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의 힘, ‘검은 재앙’ 걷힌다
태안=조중식 기자 jscho@chosun.com 우정식 기자 jswoo@chosun.com
충남 태안 앞바다와 백사장을 뒤덮었던 ‘검은 재앙’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빠르게 걷히고 있다. 시커먼 기름이 발목까지 차올랐던 만리포와 천리포, 파도리해수욕장의 백사장은 사고 열흘 만에 금빛 속살을 완연히 회복했다. 양식장이 밀집한 모항·의항·신두리 앞바다도 푸른 빛을 되찾고 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여덟 살 코흘리개에서부터 은퇴한 70대 공무원까지, 전국 각지에서 태안 어민들의 절망을 걷어내기 위해 달려온 10만 자원봉사자들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16일 전국 각지에서 1만87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 해안으로 몰린 것을 비롯, 사고 열흘 만에 10만4800여 명이 자원봉사에 동참했다고 해경이 밝혔다. 이들이 지금까지 걷어낸 폐유와 흡착포 등 흡착폐기물은 1만4488t. 해경 방제대책본부는 “태안 일대 해안으로 밀려왔던 기름은 70%가량을 제거했다”며 “앞으로는 바위 등 암반 지대 해안에 들러붙은 기름을 제거하는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는 긴급 자금으로 300억원의 예산을 편성, 내년 1월 말까지 피해 주민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자원봉사 일손, 주말보다는 평일에 더 아쉬워
장화·장갑·헌옷 등 지참하면 좋아, 일당 5만원으로 계산 소득공제 가능
물속 떠도는 ‘타르 덩어리’ 2차 오염 우려
휘발성 물질 날아간 찌꺼기 군산 앞바다까지 밀려와
타르 덩어리는 유해성이 원유보다는 약하지만,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만, 타르 덩어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2차 오염을 일으킬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수면에 떠 있는 타르 덩어리 외에 물속에서도 타르 덩어리가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는 중”이라며 “물속 온도가 높아지게 되면 이 타르 덩어리가 수면 위로 올라와 해안이나 갯벌을 다시 오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해양연구원 이문진 박사는 “수심이 얕은 서해에선 바닷물의 아래 위가 쉽게 섞이기 때문에, 물 위에서 보이지 않는 타르 덩어리는 대부분 이미 바다 밑 토양에 가라앉은 상태”라고 말했다. 타르 덩어리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라 2차 오염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물속에 가라앉은 타르 덩어리가 해양 밑바닥에 달라붙으면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위협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분해작용을 거치면서 수많은 독성물질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충남대 이계호 교수(화학과)는 “물속 바닥이나 갯벌 등에 들어간 타르 덩어리가 분해되려면 30년 혹은 10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부탄,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같은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이 서서히 뿜어져 나와 연쇄적으로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해변이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자원봉사 열기
일요일에만 전국에서 1만8000여명 찾아
만리포 해수욕장 하얀 모래 다시 드러나
외국인 방제전문가 “복구 속도 놀랍다”
김우성 기자(태안) raharu@chosun.com 정혜진 기자 hjin@chosun.com
여덟 살 전민규(충남 서산 서령초등학교 1학년)군은 자기 손보다 3배나 큰 고무장갑을 끼고 바위에 붙은 기름 알갱이를 긁었다. 5급 뇌성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유호성(19·경기기계공고 3학년)군은 바위 틈에 고인 기름을 퍼서 양동이에 담았다. 대학생 장혜진(24·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씨는 티베트 여행을 포기하고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달려왔다.
충남 태안 주민들의 ‘검은 절망’을 걷어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왔다. 고사리 손을 잡고 온 30~40대 직장인들도 있었고,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도 있었다. 은퇴한 70대 노부부는 장롱 속 헌옷을 가져와 기름 묻은 해안가 돌멩이를 닦았다.
일요일인 16일 태안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1만8000여 명. 사고 이후 열흘 동안 총 10만4800여 명(연인원 기준)의 자원봉사자가 ‘검은 재앙’에 맞섰다. 이들의 힘이 온통 시커멓던 백사장을 다시 금빛이 돌게 만들었고, 갯벌도 조금씩 제 색깔을 되찾게 했다. 이날 자원봉사에 참여한 미국인 영어강사 엘렌 허버트(여·28·경기도 산본)씨는 “IMF외환위기나 월드컵 응원 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큰 재난을 당했을 때 단합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방제전문가 루이스 램코프 바르셀로나국립대 환경공학연구소 소장은 “이처럼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빠르게 복구한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원유 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아빠와 함께 서울에서 자원봉사온 7살짜리 여자아이가 해안가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고 있다. /원세일 기자 niet@chosun.com
뜨거운 자원봉사 열기
16일 태안 해안가에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가족 단위 자원봉사자들이 특히 많았다. 치과의사 전종배(37·충남 서산)씨는 부인 김미현(38)씨와 아들 민규(8)군, 딸 유내(6)양과 함께 신두리 갯벌에서 작업을 했다. 전씨는 “지난 9일 시커먼 바다를 본 아들이 ‘빨리 바다를 치료해주러 가자’며 졸라서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LG전자 과장인 안병렬(41·서울 영등포)씨도 아들 광휘(11·초등학교 4학년)군과 함께 파도리 해안을 찾았다. 광휘군은 부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과 내년 생일선물 받지 않을 테니 그 돈으로 방제장비 사서 태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정년퇴직한 교사인 이병구(70·경기도 고양시)씨와 김추숙(67)씨 부부는 만리포 해수욕장에 남은 기름 찌꺼기를 긁어내는 일을 도왔다.
소원면 모항 해수욕장에선 탈북자 30여 명이 흡착포로 백사장 끝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생과 기말시험을 마친 서울대·한양대 대학생들, 다진산업(350명)·한화그룹(140명) 등 기업체에서 온 봉사자들도 많았다.
원유 유출 사고로 백사장 전체가 기름으로 새까맣게 뒤덮인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의 9일 모습(왼쪽). 사고 발생 열흘이 지난 16일, 같은 백사장은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기름이 거의 다 제거됐고 파도에 밀려오는 기름을 흡수하기 위해 설치한 흡착포가 드문드문 흰 선처럼 보인다. /전재홍 기자 jhjun@chosun.com
자원봉사자의 힘
10만 자원봉사자의 힘은 태안 앞바다를 빠르게 복구시키고 있다. 태안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인 만리포 해수욕장은 백사장 양쪽 바위가 있는 곳에만 아직 검은 기름이 두껍게 쌓여 있을 뿐, 폭이 250m가 넘는 백사장은 거의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이날 방제대책본부는 “가로림만 입구의 만대에서 남쪽 파도리까지 약 40㎞ 구간의 해안으로 밀려들었던 기름은 70% 정도 제거됐다”고 밝혔다. 해경 김영환 배출물관리과장은 “현재까지 해상과 해안에서 회수된 순수한 원유는 3000㎘ 정도로 추정한다”며 “이는 씨프린스호 사고 유출 당시 5개월 동안 회수한 양보다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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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조선 사고 10일째인 16일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헬기에 탑승, 복구현장을 가보았다. 해태양식장과 굴 양식장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채 방치되어 있고 넓은 면적이 오염된 바위나 해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기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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