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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의 숲에 빠져볼까?

세칸 2008. 2. 2. 01:39
매력의 숲에 빠져볼까?

숲 속의 다니엘 헤니 '은사시나무' 권상우 근육질 몸매 닮은 '서어나무'
매달 숲 지도를 보내드립니다 1월 서울 도봉산

 

서울 도봉구 도봉산의 숲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얼굴만 척 봐도 나이를 알 수 있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혼인을 하면서 낳은 나무계의 '다니엘 헤니'도 있고, 근육이 매력적인 '권상우' 나무도 있다. 겨우내 푸르름을 뽐내는 '배용준' 같은 선비 나무도 찾아볼 수 있다. 매력 넘치는 도봉산 숲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왔다.

나무계의 '배용준'들… 왕 혹은 선비를 닮았네

1월에도 독야청청 푸른 나무들이 제법 있다. 그 중에서도 '벽오동'은 아예 몸통 자체가 새파랗고 단단하게 생겨 예로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의 저자 윤주복씨는 "과거엔 벽오동을 봉황이 내려 앉는 나무라고 믿고, 중국·일본·우리나라에서 선비의 상징으로 섬겨져 왔다"며 "요즘으로 치면 탤런트 배용준씨 같은 이미지의 나무가 아니겠느냐"고 웃었다.

벽오동의 열매도 신기하다. 커다란 주머니처럼 생긴 열매는 익으면 스스로 다섯 조각으로 갈라지는데, 이 때 껍질 가장자리에 둥근 씨가 그대로 붙어 있다가 다시 싹을 틔운다. 옛날 사람들은 이 씨를 볶아 커피 대용으로 먹기도 했다고 한다.

도봉산 초입에 있는 '사철나무'는 대표적인 상록수다.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사시사철 푸른 광택을 자랑하는 잎을 매달고 있어 관상수로 인기가 있다. 대나무(이대)도 눈에 띈다. 마치 종이로 감싼 듯 '잎집'이 남아있는 모습이 특징인데, 키가 크고 푸르러 아름답다.
 

 

낙우송(落羽松)도 눈여겨보자. 메타세콰이어와 거의 똑같이 생기다시피 한 이 나무는 가을이면 잎 하나 하나가 지는 게 아니라 작은 가지가 통째로 떨어져 내린다. 쭉쭉 뻗은 키와 이별조차 깔끔하게 하는 그 정갈함이 선비의 나무로 불릴 만하다.

얼굴만 봐도 나이를 안다

주름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중년 배우'의 아름다움을 닮은 나무도 있다.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겨울눈을 잘 살펴 보면 마치 반지를 겹쳐놓은 것처럼 동글동글한 '단자'가 이어 붙어 있는데, 이 단자 하나 하나가 1년의 세월을 나타낸다고 한다.

목련나무도 온 몸으로 나이를 말하는 식물이다. 가지에 마디가 뚜렷한데, 이 마디 하나가 1년을 나타낸다. 윤주복씨는 "마디 수나 겨울눈만 봐도 몇 년 된 나뭇가지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향기 좋고 아름답고

산책로 중턱에 아까시 나무 숲이 있었다. 겨울눈이 잎자국 속에 숨어서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잎자국만 보면 꼭 외계인이나 귀가 길게 난 동물처럼 보인다. 봄엔 꽃을, 겨울엔 겨울눈의 흔적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주는 나무라 하겠다.

계수나무도 눈에 띈다. 가지가 항상 'Y자' 모양으로 나면서 두 갈래씩 갈라진다. 긴 달걀형의 겨울눈, 길쭉한 원통형의 열매가 독특하다. 껍질에서 톡 쏘는 매운 맛과 단맛, 부드러운 향기가 나서 한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꽃이 필 무렵에 바람결을 타고 '캐러멜 향기'를 전해주는 달콤한 나무다.

성급한 산수유는 산 초입에서 벌써 꽃눈의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아직 겨울이지만, 꽃잎으로 속을 꽉 채운 눈이 팽팽하게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벌써부터 노란 꽃잎의 속살이 엿보여 설렘을 전해준다.

숲 속에도 '다니엘 헤니'가 있다

도봉산 숲 사이로 은사시나무가 간혹 보였다. 나무 껍질은 푸르스름한 은빛으로 빛나고, 선명한 마름모꼴의 껍질 눈이 장식처럼 남아 있었다. 이 반짝이는 은사시나무는 윤주복씨의 표현에 따르면 '혼혈'이다.

"사시나무와 은백양나무가 혼인을 해서 낳은 나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바람이 마치 매파처럼 두 나무 사이를 오가면서 수분(受粉)을 도와서 은사시나무라는 아이를 낳았어요. 사시나무의 톱니가 달린 잎 모양을 고대로 닮았고, 은백양에겐 나뭇잎 뒷면의 빽빽한 흰 솜털을 물려 받았어요. 그래서 톱니가 달리고 뒷면은 새하얀 그런 나무가 태어난 거죠."

잘생긴 줄기, 눈부신 잎새, 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면모가 나무계의 '다니엘 헤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 했다.

근육질이 멋진 나무도 있었다. 서어나무는 몸체에 힘줄이나 근육을 연상시키는 굴곡이 있어서, 열심히 몸을 가꾼 남자의 잔 근육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와…, 나무의 몸매가 거의 권상우인데요?" "그렇죠? 우리 나라 숲에선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몸매 대회에 나가도 가장 마지막에 살아남을 것 같은 그런 나무예요." 도봉산의 나무들, 참 훈훈하다.


글=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도움말=윤주복 '겨울나무 쉽게 찾기' 저자

입력 : 2008.01.30 23:44 / 수정 : 2008.01.31 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