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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주당들, 입소문 듣고 구경와

세칸 2008. 1. 15. 11:59

"전국의 주당들, 입소문 듣고 구경와"

술 관련자료 4만여점 모은 술 박물관장 박영국씨

 

이석우 기자(안성) yep249@chosun.com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도로변에는 ‘대한민국 술 박물관’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 3층 건물이 있다. ‘술 박물관’이란 이름대로 온갖 술도 전시돼 있지만, 관람객 눈길을 붙드는 것은 술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옛날 양조장에서 술 만들던 갖가지 도구, 술과 관련된 고서(古書) 등 무려 4만점의 자료들이 가득하다.

 

경기도 안성에 차린 자신의 술 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한 박영국씨.

1990년대 초부터 전국에서 수집한 술독, 술병, 서적, 신문 자료 등 4만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 희한한 박물관은 술에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좋아했던 박영국(52) 관장이 17년간 전국 고물상, 양조장 등을 휘젓고 다니며 모은 자료들을 모아 2004년에 문을 열었다. 특정 주류 회사가 꾸민 주류 박물관이 더러 있지만 이처럼 동서고금 술에 관한 다양한 유물을 모아놓은 곳은 이곳뿐이다.

이 박물관은 입장료도 안 받는다. 박 관장은 “박물관 옆에 식당을 하나 열어 먹고산다”고 했다. 그는 “딱히 광고도 안 했는데 전국의 주당들이 입소문 듣고 찾아와 구경한다”며 “대형 주류업체 직원들도 모두 나한테 와서 술 관련 자료를 얻어가고 복사해 간다”고 자랑했다.

박 관장은 젊은 시절 주류 도매업을 했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재미 삼아’ 술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시골집에 굴러다니던 술독, 오래전 문 닫은 양조장에서 굴러다니던 술 제조 도구들, 반쯤 벗고 있는 팔등신 미녀가 등장하는 주류 도매상 달력, 30~40년 전 신문에 난 소주 광고까지 별의별 것을 다 모았다. 술 제조법을 기록해놓은 ‘규중세화’, 술마시는 예법을 기록한 ‘향음주례’, ‘조선주조사’ 등 조선시대의 희귀한 고서도 이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그는 “가끔 대학 교수님들이 찾아와서 ‘도대체 이 책을 어디에서 구했느냐’며 탐내는 것을 보면 제법 쓸 만한 물건 같다”고 말했다.

밀주(密酒) 제조를 엄격하게 금하던 시대의 문헌도 눈길을 끈다. “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술을 담그고자 하오니… 명답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한제국 시절인 계묘(癸卯·1903년)년 9월 11일 경상도 성주군 북면 마치리 엄학성씨가 군수에게 올린 문서도 박물관 벽에 걸려 있다.

가끔 주류 회사들로부터 기업 산하 박물관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박씨는 사양했다. “기업체 밑으로 들어가면 내 맘대로 물건 주워 오지도 못하고, 알음알음으로 내게 자료를 건네 주던 술 친구들도 불편해 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술 박물관 관장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기분 좋으면 사나흘 내리 마셔도 끄떡 없지만 내가 술을 못 이길 것 같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입에 대지도 않아요. ‘향음주례’를 보면 ‘남의 집에 가면 술을 일곱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요. 조상님들 말 틀린 것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