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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세계에 날생선을 먹이기까지

세칸 2008. 2. 2. 01:56

일본이 세계에 날생선을 먹이기까지

'스시 이코노미'저자 사샤 아이센버그 인터뷰

 

매일 새벽 5시, 일본 도쿄에 있는 23만㎡(7만평) 규모의 쓰키지 어시장 경매장에 고무장화를 신은 참치 도매상 400여명이 저벅저벅 모여든다. 불과 사흘 전까지 북대서양, 지중해, 태평양을 헤엄치던 수백 마리가 찬 김을 뿜는다. 새벽 5시30분, 경매 시작 종이 울린다. 도매상들이 암호 같은 말과 수신호를 쏟아낸다. 경매는 10분 안팎이면 끝나지만 거래액은 하루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1972년 일본항공(JAL)이 비행기로 참치를 실어 나르기 시작한 이래, 쓰키지 어시장은 참치 유통의 '메카'가 됐다. 스시의 세계화 덕분에 참치의 인기가 폭발했다.

 

 

'스시 이코노미'(해냄)의 저자 사샤 아이센버그(Sasha Issenberg·27·작은사진)는 다섯 살 때 스시와 사랑에 빠진 미국 기자다. 그는 1년 반 동안 5개 대륙 14개국을 돌았다. 참치잡이 하는 캐나다 어부, 쓰키지 어시장의 생선 도매상, 참치 양식으로 갑부가 된 호주 어민, 국제기구가 정한 어획량을 어기고 불법 조업하는 지중해의 '참치 해적', 스타 일식 요리사 등을 두루 만났다. 그는 스시의 유래와 생산과 유통과 소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스시 요리사는 칼날로 심오한 희열 이끌어내"

아이센버그의 눈에 비친 스시 요리사는 사무라이의 후예다. "칼날과 맨손만으로 생선에서 심오한 희열을 이끌어" 내고, "칼을 휘두르며 명예와 질서를 지키기" 때문이다. 사무라이용 장검을 만들던 장인들이 이제 스시 요리사를 최고의 고객으로 친다.

스시 요리사 뒤에는 북대서양의 원양어선에서 서구의 고급 일식집으로 이어지는 거대하고 활기찬 네트워크가 있다. 원양조업, 냉장기술, 항공운송의 발달이 없었다면 스시의 세계화는 불가능했다. 스시는 "돈과 권력과 사람과 문화가 자유자재로 흘러 다니는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산물"이다.

 

스시는 이제 미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세계적 음식이 됐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일본 서민들이 노점에서 선 채로 사먹는 값싼‘패스트푸드’였다. /코바코 제공

 

스시를 취재하며 온 세계를 누비다

아이센버그를 만난 곳은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주(州) 콩코드의 별 세 개짜리 모텔이었다. 눈이 무릎 넘게 쌓인 캄캄한 어둠을 뚫고 버스 한 대가 부릉부릉 달려왔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
존 매케인(John McCain·72) 상원의원, 참모와 기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중 하나가 아이센버그였다.

뜬금없이 매케인이 등장한 것은 아이센버그가 보스턴 글러브지(紙) 기자이기 때문이다. 매케인 전담 마크맨인 그는 "유세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내 일정을 나도 모른다"며 "일단 인터뷰 날짜만 정하고, 어느 도시에서 만나건 그 동네 일식집에서 함께 스시를 먹자"고 했다. 그런 호사스런 인터뷰를 하도록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폭풍으로 연결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회항했다. 수 차례 엇갈린 끝에, 스시와 사케 대신 생선 스테이크와 맥주를 가운데 놓고 야밤의 모텔 로비에 마주 앉았다. 옆 테이블에선 매케인 상원의원이, 뒤 테이블에선 미국 기자들이 뻐근한 어깨를 폈다. 와중에 한국 기자와 스시 얘기중인 아이센버그를 보고 매케인 의원의 딸(23)이 "어머, 재밌네요!" 했다.

 

 



스시 맛이 아니라 세계화를 상찬하는 책

"처음 먹은 스시 맛을 기억하냐"고 묻자 그는 "다섯 살 때 일본인 상사 주재원 이웃이 스시를 사줬다"고 말했다.

"저는 보스턴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어요. 일제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밀려오던 시절이죠. 일본에 대한 매혹과 공포가 혼재했어요. 전 스시를 좋아하지만 '스시에 미쳤다'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 책은 스시 맛을 찬미하는 책이 아니라 스시를 통해 세계화를 설명하려는 책입니다."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세계화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스시 대신 축구를 매개로 삼은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원제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말글빛냄)가 2004년의 베스트셀러였다. 아이센버그는 "혀 끝의 쾌락이 스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요리 비평가들이 많은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했다.

"비평가들은 요리사의 기예와 맛을 강조하지요. 그러나 저는 스시 맛보다 스시가 우리 입에 들어오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어요."

어떻게 값싼 먹거리에서 고급 별미로 도약했을까

고대 일본인들은 소금 채운 생선을 밥과 엇갈려 켜켜이 쌓아 삭혀 먹었다. 19세기에 일본 에도(현재의 도쿄)에 살던 요헤이 하나야(1799~1858)라는 상인이 신선한 생선 조각을 밥에 붙여 팔면서 비로소 스시는 요즘 형태가 됐다.

당시의 스시는 서민들이 직장이나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선 채로 노점에서 두세 개 집어먹는 '패스트푸드'였다. 스시가 고급 음식이 되는 데는 냉장기술 발달을 포함해 몇 가지 계기가 더 필요했다. 1939년
일본 정부가 "위생이 좋지 않다"며 노점을 일제히 폐쇄한 것이 스시의 발전을 불렀다. 실내 영업이 대세가 되면서 손님은 앉고 요리사는 섰으며 요리는 정교해졌다. 전후 일본 경제가 부흥하면서 일본 상사 주재원들이 미국 LA에 스시를 소개했다. 60년대에 자연식 열풍이 불면서 연예계 스타들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스시에 매혹됐다.

스시의 '맛'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아이센버그는 "흔히 스시가 전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시의 맛은 꾸준히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 일명 '노부'로 불리는 스타 요리사 마쓰히사 노부유키(58)다.

일본 사이타마 출신인 노부는 신주쿠에 있는 스시 집에서 5년간 기초를 닦은 뒤 스물 세 살 때 훌쩍 페루로 떠났다. 그는 아르헨티나, 미국 알래스카 등 일본 바깥의 일식당을 돌며 10여 년간 수련한 뒤 LA에 개업했다.

"다른 대륙으로 떠나는 것은 야심 찬 젊은 요리사가 일본 스시 문화의 계급 체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일종의 '로닌'(浪人·주군을 잃고 속박 없이 방랑하는 사무라이)으로 지구촌 경제에 진입했다." (147쪽)

 


스시 이코노미 저자 사샤 아이젠버그

 

그는 도마 위에서 전통과 현대, 일본과 세계를 결혼시켰다. 가자미에 뜨거운 기름을 부은 '뉴 스타일 사시미'가 그 예다. 겉은 뜨겁게 익히고 속은 차고 쫄깃한 퓨전 요리에 날것을 못 먹는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식당 재벌이 된 노부를 두고 아이센버그는 "정처 없는 '로닌'에서 '다이묘'(大名·대영주)가 됐다"고 했다. 불고기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한국 요리사에게 노부의 역정이 좋은 참고가 될지 모른다. 몇 군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흠이다. 원제 'The Sushi Economy'

  • <스시 이코노미>저자 사샤 아이센버그 인터뷰. /김수혜 기자

김수혜 기자(콩코드(美 뉴햄프셔주)) goodluc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