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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넘어 대체에너지로…

세칸 2008. 1. 12. 13:22

석유를 넘어 대체에너지로… BP·셸의 대변신

기업의 탄소관리(Carbon Management)는 가능한가

정형지 ADL(아서디리틀) 아시아·태평양지역 상임고문

 

미국은 지금까지 교토협약에 소극적이었지만 화석에너지와 대체에너지 각각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안보 정책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최근 가파른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략비축유의 양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 또한 미국 에너지성을 중심으로 태양광, 연료전지 및 청정석탄에 대한 기초 및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R&D(연구·개발)에 20년 이상 투자하고 이제는 시장 형성을 위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바이오연료 분야에서 미국은 최대 생산국 중 하나이며, 풍력에서도 GE 계열사인 GE 윈드(Wind)가 전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일찌감치 몇 년치 수주를 끝낸 상태다.

 

# 정유업계
BP·셸, 생산설비 개선해 CO₂감축 자체목표 달성
바이오연료·풍력·태양광·청정석탄… 시장 형성
美·英·中 대학들과 대체에너지 공동연구 프로그램도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동의한 상황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정유와 자동차 산업,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산업의 변화와 과제를 살펴본다.

 

BP와 셸 사례를 통해 본 정유산업의 과제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재 대체에너지 분야에서 앞서가는 업계는 단연 정유업계다. 정유업계는 이미 1,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대체에너지 분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기업은 로열더치셸과 BP이다. 셸과 BP의 신재생에너지 추진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양사로부터의 시사점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CO₂ 저감을 사업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셸의 CEO는 "CO₂와 기후변화에 대한 논란은 끝났다. 이제 쉘의 초점은 CO₂ 배출저감을 위해 원가경쟁력 있는 방안 확보에 있다"고 단언했다. BP는 2002년부터 '석유를 뛰어넘어'(Beyond Petroleum)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정유업계의 대체에너지 분야를 주도해 왔다. 또 셸과 BP는 에너지효율성 제고에도 적극적이다. 양사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설비 개선과 공장설비 효율 강화, 상하수 관리 등을 통해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BP는 1998년 이후 에너지효율성 제고를 통해 약 2조원의 기업가치가 증가한 것으로 자평(自評)하고 있다.

 

캐나다에 있는 로열더치셸의 정유공장. /블룸버그 

 

둘째, 대체에너지 포트폴리오 중에 수익을 발생시키는 사업을 적어도 1~2개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술적 상용화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시장을 형성한 분야는 바이오연료, 풍력 및 태양광, 청정석탄 등의 분야로 셸과 BP 모두 활발하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해당 기술을 보유한 업체의 인수 또는 지분확보에도 거침이 없다. 셸은 2세대 바이오연료 개발을 위해 짚에서 효소를 이용해 에탄올을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한 아이오젠(Iogen)사에 지분투자를 했다. 또 네덜란드 해상풍력기지 개발을 위해 발전사인 뉴온(Nuon)사 그리고 청정석탄사업을 위해 남아프리카의 본사를 둔 세계적 석탄업체인 앵글로아메리칸(Anglo American)사와 제휴했다. BP는 태양광 사업 인도진출을 위해 타타(Tata)사와 제휴를 체결했으며, 오리온에너지(Orion Energy)사, 그린라이트에너지(Greenlight Energy)사 등을 인수해 풍력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셋째, 대체에너지의 중장기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셸은 자체 연구개발(in-house R&D)보다는 대학, 자동차 등 관련 산업계와 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외부 관련 기관과의 협업체계를 구축해왔다. BP 역시 미국, 영국, 중국의 유수 대학과 대체에너지에 대한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BP는 올 초 에너지바이오사이언스연구원을 개설하고 UC버클리, 일리노이대 및 로렌스 버클리 국립 연구소와 공동으로 바이오연료를 연구하는 데 10년 동안 50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넷째, 자사의 기존 강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셸은 천연가스를 석유로 전환할 수 있는 GTL(가스액화)기술에서 세계적인 업체이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기술(CTL), 바이오매스로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기술(BTL)까지 폭넓게 확장하고 있다. BP가 최근 미국의 풍력업체들을 인수하면서 1만5000MW 규모의 초대형 풍력기지 건설을 발표한 것도 BP가 미국에 갖고 있는 광활한 토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각변동 예상되는 자동차 산업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자동차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육상운송, 특히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이른다. 이는 최근의 고유가 추세와 맞물려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패턴(차종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앞으로 자동차 업계는 CO₂관련 각국의 규제, 유가 및 소비자 니즈에 부응하여 다양한 형태로 변신할 것이다. 대략 세 가지 시나리오 설정이 가능하다.

 

 

# 자동차 업계
CO₂ 관련 규제·유가·소비자 기호… 변수 많아
소비 주도할 로하스 중산계층 트렌드 리드해야
하이브리드車같은 친환경 신기술의 리더십 필요

 

 

첫째는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의 탄소세가 자동차 구매자에게 전가되는 '용두사미(flying the pan)'식 변화, 둘째는 각국 정부의 자동차 차종 및 배기량에 따른 규제와 더 나아가서는 차종 내 CO₂ 다배출 차량에 대한 판매량 상한이 예상되는 '시나브로(slow rethinking)'식 변화, 셋째는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국가의 주요 도시 대부분에서 CO₂ 제로 또는 CO₂ 저(低)배출 차량 통행만을 허용하는 '대변혁(revolution)' 시나리오다.

첫 번째나 두 번째 시나리오하에서는 자동차 시장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다만 두 번째 상황이 벌어지면 소비자가 연비가 높은 소형차 시장으로 몰려 차종 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 시나리오다. 자동차메이커들은 모든 주요 시장에서 정해진 CO₂ 저감 목표에 적합한 차량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탄소세와 주행세가 차량유지비를 대폭 증가시켜 레저용차량(SUV), 대형 가솔린엔진의 다목적차량(MPV) 및 대형세단 등 CO₂ 다배출 차량 매출이 급감할 것이다. 단지 고가의 대형 럭셔리 자동차 시장만이 탄소세의 무풍지대로 존재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하에서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유례없는 쇠퇴가 예상된다. 지금으로선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에너지안보와 산업화를 앞세운 미국의 힘의 논리가 5~6년 후의 자동차 업계 판도를 바꿔놓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하기 힘들다.


자동차 업계, 뭘 해야 하나?

2012년 포스트 교토 시대 개막을 앞두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선점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동차업계의 과제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중산계층인 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트렌드를 리드해야 한다. 앞으로는 로하스 중산계층이 높은 구매력을 무기로 전 세계 소비를 주도할 것이다. 맥도날드는 최근 바이오드링크 '바이오네이드' 등으로 제품군을 전환하고, 인테리어를 교체하며, 제품별 칼로리 표시 등을 통해 로하스 계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맥도날드 사례는 '친환경'이미지를 갖지 못한 기업일수록 이러한 전략이 더욱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둘째, 소형차 대세 추세에 대비하여 소형차 이익률을 확보해야 한다. 자동차메이커 이익의 대부분은 대형차 수익에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의 구매패턴이 소형차 위주로 바뀌면 자동차업계의 이익률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셋째, CO₂와 관련해 긍정적인 기업·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영국의 천연가스 제조업체인 BG그룹은 온실가스 개선관리 프로그램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실행계획을 개발, 적극적으로 프로모션 한 결과 지속가능경영의 리더로서 현재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넷째, 친환경 신기술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1~2 개 자동차업체가 특정 기술역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요타는 1970년대 초반 하이브리드차 기술개발에 착수해 관련 핵심 R&D 및 생산기술을 보유했다. 지금도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의 배터리나 전자엔진 관련 '핵심'부품업체에 지분투자를 통해 경쟁사들을 궁지에 빠뜨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CO₂이코노미에 적합한 신규사업모델을 개발·추진해야 한다. 연비가 높고 CO₂를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 개발이나 친환경제품을 이용한 튜닝, CO₂ 점검 같은 새로운 애프터서비스시장 등이 가능하다. GE사는 '에코메지네이션'(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창의를 강조하는 GE의 슬로건 Imagination at Works의 합성어) 전략의 일환으로, 항공기 엔진 업그레이드 장치를 판매해 항공기별로 연간 3만 갤런의 연료소비를 절감해 CO₂ 저감에 기여했다.


정보통신기술산업의 위기와 기회

정보통신기술산업(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이하 ICT산업)은 온실가스배출량이 다른 산업보다 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ICT산업의 제조, 설비운영, 서비스 등에 소요되는 전력소비량은 막대하며 증가 추세에 있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산업의 경우 네트워크 장비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가 연간 수천 메가와트시(MWh)로 이동통신업체 총 에너지소비량의 평균 90% 이상을 차지한다.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전력소비가 큰 이동통신사업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동통신산업의 CO₂ 배출량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ICT산업은 ICT기업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CO₂ 집약적인 산업이다.

CO₂이코노미하에서 ICT산업은 ICT산업 안팎에서 추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첫째, ICT산업 내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할 수 있다. IT시스템의 CO₂배출량 감소 및 휴대폰 재활용 등 환경 이슈를 활용할 수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업체 IDC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 하드웨어 투자 1달러당 서버 운영 및 쿨링에 사용되는 금액이 50센트이며, 4년 이후에는 42%가 증가하여 71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 IBM이 전 세계에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는 74만㎡ 이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 상업용 인프라이다. 최근 IBM은 연간 1조원 규모의 '빅 그린'(Big Green)이란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850명 이상의 에너지효율전문가가 투입되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소비량 감축과 에너지효율 수준 제고를 통해 3년 내에 전력 소비량 및 CO₂배출량을 늘리지 않고, 데이터센터의 컴퓨터 사용 용량을 배가(倍加)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둘째, ICT산업은 ICT산업의 고객군이 되는 헬스케어, 자동차, 교육, 공공서비스, 건설 및 농업 등 타 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CO₂ 저감 이슈를 해소할 수 있는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무선 통신·인터넷·미디어 및 솔루션 사업자인 텔레콤이탈리아(Telecom Italia)그룹이 이탈리아 국가 의료시스템의 e-헬스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보급하는 사업에 진출했다. 텔레콤이탈리아는 헬스케어서비스에 있어 인구 노령화로 인한 수요증가와 GDP 8%에 이르는 비용 부담, 특히 급성질병보다 만성질병에 대한 장기적·주기적 치료 위주로 수요가 전환되는 데서 원격지 셀프케어 등을 통한 사업성을 발견했다. 텔레콤이탈리아는 전국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인프라 등 기존 핵심자산을 활용해 병원 및 지역 내·지역 간 3계층을 대상으로 e-헬스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병원 및 의료시스템 접근성의 획기적인 개선 및 자가용·대중교통 이용량을 줄여 헬스케어 관련 CO₂ 배출량 감소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