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를 책으로 만든 ‘블룩’ 인기
국내외서 요리 등의 가벼운 실용서적 중심으로 베스트셀러 잇따라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출판시장에선 ‘블룩(blook)’이 유행이다. 이 신조어는 ‘블로그(blog)’와 ‘책(book)’을 합친 말이다. 말 그대로 블로그에 선보였던 콘텐츠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블룩이 대유행이라는 것은 요리책 시장만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현재 각 서점의 요리책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도서 중 3분의 1 가량이 블룩이다. 지난 2월 출간된 ‘베비로즈의 요리 비책’(현진희 지음, 21세기북스)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하루 평균 5000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그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지은이가 요리와 살림살이에 대한 노하우를 사진과 함께 꾸준히 게재한 것이 네티즌의 호평을 받았다.
미혼자가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요리를 해먹을 때 참고할 만한 책인 ‘프렌즈 요리’(김경미 지음, 리스컴), 쌍둥이를 키우는 주부가 알뜰한 예산으로 아이들 요리 만들기 비법을 담은 ‘쌍둥이 키우면서 밥해먹기’(문성실 지음, 조선일보생활미디어), 주인공과 스토리가 있어 소설처럼 구성된 ‘야옹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김민희 지음, 21세기북스)도 모두 네이버 블로그에서 비롯됐다.
특히 요리 분야에 블룩이 많은 것은 요리책 중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김용환 지음, 영진닷컴)의 영향 때문이다. 저자가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선보인 콘텐츠를 책으로 펴낸 것이 대중의 입맛에 딱 들어맞아 출판 기획의 역할 모델이 된 것이다.
블룩 열풍은 요리책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5만원 인테리어’(레테 지음, 랜덤하우스중앙)는 무려 17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인테리어 카페의 주인장이 제안하는 DIY 인테리어 책이고, ‘명품 다이어트 & 셀프 휘트니스’(송민경 지음, 국일미디어)는 40대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멋진 몸매를 간직하고 있는 지은이가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의 ‘페이퍼’라는 공간을 통해 알린 운동법을 엮었다.
이 밖에도 블로그 전문 사이트 이글루스의 인기 블로거 17인의 글을 옴니버스로 엮은 ‘블로그 on’(이글루스 피플 17인 지음, 더북컴퍼니), 일상의 생각을 펜화와 함께 꾸민 그림 에세이 ‘비정규 아티스트의 홀로그림’(밥장 지음, 리더스컴), 미술 에세이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박누리 지음, 마로니에북스), 일본 생활의 즐거움과 고충을 만화로 담아낸 ‘당그니의 일본 표류기’(김현근 지음, 미다스북스)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외국 출판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로그 콘텐츠의 가치를 확인시켜준 ‘살람 팍스의 평화를 위한 블로그’(살람 팍스 지음, 한숲)나 ‘조엘 온 소프트웨어’(조엘 스폴스키 지음, 에이콘)는 벌써 옛것이 돼버렸다. 지난 5월 출간된 ‘사무실 블랙 스케치’(막스 지음, 정신의 서가)는 블로그 콘텐츠가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의 한 간부가 회사원의 일상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조회수 300만이라는 돌풍을 일으켰는데, 그 내용을 소설로 출간했다. 지은이는 블로그에 연재할 때의 익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4월 ‘비즈니스위크’는 미국 출판의 베스트셀러 100권 중 20권이 블룩이라고 전하며 이 재미난 현상에 대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이처럼 블룩이 유행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첫째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이미 어느 정도 독자의 판단을 거친 콘텐츠라는 점, 셋째 기존에 널리 알려져 비싼 작가 대신 참신한 일반인 작가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렇다 보니 출판사만 좋은 블로그 찾기에 혈안이 된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블로그는 아니지만 ‘1인 미디어’인 싸이월드의 ‘페이퍼’는 아예 회원들의 출간을 적극 장려, 홍보하고 나섰다. 블로그 콘텐츠를 책으로 펴낸 사람이 지금까지 무려 31명이라고 한다. 또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책으로 묶을 만한 블로그를 탐색해주는 블룩 전문업체도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블로그가 출판 기획자들의 광맥이 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원석이 발견될 뿐이다. 블로그의 내용을 묶은 책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와 인생 에세이집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정도가 흥행에 성공했다. 출판 기획자들은 블룩의 장점으로 이미 홍보가 되어 있어 판매가 일정 정도 보장되리라는 점을 꼽지만, 실제 출간된 블룩의 실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블로그의 콘텐츠를 그냥 쓸어 담기만 해서는 좋은 책이 나오기 어렵다. 기왕에 온라인을 통해 다 보았던 것을 굳이 책으로 다시 읽을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충실히 답하면서 출판매체로서의 장점을 살려 새롭게 포장, 기획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블룩의 선봉에 요리책을 포함한 실용서가 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즈니스위크’가 블룩의 대표주자로 소개한 미국 책도 요리책이었다. 곁에 두었다가 급박한 필요가 있을 때 손쉽게 펼쳐보겠다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블로그에서 콘텐츠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비로즈의 요리 비책’의 지은이처럼 추가 정보를 주며 온라인, 오프라인 양쪽으로 독자를 유인할 경우 쌍방향성이라는 블로그의 장점을 한껏 살릴 수 있다.
반면 문학이나 교양서의 경우 블로그 콘텐츠의 특성상 호흡이 짧고 깊이가 얕다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인기 블로그의 콘텐츠라도 블룩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책에서 일관된 세계관, 짜깁기를 넘어선 깊이, 그로 인한 문제의식의 확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룩의 득세는 ‘과연 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김명남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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