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로 읽는 세상사
- 농촌의 아기 울음소리, 뉴스가 되는 세상
일러스트 박상철
‘우리들은 저녁밥을 일찍 먹고 너나없이 모여들어 이삿짐을 꾸렸다. 거울 깨진 농짝 하나, 테 맨 장독 몇 개, 헌옷 보따리, 때 낀 카시미롱 이불, 그 흔한 흑백 텔레비전 하나 없는 이런 촌 세간살이들이 서울에 가서 산다는 게 우습고 기맥히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말없이 이삿짐을 꾸려 회관마당 삼륜차에 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들이 대대로 힘써 살았던 땅, 논과 밭과 온갖 과일 나무들, 뒷산 몇백 년 묵은 귀목나무, 강 건너 평밭, 꽃밭등, 절골, 뱃마당에 두루바위, 벼락바위, 눈 주면 언제나 눈이 익어 거기 정답게 있던, 우리들이 자라며 나무하고 고기 잡고 놀아주었던 몸에 익은 정든 이름들이 구로동 성남 신길동 명동, 이런 낯선 서울 이름들과 엇갈리며 우리 머릿속을 쓸쓸하게 지나갔다. 마당의 화톳불이 사그라져가고 새마을 스레트집은 횅뎅그레 비워졌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듬성듬성 줄어들어 있었고 우리들은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이제 떠날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나고 회관 마당엔 어찌하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과 몇몇 아이들만 남아 흐린 불빛 속에 어둡고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 김용택 ‘섬진강 16 - 이사’
마을회관 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서울로 떠나는 가족을 배웅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거나 말을 하려 들지 않는다. 떠나는 이도 남는 이도 모두가 지친 얼굴이다. 김용택이 ‘섬진강’ 연작시를 쓴 그 1980년대 초반 농촌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다. 신경숙은 그보다 앞선 1970년대 후반 고향을 떠나 서울역에 내렸다.
‘열여섯의 나,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신경숙의 자전적 성장소설 ‘외딴 방’에서 도시에 첫발을 딛는 ‘나’는 서울역 앞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살핀다. 그 시절 얼마나 숱한 완행열차들이 서울로 동경과 상실을 함께 실어날랐나. 객차 승강대에 매달려 온 젊은 꿈들은 블랙홀 같은 잿빛 거대 도시에 빨려들 듯 사라지곤 했다.
‘열여섯의 나, 모내기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기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그날 새벽에 봤던 대우빌딩을 잊지 못한다. 거대한 짐승으로 보이는 저만큼의 대우빌딩이 성큼성큼 걸어와 엄마와 외사촌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신경숙의 자전적 성장소설 ‘외딴 방’에서 도시에 첫발을 딛는 ‘나’는 서울역 앞을 두려움에 찬 눈길로 살핀다. 그 시절 얼마나 숱한 완행열차들이 서울로 동경과 상실을 함께 실어날랐나. 객차 승강대에 매달려 온 젊은 꿈들은 블랙홀 같은 잿빛 거대 도시에 빨려들 듯 사라지곤 했다.
기차는 가고 똥개만 남아 운다
기차는 가고 식은 팥죽만 남아 식는다
기차는 가고 시커멓게 고개를 넘는다
깜부기, 깜부기의 대갈통만 남아 벗겨진다
기차는 가는데 빈 지게꾼만 어슬렁거리고
기차는 가는데 잘 배운 놈들은 떠나가는데
못 배운 누이들만 남아 샘물을 긷는데
기차는 가고 아아 기차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생솔가지 저녁 연기만 허물어진 굴뚝을 뚫고 오르고
술에 취한 홀애비만 육이오의 과부를 어루만지고
농약을 마시고 죽은 머슴이 홀로 죽는다
인정 많은형님들만 곰보딱지처럼 남아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무덤을 지키며
거머리 우글거리는 논바닥에 꼿꼿이 서 있다
- 김준태 ‘호남선’
탈농(脫農), 이농(離農)의 행렬이 40년 넘게 이어진 끝에 지금 농촌엔 누군 떠나고 누군 남고 할 게 없어졌다. 더 떠날 사람이 말라버렸다. 농사 짓는 사람의 절반이 65세 넘은 노인들이다. 정월 대보름날 위아랫동네 사람들이 전쟁하듯 얽혀 놀던 쥐불놀이는 추억거리가 된 지 오래다. 상여 메는 품앗이 할 장정이 드물어 상여가 사라진 마을이 많다.
시인 곽재구가 섬진강변 마을의 어느 집 사랑채에 잠시 머물자니 노인들이 “젊은이가 마을에 들어왔다”며 퍽이나 좋아했다. 시인은 그때 이미 쉰이 다 돼가던 나이에 젊은이 소리 듣는 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고 했다. 밤이면 노인네들은 그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가 이튿날 그를 보면 “사랑채에 불빛이 참 곱데”라며 손을 잡았다. ‘사람이, 젊은 사람이 그리운 탓이었다’며 그는 가슴 시려했다. 그러니 어쩌다 소주 잔이라도 대접받으면 노인들에겐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 김준태 ‘호남선’
탈농(脫農), 이농(離農)의 행렬이 40년 넘게 이어진 끝에 지금 농촌엔 누군 떠나고 누군 남고 할 게 없어졌다. 더 떠날 사람이 말라버렸다. 농사 짓는 사람의 절반이 65세 넘은 노인들이다. 정월 대보름날 위아랫동네 사람들이 전쟁하듯 얽혀 놀던 쥐불놀이는 추억거리가 된 지 오래다. 상여 메는 품앗이 할 장정이 드물어 상여가 사라진 마을이 많다.
시인 곽재구가 섬진강변 마을의 어느 집 사랑채에 잠시 머물자니 노인들이 “젊은이가 마을에 들어왔다”며 퍽이나 좋아했다. 시인은 그때 이미 쉰이 다 돼가던 나이에 젊은이 소리 듣는 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고 했다. 밤이면 노인네들은 그의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가 이튿날 그를 보면 “사랑채에 불빛이 참 곱데”라며 손을 잡았다. ‘사람이, 젊은 사람이 그리운 탓이었다’며 그는 가슴 시려했다. 그러니 어쩌다 소주 잔이라도 대접받으면 노인들에겐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걸 나눠 자시고
모두들 불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 받았네 그려!
- 고재종 ‘파안’
노인들만 남은 시골, 그나마 홀로 남은 노인이 많다. 누군가 생을 끝내고 모처럼 살붙이들 모여들어 마당에 불 밝히는 상(喪)을 치르고 나면 그 집은 그날로 폐가가 되고 만다.
- 고재종 ‘파안’
노인들만 남은 시골, 그나마 홀로 남은 노인이 많다. 누군가 생을 끝내고 모처럼 살붙이들 모여들어 마당에 불 밝히는 상(喪)을 치르고 나면 그 집은 그날로 폐가가 되고 만다.
하늘이 두 뼘쯤 되는 산골짜기 집 마당에
백 촉짜리 백열등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일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불빛입니다
- 정양주 ‘환하면 끝입니다’
남아선호로 성비(性比)가 무너지고 농촌에 시집 오기 꺼리는 ‘남촌여도(男村女都)’까지 심화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노총각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농촌총각 총단결로 색시감 찾아오자’ ‘마음놓고 장가가는 조국에 살고 싶다’. 1989년 ‘농촌총각 결혼대책위’가 내건 구호다. 대책위는 구로공단 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를 돌며 농촌 총각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 장가가고 싶다’고 써 붙인 ‘먹거리 한마당’도 열어 여성 근로자들을 불렀다. “농촌 총각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여성 여러분에게 진실한 행복을 주겠다”고 하던 강기갑 대책위원장은 지금 민노당 의원이다.
- 정양주 ‘환하면 끝입니다’
남아선호로 성비(性比)가 무너지고 농촌에 시집 오기 꺼리는 ‘남촌여도(男村女都)’까지 심화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 노총각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농촌총각 총단결로 색시감 찾아오자’ ‘마음놓고 장가가는 조국에 살고 싶다’. 1989년 ‘농촌총각 결혼대책위’가 내건 구호다. 대책위는 구로공단 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를 돌며 농촌 총각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 장가가고 싶다’고 써 붙인 ‘먹거리 한마당’도 열어 여성 근로자들을 불렀다. “농촌 총각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여성 여러분에게 진실한 행복을 주겠다”고 하던 강기갑 대책위원장은 지금 민노당 의원이다.
이 지상의 생물 중에 도대체
암컷 못 만나 자살한 수컷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
적어도 사람이
사람 중에도 제일가는 사람인 농부가
농부 중에도 햇덩이 같은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가 고민이요
고민하다 더러 자살도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나
- 정현종 ‘이 나라의 처녀들아’
- 정현종 ‘이 나라의 처녀들아’
농촌은 새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땅이 돼버렸다. 두어 해 전 연간 출생신고가 10건도 안 되는 읍·면·동이 290곳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었다. 아예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도 8곳이었다. 그래서 어느 마을에 모처럼 아기가 태어나면 온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고 그 소식이 신문 사회면에 실리는 세상이 됐다.
얼마 전 경남 거창군 삼포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21년 만의 고고성(呱呱聲)이다. 40대 농군에게 건강한 사내 아기를 안긴 스물 두 살의 아내는 베트남에서 왔다. 장·노년층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은 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모두 자기가 손주를 본 것처럼 즐거워했다 한다. 새 생명이 발하는 희망과 생기를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반겼을지 안 봐도 선하다.
지금 농촌에 새 생명을 안겨 주는 이들이 외국인 며느리다. 어린이들이 거의 혼혈 ‘코시안(코리안+아시안)’인 마을도 늘고 있다. 농촌은 옛 문화를 물려받았다가 후대로 물려주는 전통의 저수지 같은 곳이다. 지금 그 농촌에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애당초 농촌이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화다. 삼포마을 아기 탄생은 경사가 틀림없지만 한 구석 연민 어린 경사다.
오태진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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