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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음악다방 “추억을 팝니다”

세칸 2008. 1. 30. 14:07

7080 음악다방 “추억을 팝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그대는 풀잎, 풀잎…

 

“지직거리는 LP판의 아련한 맛… 못 잊으시죠? 20대 손님도 많아… 여기선 세대차란 없답니다”

 

노래 제목을 적은 종이를 DJ에게 건넨 뒤 맥주나 커피를 시켜놓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 그만 일어날까 싶을 때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하는 짜릿한 멜로디…. ‘음악다방’의 추억은 현재진행형이다. 해질녘 문을 열어 동트기 두세 시간 전에야 문을 닫는 21세기형 음악다방들은 ‘추억의 명소’ 수준을 벗어나 세대간 장벽을 허물어주는 역할도 한다.

 

‘곱창전골’의 주인 정원용씨가 턴테이블에 가요 LP를 걸고 있다.

 

왁자지껄 가요도서관 ‘곱창전골’

문을 열자 남진의 ‘님과 함께’가 경쾌하게 귓전을 두드린다. 옆 테이블 수다 내용이 다 들리는 좁다란 가게라 정겹다. 한대수·이정선 등 포크계의 거목들도 종종 찾는다고 한다. 여느 ‘7080 프로’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희귀가요들도 자주 접할 수 있으며, 신청곡 수준도 간단치 않기로 이름나 있다.

개인 취향을 위한 감상실이 아니라 다같이 즐겁게 어우러지는 곳이라 일부러 신청곡을 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DJ의 선곡 방침. 주인 정원용씨는 “지금은 가요만 틀지만 앞으로 토요명화·스포츠중계·수사반장 주제음악 등 ‘추억의 시그널’ 쪽으로 레퍼토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출구로 나와 산울림소극장 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02)3143-2284

 

뮤직비디오의 천국 ‘핑가스존’

건물 입구의 현란한 힙합 그래피티 위에 나붙은 수백여장의 70년대 ‘도넛판’ 재킷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고객층인 20~30대 직장인들이 학창시절에 심취했던 노래에 신청곡이 몰리는 편.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등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80년대 댄스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90년대 중고생들을 사로잡았던 메탈리카·스키드 로우·본 조비 등의 라이브 실황도 인기다.

이곳 강점은 동영상. 뮤직비디오와 공연 장면을 많이 확보해 생생한 화면을 자랑한다. 일본음악 개방 전부터 한국팬들을 거느렸던 튜브, 서던 올 스타즈 등 노장 밴드들의 음악도 꽤 갖추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네거리와 학동 네거리 사이 제일은행 골목으로 50m쯤 들어가면 된다. (02)517-9121

 

‘트래픽’의 주인 오영길씨가 신청곡을 틀어주기 위해 LP 한 장을 꺼내고 있다.김정래인턴기자  

 

세대 이어주는 ‘음악은 흐르는데’

가게 밖으로 최성수의 ‘풀잎사랑’이 쿵짝쿵짝 흘러나온다. 안암동 고려대 정문 건너편에 2002년 11월 문을 열었다. 10년은 족히 되보임직한 약간 빛바랜 간판과 글꼴이지만, ‘구닥다리로 보이기 위해’ 주인 양석모(47)씨가 특별히 주문했다.

‘7080’ 나이대인 고려대의 각종 대학원 고위 과정 학생들이 단골 고객이지만 파릇파릇한 학부생들의 발걸음도 적지 않다. 양씨는 “특히 고(故) 김광석의 노래는 20대 젊은이들과 ‘7080’들이 공감하는 접점”이라고 말했다. 주인장이 ‘저 하늘의 구름따라’를 불렀던 가수 김의철의 골수 팬이라 메뉴판에도 옛 음반재킷 디자인이 들어가 있고, 실제 김씨 노래모임도 열렸다고 한다. (02)953-4475

 

 

내가 꾸미는 열린 감상실 ‘트래픽’

여느 음악카페처럼 선반을 한가득 빽빽하게 채운 LP도 모자라, LP판을 담은 박스가 ‘열리지 않은 마법상자’처럼 쌓여있다. 80년대 음악다방 DJ출신인 주인 오영길(52)씨가 경희대와 종로를 거쳐 2002년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 이름 ‘트래픽’(TRAFFIC)은 60년대 말 활동했던 영국 그룹사운드 이름. ‘손님이 만들어가는 음악다방’이라는 모토를 정해놓고 국적·장르에 관계없이 록음악부터 트로트가요까지 다 틀어준다. 그래서 가게 곳곳이 단골들이 가져온 옛 뮤지션의 포스터나 액자 등으로 채워져있다. 오씨는 “지직거리는 LP의 아련한 맛을 못 잊은 40대 이후들이 아무래도 대세”라고 말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5번 출구로 나와 10분쯤 걸어 신사중학교 건너편. (02)3444-7359

 

정지섭기자 xanadu@chosun.com , 김정래인턴기자 mori198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