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땅을 살리는 사기막골 뚝심이

세칸 2008. 1. 2. 22:20

땅을 살리는 사기막골 뚝심이

 

 

  

산촌은 통화권 이탈 지역

차 씨는 원래 어린이 도서 전문으로 유명한‘보리출판사’를 운영하던 출판인 출신. 1997년 ‘전국귀농운동본부’가 개설한 귀농학교 2기 과정을 수료했고 그 이듬해인 1998년 11월에는 아내와 딸을 서울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함께 이곳으로 내려왔다.

“아무래도 어린이 도서를 만들다 보니, 자연이나 시골 생활에 관한 좋은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특히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동경을 품게 됐죠.”

그러한 동경을 현실로 바꾸기로 굳게 결심하고 훌쩍 찾아온 곳이 바로 이곳 사기막리. 자신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주민이라고 해봤자 2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산골 마을이다. 어찌나 깊은 두메구석 마을인지, 독도에서도 터진다는 휴대전화가 이곳에서는‘통화권 이탈’일 정도. 당연히 초고속 인터넷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아직까지 전화선과 모뎀을 이용하고 있단다.

 

산촌에 집짓기

농촌에 정착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 중 하나로 차 씨는 특히 집 문제를 꼽았다. “연고 없이 농촌에 정착하려고 할 때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집 문제입니다. 당장 살 집이 마땅치 않으니까 집을 빌리게 되는데, 거기서 그냥 살자니 불편하고, 그렇다고 고치면 집주인이 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차 씨는 정착에 성공한 후 농지와 함께 지금의 집터를 사서 손수 집을 지었다. “책도 보고 이리저리 고민해서 지었는데, 다시 지으면 지금보다 더 잘 지을 수 있을 거예요.” 서투른 솜씨지만 손수 흙벽돌을 찍어가며 만든 집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지을 거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 한 번 지으면 수명이 10년은 줄어든다던데,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다시는 안 지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새로 짓는 대신, 사재를 털어 마을회관 옆에‘귀농자의 집’을 신축했다. 자신이 집 때문에 겪은 어려움을 나중에 온 이들이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빌려주고 있는 이 집은 귀농인들의 정착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있다고 한다.

 

사기막골 뚝심이들

한편 차씨는 인근에서는‘유기농법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뜻이 맞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사기막골 뚝심이들’이란 작목반을 결성하여, 비닐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요즘 거의 모든 농가는 비닐로 땅을 덮어 작물을 재배하는 비닐 멀칭(mulching) 방식을 사용하는데,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폐비닐은 농촌 환경오염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뚝심이들이 연구 중인 무비닐 자연재배는 땅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북돋운 뒤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재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경우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폐비닐로 인한 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작물들의 맛이 좋아지고, 논밭의 지력(地力)도 조금씩 회복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우선 수확이 비닐로 덮었을 때보다 크게 줄어든다. 특히 숨 한 번 쉬고 나면 또 자라나는 잡초가 가장 골칫거리. 이러니 농사가 힘들어진다. 사람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것이아니다.

그러니 그동안 차 씨의 농사는 자급자족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고, 기껏해야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판매할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욕심을 내어 보렵니다. 어느 정도 기술과 요령도 생겼으니 농사 규모를 키우려고 해요.”

 

농사꾼은 환경과 생태의 파수꾼

그런데‘무비닐 자연재배’가 뚝심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아니다. 아직은 실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투입 농법’, 즉 땅의 힘만으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농법을 쓰기에는 땅의 힘이 너무나 허약해져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화학비료와 농약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발효된 유기퇴비를 사용하면서 지력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농법은 친환경농법 중에서도 보다 엄격한 갈래이다.

“농업은 환경과 생태의 산업입니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귀농을 했습니다. 갈 길은 아직도 멀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에요.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아쉬운 건 함께 할 사람들이 더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래서 차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기를 바라고 있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영농정착에도 성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날이 기력을 잃어가는 농촌도 되살릴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주장한다.

“귀농자가 농촌에 정착해서 현지 농민과 힘을 합하게 되면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요." 무슨 일을 꾸미건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농촌의 현실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 차 씨가 제출한 정책 공모의 주제도‘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책’이었다.

 

귀농은 땅과 농민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차 씨는 7년 동안 자신이 현장에서 몸으로 느낀 어려움을 바탕으로 하여, 귀농상담원 제도라든지, 귀농실습지로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안, 빈집 활용, 다랭이논 직불제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공모에 당선되어 받은 상금도 대부분 귀농자들의 정착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차 씨 자신이 이런 생각으로 성실하게 활동하였기에, 이내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올해 마흔아홉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도 있고 하여 마을 이장 직을 4년째 맡고 있다.

“몸만 시골에 와 있다고 귀농이 아닙니다. 최근 근처에 도시에서 온 몇 집이 생겼는데, 마당에 인조 잔디 깔고 골프 퍼팅 연습하고 있거든요. 이런 분들은 결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요. 이런 경우 귀농이라 부를 수 없죠. 귀농은 그 동안 이 땅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차 씨는 귀농에 앞서‘자기 정리’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정말 왜 귀농을 하려고 하는가?’이 질문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답해야 해요.” 그 자신은 그 질문에‘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면서 자연을 지키며 사는 것이 현재 그의 삶이다.

 

 

천상 농사꾼

농한기를 맞아 그는 그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러 사회단체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 어쩌면 그런 그의 모습에서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를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역의 환경 문제로 지방자치단체와 갈등이 벌어지면 앞장서서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는 - 사실 좀 더 거창한 향후 계획 같은 것을 기대한 질문이었는데 - 그 대답이 뜻밖에도 무척이나 소박했다. “콩 농사를 잘 지어 보고 싶어요. 땅도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게 저하고는 안 맞는지 콩 농사를 계속 실패했어요.”


그는 이미 확실한 농사꾼이었던 것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maf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