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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그들에 대한 오해

세칸 2007. 11. 25. 10:17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는 예술가들…

그들에 대한 오해

 

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 

입력 : 2007.11.23 23:35 / 수정 : 2007.11.23 23:36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어린 나이에 예술 활동을 시작해 평생 꾸준히 걸작을 남긴 이들 앞에 보통 사람들은 압도당하기 쉽다. 선천적으로 특출한 능력을 지닌 예술가에게 보통 사람들은 뭔가 특별함을 느낀다.

하지만 20세기 최고 예술가라고 불리는 앤디 워홀은 이 같은 생각에 물음을 던졌다. 워홀은 “예술가들이 하는 일은 여러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뛰어난 예술작품 가운데 상당수는 타고난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지며 특별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워홀의 주장을 실으면서 예술과 나이, 천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내놨다.

 

젊은 천재만이 걸작을 만들어낸다?

 

젊은 나이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예술가는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전형적인 훌륭한 예술가들 모습이다. 천재 화가 피카소는 16세에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26세에 영원히 기념할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냈다.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15세부터 20세까지 어린 나이에 주요 작품을 썼다. 이들은 대범하면서 드라마틱한 작품을 쏟아내는 ‘젊은 천재’들이다. 하지만 늙은 천재들도 있다. 이들은 나이 50이 넘어 두각을 나타냈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걸작이라 불리는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50세에 썼다. 영국의 영화감독 앨프레드 히치콕은 61세에 스릴러 영화 ‘사이코’, 64세에는 ‘새’, 70세에는 ‘토파즈’를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젊은 천재’들이 ‘늙은 대가’들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는다. 왜 그럴까? 성인 예술가들이 거둔 성과는 젊은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눈에 쉽게 띄지 않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젊은 예술가들은 대범하면서 톡톡 튀는 작품을 주로 만들어내는 반면 나이 든 예술가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성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위대한 인물들. 피카소(상단 왼쪽). 앤디 워홀(상단 오른쪽), 버지니아 울프(하단 왼쪽), 도리스 레싱(하단 오른쪽). /조선일보 DB

 

 

성공한 예술가는 항상 계획을 세워놓는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릴 때 500번 넘게 습작을 그렸다.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미리 윤곽을 다 짠 상태에서 소설 ‘율리시스’를 썼다. 반면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미술가 폴 세잔은 ‘예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댈러웨이 부인’으로 유명한 영국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평생 계획 없이 소설을 썼다. 18세기 작곡가 세바스찬 바흐의 아들 프리드만 바흐는 악보 없이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즉흥적으로 곡을 연주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한 예술가는 일생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피카소는 평생 5만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88)은 다작을 한 소설가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 명작을 수없이 남겼다.

이들에 반해 작품 하나로 반짝 떴다가 사라진 작가도 많다. 미국의 소설가 잭 케로악은 26세에 ‘노상에서’를, 하퍼 리는 34세에 ‘앵무새 죽이기’를 펴내 최고 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작품을 내지 못했다. ‘호밀밭의 파수꾼’도 미국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단번에 세계적 소설가로 만들었지만 샐린저는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투명인간’을 쓴 20세기 미국 소설가 랄프 엘리슨과 ‘캐치-22’의 미국 소설가 조지프 헬러 등은 모두 40세 이전에 명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들을 썼지만 이후 이들에 견줄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터넷 시대는 젊고 조숙한 예술가를 원한다?

 

인터넷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젊은 예술가가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늘날 최고라고 평가받는 예술가 중 상당수는 연륜 있는 ‘노장 예술가’다. 이들은 60세가 훨씬 넘는 나이에 회고전까지 열면서 관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영국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89세에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 사자상을 수상했고 95세에 런던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200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는 원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서른 살까지는 전혀 소설을 쓰지 않았다.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가 1998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때 나이는 64세였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유명한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흔 살이 넘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74세에 오스카상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나이가 많이 든 이후에도 훌륭한 성과를 내는 이들을 보면 끈기와 경험, 인내는 여전히 중요하다.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간간이 승리한다’는 법칙은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설명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23/20071123012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