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헤이리 새로움의 시작

세칸 2007. 12. 18. 12:31
헤이리 새로움의 시작

문화지상주의자의 낙원

 

갑자기 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몰려오면서 기대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가 했다.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먹은 지 오래다. 자유로를 들어서면서 먹구름을 본 순간, 어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라고 하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길사 사장 김언호씨가 라디오 프로에 나와 헤이리 마을을 소개한 것이 떠올라 발길을 재촉했던 날이었다. 외국의 대문호들도 집필을 위해 들릴 수 있는 곳이라고 그가 한 말이 기억났다.
헤이리에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이 나를 분명 부르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나선 길이었다. 

 

       헤이리 북하우스 전경

370여명의 문인, 작가, 미술가, 음악가 등으로 구성된 예술인이 이 곳 헤이리에 문화예술마을을 세우기로 한지 7년이 지났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야산 15만평에 들어선 이 예술마을은 심혈을 기울인 독특한 건축양식의 카페와 갤러리, 서점, 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아직 미완성인 이곳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실험정신 그리고 인조미와 자연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도록 조성돼 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띠는 북하우스는 전시장과 서점 그리고 옥상카페와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처음 이 건물을 본 순간 이곳에서도 서점이 될까? 라는 의구심으로 건물에 들어섰다.

 

통상의 개념으로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점을 한번 둘러보는 순간 마땅히 이곳에 있어야할 서점으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열화당과 한길사의 책이 주종으로 구성된 이 서점은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위한 서점으로 한국서적문화의 역사를 펼쳐놓은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상업적 가치가 적지만 꼭 출판해야 할 사연이 있는 책들이 새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아 들리는 이들의 마음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 자체만이라도 서점이 거기에 있는 이유로 충분했다. 입구의 고은씨의 시처럼 외롭지 않은 두 분의 뜻이 방문자의 가슴속에 남아 있으리라.... 

북하우스 외부와 내부 건축의 미는 콘크리트와 목재의 부조화와 조화가 시시각각으로 충돌하는 데 있다. 공간의 활용이나 구성 또한 설계자의 고뇌가 충분히 담겨 있지만

 

 

건축소재 그 자체가 주는 느낌이 오히려 강렬하다. 페인팅하지 않은 은회색의 노출벽면과 적검색의 멀바우 수종의 천연 목재마루는 인공미와 천연미의 부조화와 조화가 서로 다투면서도 어우러지는 느낌이 매우 낮 설지만 특별한 자극을 준다.

또 하나 지상 3층을 이어주는 게 계단이 아니라 경사복도로 돼 있고 경사벽에 책을 진열하여 책을 살피는 이의 시선을 새롭게 하고 있다. 새로움이다. 충격이다. 즐거움이다. 이 서점은 옥상에 카페가 있는데 책을 들고 커피 한 잔과 비스켓이나 케익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야외 옥상 노천에는 목재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된 파라솔이 멋들어 진다.

 

       북하우스 지하 전시장 초대전시작 이종구화백

 

도심에서는 전혀 맛 볼 수 없는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이곳만의 풍경이다. 마음이 살찌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니 황토색 짙은 화가 이종구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상업주의를 거부하고 민중의 삶, 농민의 삶을 마대나 부대자루에 그려 잘 알려진 화가가 이 서점의 갤러리 오픈 작품이다.

서점 주인의 사상이 작가의 선정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밖으로 나오니 좁은 폭의 목재 각재로 외벽 사이딩 치장을 했다. 회색 콘크리트의 삭막함을 덮어주는 치장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대게 폭 넓은 사이딩이 흔하지만 이 건물에는 촘촘하게 느껴지는 빗살과도 같은 사이딩을 적용했다. 북하우스는 신선함, 여유, 품격이 느껴지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한 건축이다.

 

       아트팩토리 전경

 

북하우스에서 언덕에 위치한 곳이 ‘한향림 갤러리’다. 도예가 한향림씨가 10여 년간 수집한 도자기를 건물내부와 외부에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1500여점의 도자기가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이 갤러리 아래에 위치한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은 방송인 황인용씨가 운영해 벌써 소문이 자자한 건물로 LP 1만 여장에서 엄선한 곡들을 들으면서 와인 한잔을 하는 기분은 색다른 경험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세계민속악기박물관’이 보인다.

이영진씨가 18년 동안 수집한 70여국 450여 악기가 전시된 공간이다. 이 건축물은 코르텐 강판이 녹이 슬면서 검붉은 색을 띠는데 고풍스럽고 도회적인 느낌을 한꺼번에 준다. 바로 앞쪽 높은 곳에 ‘포슬린하우스’가 눈에 띠는데 이 건축물은 컨테이너 상자를 목재로 싸 발라 올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가 김준성씨가 설계 건축하고 황경희씨가 운영하는 갤러리 겸 작업실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 널찍한 데크에 세워진 유리벽 건물이 ‘아트팩토리’다.  도예가 김승영씨의 작품과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와 함께 판매한다. 커피를 마시기위한 몇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여유를 마음껏 즐기기 충분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화장실로 들어서면 청, 적, 황색의 원색미를 즐길 수 있다.

 

       포슬린 하우스 전경

 

마을 가운데에는 넓지 않는 늪지가 있는데 늪지에 자생하는 수생식물의 다채로움과 늪지를 대부분 채우는 줄대끼리 부비끼는 소리가 정겹다. 늪지 사이로 세워진 목교에는 조각가 정현의 바람에 움직이는 파이프오르간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초가을 빗소리와 어우러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더욱 청아하게 느껴진다.

헤이리 마을은 새로움의 도전이자 이 시대의 살아있는 정신이다. 인간이 건축하고 자연이 물려준 풀과 흙을 그대로  보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십년 아니 50년이 지나면 더욱 더 빛을 토해낼 것이다. 세계속의 명소로 자리할 그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믓해 진다. 문화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녹아있는 헤이리가 영원하길 바란다.

윤형운 기자 yoon@wood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