 대목이 반갑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의 김승미 교수(예술경영 전공)도 최근 이 시를 인용하면서 “(가장 무관할 것 같은) 예술과 마케팅이 오히려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공연 장르나 주제마다 지향하는 나름의 예술적, 사회적 목표에 걸맞은 마케팅 전략을 찾아가는 미조정(fine tuning)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대 예술사, 혹은 예술경영사를 들여다보면 시만 생각하거나 경제만 생각하는, 그래서 편향된 결과로 휴지와 돈(혹은 통계)만 남았던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둘 사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목소리는 순수성을 잃어버린 사이비로 내몰리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어느 편에서도 자기 식구로 끼워주지 않아 어정쩡하게 소멸되고 말았던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새해는 명실공히 시대가 바뀌는 해가 될 것이라고 꿈에들 부풀어 있다. 조선경제의 인기코너인 ‘모닝커피’는 1월 2일자에서 ‘컬처노믹스’(컬처+이코노믹스)라는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다. 기업들이 문화 콘텐츠를 매개로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경제가 시와의 사이를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문화 덕택에 돈을 벌어볼 요량까지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008년에 들어설 새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 경제에 정통한 정부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내놓은 청사진을 보면 문화에도 만만찮은 연구와 전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이 우리 공동체의 성장엔진이 될 것이란 믿음을 피력하고 있고, 수많은 수치와 함께 ‘모두에게 문화를, 모두가 문화를’이란 구호도 내놓았다.
그러나 ‘경제 정부’는 계량화할 수 있는 것들, 돈으로 셀 수 있는 것들, 파워포인트의 막대 그래프로 보고할 수 있는 내용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그것들이 우리를 가장 확실하게 속일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문화 부문이 그렇다. 뮤지컬 같은 공연물의 매출이 기록적으로 늘어나는 것에서, 여기저기 지역 문예회관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것에서, 하루가 다르게 그림값이 상종가를 기록하는 것에서, 서울시가 외형적인 디자인을 바꾸는 것에서, 시·도별 지역 축제가 연간 600개가 넘는 현실 등에서 문화강국의 징후를 읽으려 한다면 ‘지난 세월’이 가시적이되 가식적으로 되풀이될 뿐이다.
문제는 기초예술이다. 기초예술강국이 21세기 강국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문학, 미술, 음악, 연극에서 선진 시민이 되는 것, 다시 말해 좋은 문장과 스토리를 쓰고 분별할 능력과 교양을 갖추는 것, 훌륭한 그림과, 감동적인 연주와, 좋은 연기(演技)를 직접 하거나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누리는 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고 성장동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결국 국부(國富)가 되어 돌아오는 길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21세기의 지도자들이 생각해야 하는 시와 경제의 사이다.
김광일 조선일보 문화부장 k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