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당신의 두 번째가 되겠습니다

세칸 2008. 1. 19. 16:16
오메가, 당신의 두 번째가 되겠습니다

 

‘보여주는 시계’보다 ‘갖고 싶은 시계’로

1961년 소련이 최초의 유인우주선 비행에 성공하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의 자존심을 건 ‘우주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나사(NASA)의 달 착륙 프로젝트 중엔 우주인이 착용할 시계를 선정하는 일도 포함됐다.
 

 드빌 레이디 크로노미터

 
 
작전 수행을 위해선 영하 50도와 영상 100도를 오가는 극한의 온도와 지구 중력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달의 중력을 견디면서도 정확성을 기하는 시계가 필요했다. 나사는 수십 종의 시계를 대상으로 실험을 벌인 뒤 우선 6개 브랜드를 골랐다. 이어 공개심사를 거쳐 한 시계 브랜드가 최종 선정됐다.
 
1969년 7월 21일 02시56분20초 GMT.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던 그 순간을 기록한 것은 닐 암스트롱이 손목에 차고 있던 오메가(OMEGA)의 시계 ‘스피드 마스터’였다.
 
달 착륙한 ‘문워치’ 명성… 보석에도 도전
 
‘파일럿 워치’로서 명성을 쌓아온 이 시계는 성공적으로 우주 작전을 수행한 뒤 ‘문워치(Moonwatch)’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폴로 13호의 조난 사고 때 전기와 동력이 모두 끊어진 기체 안에서 1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지구 대기권 진입 시간을 정확히 알려줘 세 명의 우주인을 구한 것도 이 시계였다고 한다.
 
1000분의 1초로도 순위가 뒤바뀌는 스포츠 경기에서 정확한 시간 측정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1932년 미국 LA올림픽을 시작으로 오메가는 20회에 걸쳐 올림픽의 공식 타임키퍼(Timekeeper)로 쓰였다. 1952년에 1000분의 1시간 측정기를 최초로 발명한 뒤 현재도 육상, 수영, 승마를 비롯한 각종 기록 경기의 국제대회에서 전속 측정기로 쓰인다.
 
없는 ‘신화’도 만들어 홍보해야 하는 럭셔리 세계에서 ‘달에서 착용된 최초의 시계’ ‘세계 스포츠 경기의 전속 측정기’ 같은 타이틀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덕목이다. ‘튼튼하고 정확한 시계’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오메가는 이제 화려하고 모던한 디자인에 승부를 걸고 있다.
 
오메가가 속한 세계적 시계 그룹 ‘스와치(SWATCH)’의 회장이 말했듯이 “시계도 이제 초콜릿처럼 쓰면 닳아 없어지는 시대”가 열렸다. 시계 한 개를 구입한 뒤 영원히 그것만 차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사서 쓰면 좋은 ‘패션 아이템’이 됐다는 말이다. 실제로 오메가나 롤렉스 같은 ‘시계 브랜드’뿐 아니라 샤넬이나 몽블랑 같은 브랜드가 ‘브랜드 시계’를 속속 만들어내며 ‘시계 전쟁’에 뛰어들었다. 남성 시계도 패션을 반영한다는 뜻에서, 그들이 찬 손목시계를 ‘남성의 또 다른 명함’이라고도 한다.
 
오메가는 사실 국내외적으로 결혼 예물 시계의 대명사로 입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패션 시계’로 날개를 다는 데엔 그 명성이 다소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요즘 오메가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아, 오메가에서 이런 시계도 나오나요?” 하는 것이다.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때 정장 차림에 착용할 시계뿐 아니라 연인과 데이트하거나 강가에서 자전거를 탈 때 차고 싶은 시계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보여주기 위한 시계’가 아니라 ‘갖고 싶은 시계’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오메가는 요즘 ‘두 번째 시계’가 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첫 번째 손목시계는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의견을 반영해 구입한 것이라면, 두 번째 시계는 ‘내가 갖고 싶어서 사는 시계’이기 때문이다.
 
오메가는 대표적 컨스텔레이션 라인은 물론이고 다이버용 시계인 씨마스터 라인, 스포티한 라인을 대표하는 스피드마스터 라인, 골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컨스텔레이션 더블 이글라인 등으로 모델군을 넓혀가고 있다.
 

젠트 링 / 아쿠아 씨홀스 / 스피드마스터 / 씨마스터 플래닛 오션 오렌지 메카닉 크로노 / 컨스텔레이션 /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프로페셔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베스트셀러 시계들은 계속 변형돼 새로운 제품으로 태어난다. 진주·자개로 된 다이얼 판과 천연 다이아몬드 49개로 장식된 ‘스피드 마스터 리듀스드 레이디’ 같은 시계도 있다. 올해로 출시된 지 50년을 맞는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도 블루 컬러의 시침과 분침으로 캐주얼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살린 스피드마스터 브로드 애로로 부활했다. 과거의 전문 다이버용 시계가 300m까지 방수가 가능했다면, 요즘은 600m까지 가능해졌다. 헬륨가스 방출 밸브가 감압 중 헬륨가스를 모두 빠져나가게 해서 시계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오메가는 180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탄생했다. 1848년 루이 브란트라는 시계 장인은 스위스의 라 쇼드퐁에 포켓워치(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계)를 조립하는 공방을 만들었다. 브란트는 스위스에서 시계를 제작해 이탈리아에서부터 북유럽, 영국으로 직접 판매했다. 1894년 프랑수아 슈빌레라는 장인은 뛰어난 정확성을 가진 시계 부품을 발명해 표준화했고, 이를 부유층만이 아닌 대중을 상대로 팔기 시작했다.
 
그리스 문자의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OMEGA)’로 이름을 정한 건 ‘기술의 완성’이란 뜻이었다.
 
150년 넘게 시계를 만들어 판매한 경력이 향후 150년의 성공을 보장하진 못한다. 오메가가 ‘DYB(Dress Your Body)’라는 액세서리 회사를 설립해 주얼리 같은 제품군으로 넓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오메가의 시계 유통망을 발판으로 보석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오메가는 파인 주얼리를 론칭하기도 했다. 유럽의 플래그십 매장에선 향수와 가죽으로 된 소품을 판매할 준비도 마쳤다.
 
오메가는 현재 ‘브레게(Breguet)’ 등 17개 시계 브랜드를 거느린 스와치 그룹의 효자 브랜드다. 오메가는 티소(Tissot) 등 주요 브랜드를 합병해 SSIH라는 거대 기업이 된 뒤 197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론진·라도·스와치 등 메이저 브랜드가 속한 ASUAG와 합병했다. 회사 이름이 스와치 그룹으로 바뀐 건 1998년이다. 현재 오메가는 세계적으로 130여개 국가에 50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황성혜 기자 coby072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