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목비(상원사 중수비)의 복원

세칸 2008. 1. 12. 13:23
목비(상원사 중수비)의 복원
 
 
오대산의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성덕왕 4년(705년)에 중창하였으나, 1946년에 불타 1947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든 높이 1.67m, 지름 91c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동자상, 상원사를 중창하기 위해 세조가 쓴 친필어첩인 중창권선문 등이 있다. 상원사 입구에는 관대걸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 역시 오대산과 얽힌 세조의 전설 중의 하나이다. 세조가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어느 날, 오대천의 맑은 물이 너무 좋아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지나가던 한 동승에게 등을 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니, 동승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요”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렇듯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 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이며, 목욕을 할 때 관대를 걸어두었던 그곳이 지금의 관대걸이다.

 
 
상원사 중수비는 1932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통 비석과는 달리 나무로 만든 보기 드문 사적비이다. 상단에는 ‘상원사적’이라고 해서체로 새겼고, 우측 1행에 ‘雉岳山上院寺重修記’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전면은 12행으로 1행 40자이다. 후면은 상원사가 중건될 때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양면 모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 목비의 글은 李寅相이 지었고 李泰會가 각자하였다. 이 중수비는 상단이 아치형인 石碑형태의 木碑로 碑身部만 남아있었으며 좌대는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상원사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원주의 한 사학재단에 옮겨졌으며, 그 후로 다시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연원을 알 수 없으나, 현재는 원주시립박물관이 관리하는 중이다.
 

Image_View

 
 
목비는 부후균으로 인해 상단과 하단이 손실되었고, 내부가 거의 공동화 된 상태이며 보관상의 부주의로 인한 휨과 뒤틀림, 함몰 등의 변형이 발생한 상태였다. 따라서 차후의 충해와 미생물의 침해로부터 목비를 보호하고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 위한 조치가 시급한 것이었다. 비신의 중앙이 길이방향으로 갈라졌는데, 누군가 굵은 철사를 사용하여 2군데를 묶어 놓은 상태였다. 상단은 길이 방향으로 360㎜ 가량의 편이 결실되었으며,  하단부는 겨우 원래의 길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극히 소량의 말단부만 남아 있을 뿐 거의 분해되어 사라졌다. 내부는 훼손이 심각하여, 편의 탈락과 분말화로 인해 전체적으로 空洞化된 상태였다. 표층부도 전반적으로 갈라짐과 휨이 발생한 상태였다. 조사 결과 나무의 종은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속이 빈 상태로 두 조각으로 갈라진 목비를 재구성하기 위하여 내부에 직경 20㎜ 정도의 목심을 박아 결착하고, 부정형으로 손상을 입은 내부의 공동은 합성수지 채웠다. 없어진 비신의 하단부는 자작나무를 써서 손상의 형태에 맞춰 조각하여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