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자연산 송이주로 세계가 건배할 때까지

세칸 2008. 1. 26. 14:11
 

현재를 일궈 내일을 당기다

 

 

76년 군대에서 제대한 뒤 의류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청년 이이한(현 (주)솔래원 대표)은 추석을 맞아 여느 해처럼 고향을 찾았다. 우연히 강원도 양구 시장에 들른 청년은 1㎏에 50~70만원 씩 하던 송이가 하루 만에 헐값으로 팔리는 것을 보면서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송이가 쉽게 썩는 점, 싼 값에라도 처분해야 그나마 이윤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일본 상인들이 싼 값에 시세차익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송이를 장기간 썩지 않게 저장할 수 있다면 일 년 내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송이의 장기저장방법 연구를 구상하는 결정적 동기가 됐다.

 

 

멧돼지와 싸우며 지속한 송이 연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송이연구는 바닷가에서 진주 찾기와 같은 작업이었다. 송이를 채취하는 사람들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지만 ‘쓸데없는 일’이라며 외면당했다. 가족과 친구들조차도 “먹고 살만 한데 왜 고생을 사서하는지 모르겠다”며 청년의 의욕에 손사래 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 대표는 저장법을 알기 전에 송이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년 6~10월쯤 동료 너 댓 명과 함께 송이가 있을만한 곳에 텐트를 치고 밤낮을 살았다. 그러던 중 81년 가을부터는 민통선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송이의 생태와 습성, 자라는 과정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멧돼지와 마주치기도 했고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산짐승과 싸워야 했다. 깊은 산속을 헤매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뻔 했을 때는 송이연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이 대표는 송이버섯관련 자료를 얻기 위해 해외 출장도 내 집 드나들 듯했다. 1990년부터 6년 동안 중국 운남성과 백두산 인근, 캐나다와 모로코 북한 등 송이가 생산되는 세계 11개국 어디든 찾아다녔다. 5년여를 연구한 끝에 송이에 관한 결정적 생태 조건들을 알아냈고 공기를 차단하면서 습도를 유지하면 된다는 저장 원리까지 알아냈으나 저장 방법이 문제였다. 참숯 물로 코팅도 해보고 콘돔에도 집어넣는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됐지만 실패가 반복됐다. 아버지의 농장으로부터 나오는 수익마저 끌어 쓰며 그 때까지 사용한 돈이 10억 여 원에 달했다. 가족들의 만류와 비난도 쏟아졌다.

그런데 84년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희소식이 찾아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국인 윤 모 교수가 저명한 송이버섯 연구자이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만사 제쳐두고 윤 교수를 만났다. 이 대표는 윤 교수로부터 송이버섯의 신진대사 및 변질과정 등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송이버섯의 경우 습도문제를 해결해야 저장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는 윤 교수와 3년여에 걸쳐 연구결과를 팩스로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저장법을 찾아나갔다. 88년 가을, 마침내 특수냉동포장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송이연구에 인생을 건 지 10년이 지난 즈음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갓 따온 것처럼 맛과 향이 그대로 유지되는 세계최초의 송이장기저장법이 완성된 것이다.

 

세계 최초 송이저장법 개발, 세계 9개국 특허

 

 

이 대표가 개발한 저장법은 종이봉지에 송이를 넣고 봉지내부에 공기를 없앤 뒤 봉지와 밀착된 공기를 다시 제거해 호기성 세균의 번식을 막은 다음 5겹의 복합 라듐 필름 등 특수 제작된 용기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영하 176도로 급랭시키는 방법이다. 이 대표는 3년 여 실험을 다시 거친 뒤 91년 특허출원을 해 2년만인 93년 발명특허를 받았다. 송이 특수포장기술은 세계 9개국에 특허출원 되는 쾌거를 거뒀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송이 저장 공장 설립이 문제였다. 공장설비 비용이 워낙 많이 들었다. 제품 생산기계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재벌회사에서 송이저장기술을 수 억 원에 사고 공장대표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송이 공장은 양구에 서야하고 내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절했어요.”

갖은 어려움과 외로운 분투 끝에 투명필름제조기와 이를 저장하는 냉동 창고, 송이포장 작업 기계 등을 다시 개발, 96년 양구군 방산면 현리에 각종 기계 설비를 갖춘 공장이 완공된다.

 

송이를 이용한 각종 상품개발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으로부터 저장 송이 주문이 밀려들었다. 물량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96년 11억 원, 97년에 30억 어치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저장법 개발은 연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 대표는 송이를 이용한 각종 상품개발에 몰두, 송이김치와 송이 아이스크림, 송이 스테이크 등 50여 가지 제품을 개발해냈다. 도약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 대표는 또 송이주의 고급화를 위해 프랑스 꼬냑 회사에 2년여 간 직원을 연수 보내 송이주 개발에 적합한 선진기술 습득에도 앞장섰다. 수출국도 일본을 벗어나 홍콩과 미국으로 넓혔다.

2006년 매출액은 내수와 수출을 포함해 65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하루 생산량도 지난 3월말 새 공장 증설로 1만병에서 2만병으로 늘려 연간 600만병의 송이주를 생산한다. 2005년 말 미국에 지사도 설립했다.

 

“한 가지 일에 미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제 농민도 세계를 상대해야 할 때입니다. 상품 시장의 흐름도 파악하고 생산뿐 아니라 가공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기와 뚝심으로 30년 송이연구와 송이주 사업을 병행해 온 이이한 대표. 이제는 송이주 하나로 전 세계를 석권하고자 하는 이 대표가 개방 파고로 시름에 젖어있는 농민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출처 : 농촌정보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