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훔쳐보기]의 즐거움

‘살 수 없는’ 미술은 어떻게 살까?

세칸 2008. 1. 6. 21:07

미술과 돈 20

‘살 수 없는’ 미술은 어떻게 살까?

 

‘미술과 돈’을 다섯 달 동안 연재하며 줄곧 미술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사실 현대미술 작품 중엔 매매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것도 많다. 대지미술(산·들·바다 등 자연을 소재로 만들고 자연에 설치하는 미술)을 하는 세계적인 부부 작가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는 ‘살 수 없는 미술’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가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한 '더 게이츠' 작품.

 

이들의 가장 최근 화제작은 작년 2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펼쳤던 ‘더 게이츠(The Gates)’다. 사람 대여섯 명이 동시에 드나들 만한 철골구조에 주황색 천을 끼운 ‘문’ 7500개를 맨해튼 중심에 있는 센트럴파크의 남과 북으로 36.8m에 걸쳐 16일 동안 세워뒀던 설치작품이다. 전세계 미술계에 큰 화제였다. 바람결에 따라 주황색 천이 나부낄 때,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했다. 밤에는 밤대로, 낮에는 낮대로 문의 빛깔은 조금씩 달라 보였다. 눈이 온 다음날엔 새하얗게 덮인 공원 위에 선명한 주황색이 도드라져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작가들은 대중에게 즐겁고 특이한 경험을 주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딱 16일 동안 뉴욕시민이나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르고 황홀한 경험을 주고, 이후 영원히 사라져 기억에만 남는 작품. 관객들이 아름다운 센트럴파크를 거닐며 주황색 천이 나부끼는 수백 개의 문을 통과하는 ‘경험’도 작품이고, 훗날 그 때를 추억하는 ‘기억’도 작품이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는 확 화제가 되었다가 곧 사라지고 기억에만 남는 ‘순간성’에서 예술적인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떻게 사고 팔 수 있을까? 센트럴파크에 들어가는 데 입장료를 낸 것도 아니고, 문 7500개는 전시기간이 끝나자 곧바로 다 철거됐다. 단 한 개도 팔지 않았다. 작가들은 ‘더 게이츠’를 세우는 데 2100만달러(약 210억원)가 들었다고 밝혔다. 철 5000t, 다 이어서 펼치면 60마일이나 되는 비닐 튜브, 나일론 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봉사, 작품 기획을 시작하고 26년 동안 뉴욕시와 협상하며 준비했던 작가의 인건비 등을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어떤 기부금이나 공공기금도 받지 않았고 작품을 팔지도 않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 미술작품은 독점소유를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더 게이츠'

 

대지미술이라는 게 다 그렇다.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가 이전에 했던 작품 중엔 플로리다의 작은 섬 주변을 분홍색 천으로 온통 둘러싼 것도 있었고, 캘리포니아와 일본에서 각각 긴 산맥을 따라 천막을 두른 것도 있었다. 파리 퐁뇌프 다리를 천과 밧줄로 꽁꽁 옭아맨 것도 있었다. 그 어느 것도 사고 팔 수 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게 사람들의 당연한 마음이다. 대지미술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럴 때 관객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면 ‘더 게이츠’의 주황색 천은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튜브 속에 돌돌 말아 가려져 있었는데, 한 남자아이가 작품이 개막 후 그 튜브 중 하나를 공원에서 주워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이베이(eBay)’에 올렸더니, 경쟁이 붙어 그 비닐 하나에 1200달러를 내겠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또 작품에 사용된 천 쪼가리, 작품 사진이 1면을 다 덮은 타블로이드판 신문 등 ‘더 게이츠’와 관련된 물건 170여개가 이 경매사이트에 올랐다.

살 수 없는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지만 이렇게 작품에 따라붙는 각종 현상으로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더 게이츠’는 팔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당시 ‘더 게이츠’ 덕분에 뉴욕시는 엄청 잘 팔렸다. 이 작품을 전시했던 2005년 2월은 다른 해의 2월에 비해 뉴욕 관광객이 20만명이나 더 많았다. 덕분에 뉴욕시는 그때 2억5400만달러(약 2540억원)에 달하는 수입을 더 올렸다고 한다. 센트럴파크 주변 호텔들은 원래 2월이면 불황인데, ‘더 게이츠’ 덕분에 그땐 예약이 밀려들었다.

작가 자신들도 비록 대지미술을 팔 수는 없지만, 대신 그 대지미술을 만들 때 그렸던 드로잉과 판화는 판다. ‘더 게이츠’가 철거된 직후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유럽 파인아트페어에서는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드로잉 가격이 부쩍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의 드로잉이 거래가 된다. 이번 달 K옥션에서 한 경매에서 이들 부부가 1985년 파리 퐁뇌프 다리를 감싸는 작업을 할 때 그렸던 드로잉이 4800만원에 팔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1968년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예술 동반자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함께 찍은 사진.

 

살 수 없는 미술이라 하더라도 그 미술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을 사서 소유하는 셈이다. 퍼포먼스 아트의 경우도 그렇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권위에 도전하고 기존관념을 깨는 퍼포먼스로 세계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60년대에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함께 섹스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당시 샬럿 무어맨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 첼로를 연주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백남준과 샬럿 무어맨은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함께 해 현대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고,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면 이들의 퍼포먼스는 어떻게 구입할 수 있을까? 물론 구입할 수 없다. 그 대신 관객들은 그 퍼포먼스를 기억할 수 있는 다른 의미 있는 것에 돈을 쓴다. 이를테면 백남준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했던 퍼포먼스의 기록사진 35장을 묶은 포트폴리오가 지난 3월 K옥션 경매에 나와 1억8000만원에 팔렸다. 백남준이 1968년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샬럿 무어맨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여기 포함돼 있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을 전문으로 찍었던 사진작가 피터 무어의 작품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진을 살 때에는 피터 무어의 작품을 산다기보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사는 것이다.

살 수 없는 미술작품.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탐나는 작품이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기억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사서 그 작품 가치의 일부가 되고 싶어한다.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ky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