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매리에서 14 - 숙소풍경
실매리 현장을 진행할 처음에는 숙소와 식사문제를 인근의 '황매산 황토방'에 해결할 계획을 세웠으나 황매산 황토방측의 사정으로 11월이후에나 가능하겠다는 답을 듣고 하는 수 없이 지금과 같이 이웃의 빈집에서 건축주의 모친인 노모를 모시고 숙식을 같이하는 형태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노모께서는 연세도 높으시지만 오른손 신경의 장애로 손을 자유롭게 쓰시지를 못하여 당신의 식사나 이런저런 잔일들은 겨우 처리하지만 우리 현장팀의 식사등은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노모의 식사까지를 우리가 담당하는 형식이 된 것입니다.
노모를 뺀 모두가 남자들만의 생활이었으므로 여러가지 불편하고 지저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되로 참을 만 하게 모두가 잘 협조하고 도와가며 숙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러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습니다만 여기에 다 소개해 드리지는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이소장! 이 남자가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만 새롭게 안 재미있는 면이 있었습니다. 가끔 냉장고를 열어보면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버린 야채며 찬들이 있기도 했는데 현장에 신경쓰느라 미처 생각해둔 식단을 챙기지 못해 생긴 일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잠잘때의 푸...푸...하며 숨을 뱉어내는 습관은 처음 안 일입니다. 제가 "너는 참 오래 살겠다. 우리 할머니도 너처럼 숨을 뱉어 내시더니 구십까지 장수하셨다"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마루에서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빈 자리가 제가 앉은 자립니다. 이때는 소주병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노모께서는 반주를 즐기셨는데 소주를 8온스잔(맥주잔)으로 반컵정도를 항상 드셨습니다. 달라는 말씀을 않으시다보니 간혹 잊어 버리고는 식사가 다 끝난후에 챙겨 드리기도 했고 아침부터 반주는 내키지 않았지만 남은 술을 뚜껑을 닫아두기도 뭐하여 반억지로 나눠 마시기도 했습니다.
이반장님의 식사량은 대단했는데 밥 두공기가 넘게 들어갈 것같은 스텐레스 양푼이 전용의 밥그릇이었답니다.
몇년을 비워둔 집이고 겨울철에 보일러를 퇴수시키지 않아 보일러의 몸통이 얼어서 터진 생태였습니다. 9월 까지는 찬물로 샤워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으나 10월 1일,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보일러를 교체하고 있습니다. 보일러를 설치장소까지 운반할 방법이 없어서 축대위에서 로프로 달아 내렸으며 헌 보일러는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작업하러온 굴삭기로 올리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후 TV를 시청하며 이리 저리 누워 있습니다. 세간은 집주인의 세간이며 TV는 부산에서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쌀가마니는 노모께서 가져다 놓은 것이며 우측벽의 달력은 2003년 11월 달력이었으나 2007년 9월의 요일과 일치하여 잘 참고 하였답니다.
이방은 좁은방 두칸을 터서 한칸으로 만든 방이었으며 사진을 찍은 지점에는 주방을 겸한 방이 한칸 있고 TV가 있는 벽 너머에는 구들방이 있으나 불을 땔 상황이 아니어서 노모께서는 전기장판을 사용하셨습니다.
남자들 만의 잠자리는 잠버릇으로 인한 웃지 못할 헤프닝이 더러 있습니다만 이반장님은 유독 코고는 소리를 못참아 하시고 이불을 싸들고 마루로 나와 자는 날이 태반이었고 다섯명이 넉넉하게 잘 수 있는 방이었으나 저는 주방에서 따로 자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아 시종 주방에 자리를 폈습니다. 사실은 숨기고도 싶지만 저에게도 악명높고 고치지 못하는 잠버릇이 있고 같이 잔다면 다른이들이 잠을 설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기에 배려한 뜻이랍니다. 피곤 하거나 술을 마신날은 이를 좀(?) 갈기에......ㅎㅎㅎ
식사후의 나반장과 이반장님이 뭔가 즐거운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반장님은 이른바 '신창원 티'를 즐겨 입으시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잘 알지 못하나 "몸매 자랑할려고 입으시는 거죠?"라고 물은 적은 있습니다. 수염을 다듬지 마시라는 충고(?)를 하기도 하는데 다듬지 않고 덥수룩한 수염일때는 헤밍웨이가 연상되기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저녁시간. 노모와 실매리 이장님, 나O찬씨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실매리 이장님은 카메라를 보시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버립니다. 이장님은 쌀과 고추, 표고를 소개해 달라(인터넷으로)는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이장님에 대한 에피소드는 단편소설 몇편은 충분히 쓸 만큼의 소재가 있으나 여기에 다 올리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 고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 연작쯤되는 소재가 될 것이라 볼 수 았습니다. 이장님은 실제의 이장이 아니라 마을에서 부르는 일종의 별호랍니다.ㅎㅎㅎ
노모와 장조카 내외분. 간혹 부산에서 별식이 올라오거나 따로 현장에서 특별한 식단을 준비한 날은 장조카 내외분을 모시고 같이 하기도 합니다. 이날은 부산에서 회와 삼치 마구로가 올라와 있었고 현장에서는 흑돼지구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가끔, 부산에서 황매산(1,108m)등산을 겸하여 위문을 다녀가기도 하고 그때마다 준비해온 음식과 현장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모처럼의 만찬을 즐기기도 합니다.
포를 떠서 마구로를 만들고 남은 뼈부분이지만 숯불에 구워 간장 와사비에 찍어먹는 맛은 별미라 하겠습니다. 부산 사람들은 비린 반찬을 며칠 못먹거나 회나 생선류를 간혹 먹지 못하면 일종의 탈진현상(!)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간혹은 중국음식점 신세를 지기도 하지만 이때는 대부분 김소장이 식사준비를 미처 못했거나 정말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을때 랍니다.
중구음식을 시킬때 저에게는 무엇을 먹을지 묻지 않는데 항상 '짬뽕'만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10월 17일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까지 마신술의 전부이고 이 전부가 우리만이 마신것은 아닙니다. 다니러 오신 분들이나 마을 분들도 거들었고 현장이 끝날때까지 산청 술도가에서 배달하여 마신 막걸리가 8말 이었지만 그 대부분은 실매리 주민과 이장님이 마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하러 와서 무슨술을 이렇게나 마셨을까 하시는 분들이 계실것 같아 밝혀 놓습니다만 대부분은 반주 수준을 크게 넘기지 않았지 싶습니다.
화사하고 볼 만한 사진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지금보다 더 나쁜 환경이나 비슷한 환경에서의 작업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추억처럼 남겨 두고도 싶었습니다. 먹고 자는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도 없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은 소흘 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봅니다. 특별한 내색이나 거부감없이 잘 참아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구질 구질한 사진이지만 나름되로는 리얼한 모습이라 볼 수도 있겠기에 별 생각없이 올려 봅니다.
아름답지 못한 사진과 싱거운 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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