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런저런 이야기들

이 영화, 여성과 중년을 움직이다

세칸 2007. 12. 16. 17:30
[movie] '색,계' '식객' 여성과 중년을 움직이다  
 
색,계 -'예술과 외설 경계… 흥행 조건인 여성·중년층 동원'
식객 -'요리·건강으로 눈길 모으고 일본 넣어 감정 자극'
바르게 살자 -'관객 웃음 훔치며 비수기 극장가에 활력'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흔히들 얘기하는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여성 관객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극장문화의 경우 남자에게는 작품 선택권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데이트를 하는 남녀의 경우 대부분 여성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이는 국내에서 호러, 미스터리보다 멜로, 코미디 장르가 강세를 띠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영화가 단순하게 1~2주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4주 이상 ‘롱런’하려면 중년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1년에 극장을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연령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크게 ‘터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박흥행 요인의 또 한 가지 요소로는 극장가에서 얘기하는 ‘드롭률(티켓 예매비율이나 판매비율이 상영일수가 길어질수록 점차 낮아지는 비율)’이 작아야 한다는 것이다.

 

'색,계'  

 
그밖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키는 영화가 요즘 세간의 화제다. 바로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다. 이 영화는 올 하반기에 말 그대로 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됐다. 한마디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이 영화의 수입사인 마스엔터테인먼트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색, 계’는 11월 25일 현재 전국 220여개 스크린에서 106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봉 18일 만의 일이다. 100만은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숫자. 그동안 한국 영화계가 툭하면 1000만 관객 운운해온 탓에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지만 이안 감독 같은 비상업 작가의 영화가 100만을 넘긴 건 지난 여름 화제를 모은 ‘화려한 휴가’나 ‘디워’의 700만~800만 관객과 맞먹는 수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상영 시간이 2시간37분으로 1일 상영 횟수가 다른 영화에 비해 1~2회나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 영화의 수입가는 50만~100만달러(약 4억7500만원~9억5000만원) 선. 100만 관객이면 극장 매출만 70억원이다. 외화의 경우 극장과 수입사의 수익배분 비율이 5 대 5이니까 신생 영화사로 이 영화가 첫 수입작품인 마스엔터테인먼트는 단박에 35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 됐다. ‘영화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색, 계’는 대박 영화의 성공요인 세 가지를 전형적으로 따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셋째 주 상영에 들어간 이 영화는 평일 관객수가 둘째 주보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드롭률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식객'  

 
여성관객들이 이 영화에 대해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것도 특징이다. 예매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이 62.6%를 차지했는데 이는 수치상으로 남자 관객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셈이 된다. 같이 흥행궤도를 달리고 있는 ‘식객’의 경우 티켓의 55%를 여성이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스오피스 순위상으로는 ‘식객’이 우위에 있지만 오히려 ‘색, 계’가 더 큰 흥행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30~40대가 ‘색, 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 영화의 관객의 49.5%가 30~4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사회이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영화일수록,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크게 성공하는 법이라는 것이 충무로 영화계의 오랜 믿음과 같은 것이다.그렇다면 여기서 ‘왜?’라는 물음이 생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색, 계’로 몰리게 하는 것일까.

외형상으로는 은밀하게 퍼져있는 영화 속 ‘리얼 섹스(real sex)’ 혹은 ‘언시뮬레이티드 섹스(unsimulated sex)’에 대한 입소문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연배우인 량차오웨이와 탕웨이는 영화 속에서 실제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해 이안 감독이든 영화사든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아 왔다. 수입사인 마스엔터테인먼트는 아예 ‘완전 무삭제 개봉’이란 광고문구를 앞세우며 이를 적극 활용해 왔다. 영화가 ‘엄청 야하다’는 소문이 나는 경우, 사회적 편견에 불과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위 ‘아줌마’ 부대가 대거 동원된다는 것이 영화계의 정설. 외설과 예술의 경계 위를 달리는 그 ‘아슬아슬함’이 이 영화의 흥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흥행이 오래 가지 못한다. 진짜 흥행에는 뭔가 다른 힘이 작용한다. 바로 작품 내용이다. 그렇다면 ‘색, 계’에 있어 그 뭔가 다른 힘은 과연 무엇인가. 그 답을 위해서는 이안 감독이 왜 지금 2007년 하필 이때에 1942년 혼란의 상하이로 돌아갔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이안이 보기에 지금의 시대야말로 온갖 조차(租借) 구역으로 찢겨져 항일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격변을 겪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혼돈의 세상으로부터,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한걸음도 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관객들은 아마도 바로 그 ‘혼돈의 미학’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사회의 내면은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경제적으로 그야말로 카오스(chaos)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1942년의 역사를 통해 현재 자신들이 처한 2007년 한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며 그러한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줄곧 30~40대 식자층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식인들의 관심은 곧 여론화로 이어지며 대중의 관심과 입소문으로 확산된다. 인기몰이가 이어지는 것이다.
 

'바르게 살자'  

 

부정적 반응이나 약점조차도 어쨌든 사회여론을 환기시키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법이라면 그 적당한 예는 ‘식객’에서 찾아진다. ‘식객’은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가 되려는 성찬과 봉주의 대결을 그렸다. 개봉 4주째 전국 25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는 선한 자와 악한 자, 이기는 자와 지는 자라는 이야기의 이분법적 단순구도 때문에 평단으로부터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주제를 압축시킨 것, 곧 웰빙시대를 겨냥해 요리와 건강문제를 집중 부각시키고 대(對)일본 감정을 자극해 민족주의를 앞세운 것 등이 일반 관객들의 정서를 ‘집결’시키는 데 유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색, 계’와 ‘식객’ 등과 함께 비수기 11월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은 또 한 편의 영화는 ‘바르게 살자’다. ‘바르게 살자’는 은행강도 모의훈련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이 영화 역시 전국 200만 관객을 넘기며 요즘으로선 보기 드문 흥행세를 보였다. ‘식객’과는 달리 평단에서도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았다. ‘바르게 살자’의 흥행 포인트는 무엇보다 관객으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으로 꼽혔다. 썰렁한 웃음이든 아니든, 앞뒤가 꽉 막힌 주인공 경찰관의 은행강도 짓과 가짜 훈련인 줄 알면서도 인질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은행원들의 모습, 자기가 아이디어를 내서 시작된 모의훈련인데도 정작 진압하지 못해 난처해 하는 서장 등의 처지가 재미있게 묘사돼 있다. 한마디로 모두들 원칙, 원칙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원칙이 잘 통하지 않을 뿐더러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세상에 대한 영화적 풍자의식이 관객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