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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방치하면 더 큰 대가 치른다

세칸 2008. 1. 12. 13:22

기후 변화 방치하면 더 큰 대가 치른다

런던·뉴욕·워싱턴DC의 CO₂ 대처법

런던, CO₂ 60% 감축 목표로 분야별 가이드라인 제시
시내에 견본 주택 지어 관람객에 구체적인 정보 제공
해수면 상승 위기 뉴욕도 5개 분야 실천계획 제시
GDP 1%로 대응 가능… 지금 안하면 손실 20배로

 

정형지 ADL(아서디리틀) 아시아·태평양지역 상임고문

 

 

대도시들이 전세계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세계 에너지 사용의 75%,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한다. 더욱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주민 20억 명이 도시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돼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다행스럽게도 전 세계 40여 도시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C40 (대도시 기후 리더십 그룹)이라는 협의체를 결성하고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저감과 에너지 사용 효율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이 가운데 런던과 뉴욕은 C40 회의의 1, 2차 총회를 각각 개최할 정도로 지구 온난화와 환경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반면 워싱턴DC 인근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세 도시의 사례를 통해 2009년 C40 총회를 개최하는 서울의 갈 길을 생각해보자.


 

런던의 '그린 홈' 프로그램

런던은 자칫 구호에 그칠 수 있는 희망 사항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앞서가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2월 켄 리빙스턴(Livingstone) 런던시장은 기후 변화 실천 계획(Climate Change Action Plan)인 '내일을 지키기 위한 오늘의 행동강령'(Action Today to Protect Tomorrow)을 통해 CO₂ 저감을 위한 종합 대책을 제시했다.

개인·기업·정부 등 각 경제주체별로 현재 연간 약 4400만t에 달하는 CO₂ 배출량을 2025년까지 60% 줄여 1800만t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야심 찬 조치들이 여기에 담겨 있다.

CO₂ 1t 150㎥에 해당돼 50평형 아파트를 꽉 채울 정도의 무게다. 우리나라는 1인당 연 10t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런던시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시내에 지은 견본주택‘저탄소길 1번지’. 분수대 오른쪽에 전면이 유리창으로 돼 있는 건물이다. /AFP 

 

 

리빙스턴 런던시장은 실천 계획을 그린 홈(Green Homes·가정 대상), 그린 기관(Green Organizations·사업체 및 영리·비영리 기관 대상), 그린 건축(Green Construction·건축 분야 대상) 등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눠 탄소 저감 활동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기서는 그린 홈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그린 홈 프로그램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삶의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유사 프로그램들이 설계 초기 단계에서 탄소 저감 계획이 반영된 신축 주거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그린 홈 프로그램은 모든 런던 시민에게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런던시는 이 프로그램을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끌기 위해 2007년 12월 초 트라팔가르 광장 남동쪽에 '저탄소길 1번지'(No. 1 Lower Carbon Drive)라는 이름의 빅토리아 양식의 견본주택을 지어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탄소 저감을 위해 실제로 어떤 활동들을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자신의 가용 예산과 집의 노후화 정도, 집의 소유 여부 등에 따라 구체적인 탄소 저감 프로그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방문객들이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 난이도별 사례들을 전시하고 있다.

견본주택은 에너지, 단열, 물, 재활용, 환기, 가전 등 여섯 가지의 테마 존으로 나눠져 있다. 특징적인 전시품으로는 지능형 중앙 컨트롤러, 여러 단계로 조절 가능한 조명 옵션, 태양광·태양열을 이용한 온수 공급, 절전형 가전제품 등이 있다.

방문객들은 어떤 기술을 얼마나 쉽게 쓸 수 있고, 탄소 저감 효과가 얼마나 되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나타내는 '탄소 절감 카드'(Carbon Cutting Cards)를 받아 전문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저탄소길 1번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런던 개발청(London Development Agency)은 탄소 배출 저감기술 등을 도입한 가정에게 '그린 홈 관리인'(Green Homes Concierge)이란 서비스를 제공한다. 런던 개발청이 고용한 주택 에너지 전문가들이 해당 가정을 방문해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조언하고 서비스 공급업체 등의 정보도 제공한다.

뉴욕시의 쾌적한 도시 만들기 'plaNYC'

'지구의 날'인 2007년 4월 22일 마이클 블룸버그(Bloomberg) 뉴욕 시장은 쾌적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모토로 'plaNYC 2030' 계획을 발표했다. plaNYC 는 plan과 NYC(뉴욕시의 영문 약자)의 합성어이다.

이 계획은 뉴욕이 도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카고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 다른 도시 수준을 넘어서 런던, 상하이 수준의 편리성과 쾌적함을 갖춰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뉴욕이 겪고 있는 변화와 다가올 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도 크게 작용했다.

뉴욕은 1000㎞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홍수 범람 지역에 살고 있다. 그런데 뉴욕 평균 해수면은 2020년까지 지금보다 8㎝ 더 높아져 홍수대란이 찾아오는 주기가 현재의 80년에서 43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2050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50㎝ 상승해 홍수대란 주기가 19년으로 대폭 축소되는 등 홍수 대란이 뉴욕을 자주 습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런던이 CO₂ 60% 감축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과는 달리 뉴욕의 plaNYC 계획은 세 가지 이슈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부 인구 유입 및 관광업 등으로 인한 도시의 지속적인 성장 ▲노후화된 인프라 업그레이드 ▲관련 환경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마스터플랜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면 2030년까지 CO₂ 배출량의 30% 감축이 가능하다는 접근이다.

 

 

 

plaNYC는 세 가지 당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각각 큰 테마를 선정했다. 각각의 테마는 성장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개방(opeNYC)', 노후화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유지(maintaiNYC)', 환경 오염을 해소하기 위한 '친환경(greeNYC)'으로 이름 붙여졌다. 그리고 이런 테마를 충족시키기 위해 3개월간 각계 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쳐 땅, 공기, 물, 에너지, 운송 등 5개 분야에서 실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plaNYC는 추진 과정에서 달성 목표를 알기 쉽게 제시하고 홍보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뉴욕 시민은 자기 집에서 걸어서 10분 내에 공원에 갈 수 있다', '뉴욕에서는 미국의 다른 어떤 대도시보다 깨끗한 공기를 마신다' 등 피부에 와 닿는 슬로건을 목표로 제시했다.

plaNYC 운송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인 페덱스(Fedex)의 경우를 보자. 페덱스는 과거 36년간 디젤 트럭을 통해 뉴욕시를 누볐다. 그러나 지난 2004년 페덱스는 오염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하이브리드 트럭을 구입하겠다고 뉴욕시에 신청했고, 뉴욕시는 공기 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차량 구입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페덱스는 트럭 48대를 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교체했다. 하이브리드 트럭 도입 후 부유입자 배출이 96% 감소됐고, 1갤런(약 3.8?)으로 57%나 더 많이 운행할 수 있게 돼 연료비도 3분의 1이상 절감할 수 있게 됐다.

1만대의 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연간 1700t 스모그 관련 물질 배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뉴욕시의 모든 승용차가 25일 동안 다니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8만3000t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 같은 감축 효과는 나무 200만 그루를 심거나, 원유 100만 배럴(1배럴은 약 160t을 덜 쓰는 것과 맞먹는다.

뒷짐 진 워싱턴DC 인근지역

미국의 워싱턴DC 인근 지역은 DC와 메릴랜드(Maryland)주 교외지역, 그리고 북부 버지니아(Virginia)주를 포함한다. 그런데 인구 약 500만명인 이 지역의 CO₂배출량이 2005년 한 해 6600만?으로 인구 900만명인 스웨덴보다 25%, 인구 750만명인 스위스보다 42%나 많다.

이 지역의 CO₂ 배출 주범은 최근 미국 내 최악의 교통 체증 도시 2위에 오를 만큼 불량한 교통 상황이 꼽힌다.

미국에서 자동차 운송이 도시 전체 CO₂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0% 안팎이다. 그러나 워싱턴DC 인근 지역은 이 비중이 무려 34%에 이른다. 더욱이 이 지역에는 미국 전체 전력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탄화력 발전소도 밀집해 있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하지만 워싱턴DC는 석탄화력발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CO₂를 저장하는 기술을 도입하는 데 대해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손을 내저으며, 앞으로 더 청정한 연료가 개발되면 그 때 연료를 바꾸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워싱턴 지역 비영리단체가 발간하는 월간 COG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30년까지 워싱턴 지역 CO₂ 배출량이 35%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평소 '그린 리닝'(Green Leaning·친환경을 통해 기업의 이익증진 도모)과 '블루보팅'(Blue Voting·친환경을 표방하는 민주당 지지) 등을 외쳐온 워싱턴DC 지역이 실제 CO₂감축을 위한 실행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채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처 안 하면 시민 부담으로 부메랑

스턴 보고서(영국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 경이 2006년 10월 지구온난화 위험성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전세계 GDP의 5%에 해당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환경과 건강에 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며 손실이 GDP의 20%까지 치솟는다. 반면 적절히 준비하면 전세계 GDP의 1%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추산이다.

이미 보험사들은 기후 변화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을 지역 단위로 차별화해서 적용 중이다.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스위스리는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 발생 가능한 자산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요구하고 있다. 또 올스테이트(Allstate)나 시그나(Cygna) 등 보험사들은 잦은 산불이 일어나는 미국 서부와 폭풍우의 피해가 심한 플로리다 지역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보험 가입 자체를 거부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아직은 먼 얘기 같지만 환경 위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도시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높은 보험료나 이자를 부과 받는 등의 비용을 치러야 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